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힘

아니 에르노 <탐닉><집착>

by 북남북녀

한 남자를 사랑하며 기록한 내면의 기록 <탐닉>은 환희나 희열과는 거리가 멀다. 불안, 초조, 의심, 기다림, (상대의) 무관심, 욕정과 연관된다. 제어되지 않는 감정에 재갈 물린 듯 끌려가는 이. “정제되지 않고 암울한,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어떤 제물 같은 무엇이.”라고 아니 에르노는 적는다.


헤어진 연인에게 새로운 애인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사로잡힌 감정, 질투.

사로잡힌 상태에서 드러나는 교수이자 저명한 작가의 비이성적인 행동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행동을 낱낱이 까발리는 기록 <집착>(질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파괴의 속성을 지닌다.)


“나는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나는 죽고, 더 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집착>9p


열렬한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질투의 감정을 폭로할 때도 작가는 죽음을 생각한다.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집착>9p


죽음을 생각하며 쓰는 글. 저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토해내는 글.

윤리, 도덕, 신분, 계급, 지위, 명예는 저 멀리 던져버린다. (진실 찾기, 본질에 닿기)


성경에는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갔는데 들어갈 데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나왔던 그 사람에게로 다시 되돌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더러운 영이 그 사람에게 가보니 비어 있을 뿐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다. 더러운 영은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영들까지 데리고 가서 다시 그 사람에게 거처한다.(마태복음 12:43-45)


이 성경 구절에서 나는 사로잡힘을 생각한다. 더러운 영에게 사로잡혀 점점 비참해져 가는 인간(사로잡혀 점점 비참해져 가는 세상)


“올해 내내 나는 꼭두각시 노릇 말고는 한 게 없다.”<탐닉> p288


사랑의 감정에 깊이 빠졌을 때 아니 에르노는 꼭두각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금단의 사랑이기에(아내 있는 남자와의) 그렇다기보다는 인간의 통제력 밖에 있는 사랑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일 듯싶다. 거대한 힘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


어쩌면 인간의 삶 자체가 커다란 의미에서 제물일 수도. 사랑, 질투, 물질(돈), 명예, 신분 그 외 여러 가지 것들에 사로잡힌 상태. 시간이 흐르면 스러져갈 것들에 사로잡혀 이어지는 삶.(지구가 존재하기 위한 혹은 우주의 섭리를 위한 작디작은 요소일 인간들)


달, 별, 꽃, 웃음, 농담. 무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드라마 대사를 떠올린다. 존재로서의 무용한 쓸모. 치열하게 살든지, 그렇지 않든지. 성공한 삶이든지, 성공하지 못한 삶이든지. 사로잡혀 있느냐, 사로잡혀 있지 않느냐보다는 존재하는 가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그저 존재하는가, 어떻게든지.


사랑과 질투라는 감정을 파헤치는 <탐닉><집착>의 내용과는 무관한 결론일 듯싶지만(아니, 같은 결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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