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전자레인지 속에서 옥수수를 꺼냈을 때 창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11월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처음 든 생각은 아이들에게 내복을 입힐걸. 아침에는 맑게 갠 하늘에 해가 비쳐 보온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점심 먹으러 급식실로 이동할 때 괜찮으려나 뜨겁게 데워진 옥수수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서 눈이 빨개지도록 방한 용품을 검색한다. 마음이 들뜨면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상관하지 않는 아이들인데. 눈을 보면 걱정보다는 그 속으로 뛰어들어 즐거워할 할 텐데. 근심은 어른이라는 내 몫이 되어있다. <톰 소여의 모험>의 폴리 이모처럼
어른들 사회의 계급과 기만,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학대 속에서 톰 소여는 담장을 훌쩍 뛰어넘는다. 흥미진진한 모험 속에서 죽을 위기를 경험하며 성장해 간다.
마크 트웨인은 “한 때 자신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했는지, 그리고 때때로 어떤 이상한 짓에 몰두했는지 어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회상하도록" 하는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계획에 없던 이 책을 꺼내 든 이유도 아이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을 하지 말라고 제지할 때마다 아이들의 눈빛이(나쁜 의미로) 반짝인다. 반항의 번쩍임이 눈빛 속에 숨겨진다.
담장 밖을 뛰쳐나가려는 아이에게 나는 폴리 이모처럼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본인들의 즐거움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움직이는 아이들일 뿐인데. (옷을 아무 데나 두면 어떻고 스스로 연필을 안 깎으면 어떤가) 내가 건너온 세계에 아이는 속해있다. 눈 자체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세상 속에
자신의 신발이 아닌 듯한 불편한 느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른 인 듯도 싶다. 즐거운 순간은 뒤에 두고 앞일의 근심으로 몸을 사려 잔뜩 움츠리게 되는 날들. 눈 자체에 몰입하던 즐거움은 여러 갈래로 나뉘는 근심 속에 녹아든다.
그 순간에 잡혀 사는 아이들의 즐거움에 해가 되지 않도록, 근심이 이끌어가는 하루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앉아서 선한 의도를 즐기는 제노가 되지 않도록. 마크 트웨인이 한 ‘사내아이’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쳐야 한다는 이유가 이것이겠지. 이야기가 진행되면 ‘어른’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는 것이
톰은 이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조금 전에 겪었던 불쾌한 일을 모두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의 고민거리가 어른들이 겪는 불쾌한 일보다 조금이라도 덜 우울하고 덜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새로 생각나서 먼저 있었던 일들을 당분간 그의 머릿속에서 씻어 버렸기 때문이다. p20
어떤 악의가 있어 그런 건 아니잖아요. 다만 마음이 들떠 있는 애라서 그렇지요. 워낙 늘 서두르는 바람에 다른 생각은 못하는 애잖아요. p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