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지는 사람

엘레나 페란테 <홀로서기>

by 북남북녀


엘레나 페란테는 이름만 들어봤지 읽은 건 처음이다. 임레 케르테스의 <좌절>을 읽으며 주인공 노인의 의식을 따라가기 버거워졌을 때 도서관을 거닐다가 찾아낸 책이다. 나폴리 시리즈를 언젠가 읽어보자 생각하고 있었으나, 나폴리 시리즈(네 권) 옆에 꽂힌 한 권짜리 <홀로서기>를 책장에서 꺼냈다.(<좌절>을 마저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4월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남편은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우리는 식탁을 치우는 중이었다.”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만져질 듯한 주인공의 감정에 놀랐다. 한 권의 책이 한 호흡으로 읽혔다. 인물의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어 얼른 마지막 장을 읽고 싶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이별을 고한다는 것, 한 사람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이 감당하는 이에게는 얼마만 한 무게인지, 어떠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 날것의 감정을 엿보게 한다. (큰소리와 과격한 움직임을 극도로 싫어해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지내던, 모든 감정을 안에서 삭이고 하고 싶은 말들은 목구멍에서 꾹꾹 눌러 차분한 목소리를 내던 주인공의 과격한 행동과 날카로운 말들)


떠나는 사람이 남겨지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 새로운 사랑에 대한 설렘은 남겨지는 이에게 치명적인 독이다.


시처럼 읽히는 짧은 책 안에서 파괴되어 통제되지 못하는 상처받은 인간의 격렬함이 튀어나온다. 거대한 바위에 눌려 꼼짝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일상은 숨 막히는 공간이다.


유리가 산산이 부서지며 일으키는 날카로운 소음과 파편들. 파편들이 서서히 이어 붙는 과정. 그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자신처럼.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떠나는 이도 남겨지는 이도 연약한 영혼일 뿐이다.


나는 창살 사이로 비치는 빛과 공기가 좋았으며 흙먼지가 춤추는 곳에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으로 채워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p23

단지 시커먼 파괴의 열망만이 솟구치고 있었다. p96

엘레나 페란테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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