공부하는 이유

열 살 소리

by 북남북녀

떡국을 앞에 두고 새해 소원을 물었을 때 소리는 눈을 반짝이며 “공부를 잘하고 싶어” 대답했다. 방학이 시작되는 날 소리와 함께 계획을 세웠다.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밤 9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소리의 새해 소원을 상기하며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방학 과제인 EBS <겨울방학생활>을 시작으로 점심 먹기 전까지 수학, 영어, 문해력, 기초학력 진단평가 수업을 시청한다. 방송수업을 시작하는 초반에 소리는 빨리 공부하고 싶다며 기대감에 가득 찼다. 한 주가 지나고 열흘이 되는 지금 소리의 반짝이던 눈은 흐릿해지고 엄마, 지겨워. 언제 끝나 책상에 낙서를 끄적인다.


“지금 매일 조금씩 공부해 두면 3학년 반 시작할 때 훨씬 쉬울 텐데. 새해 소원인 공부를 잘하는 것도 이루어지고.”


소리의 시선이 다시 방송으로 향한다. 의자에서 일어서고 싶은 것을, 다른 놀이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앉아 있는 소리의 결의가 꾹 다문 입매에서 전해진다.


덧셈 문제를 모두 틀린 학교 수학 학습지를 보며 “엄마랑 덧셈 공부 좀 해야겠는데”라는 말에 소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네가 그렇게 하기 싫다면 안 해도 괜찮아” 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소리의 희망에 따라 공부를 시키지 않는 나에게 아이 아빠는 괜찮나, 억지로라도 조금 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내비쳤다.


한글도 떼지 않고 학교에 입학해서 정규 수업 끝난 후 방과 후 수업까지 매일 참여하며(소리의 의지로) 즐겁게 학교생활하는 아이한테 억지로 공부하라는 것은 더 안 좋을 것 같은데. 본인이 필요하면 하겠지, 가 아이 아빠에게 하는 내 대답이었다.


1학년 담임선생님 의견란에는 인성에 대한 칭찬과 부족한 학습에 대한 권유가 적혀있었고 2학년 담임선생님과의 초기 상담에서는 한글이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담임선생님과 함께 하는 보충수업을 추천받았다. 학교 프로그램에는 모두 적극적인 소리는 담임선생님과 한 번씩 따로 공부한다는 말에 “너무 좋아” 신나 했다.


2학년 1학기 학력 평가지를 내게 주며 사인해 줘, 말하는 소리의 수학 성적은 노력 요함.

2학년 2학기 학력 평가지를 가져왔을 때는 현관에서 커다랗게 소리의 음성이 들렸다.

“엄마, 엄마! 나 국어, 수학 다 잘함이야.” 입이 귀에 걸린 소리의 얼굴. 의외의 결과를 얻어낸 소리의 기쁨이 온몸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교과보충 수업을 진행하며 소리의 학습 흥미도를 올려준 담임선생님께는 고마웠고 노력하면 달라진다는 것을 소리가 체험한 것은 반가웠다.


(소리의 노력이라 하면 등교 5분 전 구구단 외우기. 구구단을 처음 외울 때는 "이걸 어떻게 외워" 눈물을 먼저 쏟았다. 2단을 3일에 걸쳐 외웠다. 첫째 날은 2 곱하기 3까지, 둘째 날은 2 곱하기 6까지, 셋째 날은 2 곱하기 9까지. 한 학기 내 매일 5분간 구구단 외우기를 시도한 결과 2학기 들어설 때는 9단까지 모두 외웠다. "엄마 2단부터 9단까지 한 번에 외워볼게" 9단까지 교재를 안 보고 외울 수 있다는 것이 소리 스스로도 신기한 듯했다. "거봐, 조금씩 외우니까 되잖아." 소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하면 돼” 말하는 것은 쉬우나 열심히 노력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잘함’이라는 결과는 어려워 보여 다가가기도 힘들었던,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움에 가득 찼던 아이에게 ‘나도 할 수 있네’라는 것을 마음에 새긴 사건이었다.


지금 소리는 새해 소원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열려 있다. 나는 소리의 한 걸음 더 나가는 경험을 도와주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시험에서 백 점을 받고 반에서 일등을 하고 어느, 어느 대학에 입성시키기 위해서는 아니다.


시도하니까 달라진다는 것. (세상이 어떠하든지) 노력하는 개인의 인생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 남들의 탄성을 자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다는 것. 감옥과 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개인에게는 조금의 자유가 허락된다는 것.(자신이 바라는 일 앞에 섰을 때의 설렘, 희열) 억압을 인식하기 전에 자유를 먼저 경험하는 것(내면의 요구를 스스로의 힘으로 충족시켜 보는 것) 이것을 연습하는 것이 지금의 학습이다.


네가 애쓴다고 하여 세상이 바뀌지 않겠지만, 애쓰는 네 자리는 계속 변화하고 있단다. 응원한다,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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