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불행기일지 레빈의 성장기일지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by 북남북녀

삶이 어떤 악마의 사악한 조롱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해명하든가, 총으로 목숨을 끊든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안나 카레니나>1486p-


레빈에게 다가온 평온이 왜 안나에게는 다가갈 수 없었을까. 아들을 희생시키며 택한 사랑에 안나는 왜 행복하지 못했을까. 잠을 자기 위하여 약물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불행했을까

남편(카레닌)을 버리고 안나가 택한 사랑(브론스키)은 떠나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며 싸늘한 눈빛을 보내오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안나의 마음속에는 복수의 욕구가 활활 타오른다.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랑만큼이나 강력한 욕구가

레빈과 키티가 결혼함으로써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섰다면, 주변인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견고한 가정의 모습을 이루었다면 안나와 브론스키의 결합은 죽음으로 파괴로 흐른다. 그들이 가는 길목마다 고립, 혐오, 증오, 질투, 불화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그 길목에 사랑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사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톨스토이는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고 주축인물인 안나와 레빈의 이야기를 대치시키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구가 있듯이 삶은 원하는 대로만 흐르지 않는다.

진실한 사랑은 상처를 남기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혐오를 발견하며 새 생명의 탄생에서 두려움과 혼란에 사로잡힌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계획보다는 우연이 사랑보다는 죽음이 짙게 드리워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순간조차 광폭한 힘에 끌려다니는 연약한 개인은 어디에서 평온을 발견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가 레빈을 통하여 말하는 평온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말해져 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레빈이라는 인물은 아내의 낯을 살피며 유혹을 지나가게 하고 자신이 지닌 사랑을 지키는 자이다. 레빈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확장되고 성숙하며 자신을 지켜온 정신적 힘을 새롭게 발견한다. 그는 이제 어떠한 풍파에 놓이더라도 자신 안의 힘을 신뢰한다.

안나는 평온이 그녀에게 다가갔다고 하더라도 그 평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다. 죄책감, 사람들의 시선, 고립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안나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다.(고 생각한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은 신의 은총을 입어 불륜의 고통 중에 있는 아내를 용서하나 안나는 스스로를 용서하기 못하기에 남편의 용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안나는 사랑하는 사람인 브론스키를 보면서 자신의 희생을 떠올린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으면서까지 선택한 사람. 이러한 인식은 브론스키에게 그가 행할 수 있는 행동보다 더한 것을 요구하게 하며 사랑의 올가미로 작용한다. 안나는 자신이 괴로움 속에 있기에 브론스키의 행복도 견디기 힘들다. 함께 진창을 구르는 것이 그들이 사랑한 대가다. 브론스키를 사랑하면 할수록 안나는 더한 죄인이 된다. 이 굴레에서 안나는 벗어날 수 없다. (신의 은총이 안나를 살리기 위해 바로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을지라도. 레빈이 발견한 것을 안나는 외면한다.) 빨간 손가방은 그녀의 행동을 방해하며 눈부신 삶을 떠올리게 했으나 안나는 뛰어들었다. 스스로의 죄에 미혹되어 복수의 욕망에 불타면서


그녀로서는 그의 사랑이 식은 것 그로서는 그녀를 위해 자신을 괴로운 처지에 몰아 놓은 것에 대한 후회 1378p

그들을 갈라놓은 분노에는 외적인 원인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의논하려 할 때마다 분노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깊어지기만 했다. 그것은 내적인 분노였다. 1378p

사랑이 얼마나 쓸쓸하고 비천한 것인지 1411p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13p



레빈은 행복했다. 그러나 일단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걸음걸음마다 그 행복이 그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걸음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행복하게 떠다니는 보트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 직한 것을 경험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한시도 잊지 말고, 발아래에 물이 있다는 점, 노를 저어야 한다는 점,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하면 아프다는 점, 보고만 있을 때는 쉬울 것 같지만 그것을 직접 해 보면 무척 즐겁기는 해도 굉장히 힘들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 899p


형의 모습과 죽음의 접근은 레빈의 영혼 속에 형이 찾아온 그 가을밤에 자기를 사로잡았던 불가해함에 대한 공포, 죽음의 접근과 불가피함에 대한 공포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가 옆에 있어준 덕분에 그러한 감정도 그를 절망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그는 죽음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 그를 절망으로부터 구원했다는 것, 그 사랑이 절망의 위협 아래서 더욱 강해지고 순수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9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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