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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Feb 14. 2024

나란히 앉는다는 것은

도리스 레싱 산문집 <고양이에 대하여>

“사람과 고양이, 우리 둘은 우리 사이의 장벽을 초월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사람과 고양이처럼 사람과 사람도 먼 생명체인듯싶다. 초월이 필요한


<거식증 일기>에서 엄마와 아이의 몸 싸움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정신분석가에게 가기 싫은 아이는 바닥에 납작 눌러앉아 온갖 악다구니를 쓰며 버틴다. 엄마는 완강하게 버티는 아이를 일으키기 위해 머리끄덩이를 움켜잡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이 장면을 바라본다면 저 엄마의 속은 얼마나 탈까, 머리끄덩이를 잡아서라도 아이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읽힌다. 거식증은 생명을 위협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에 대한 적대감만 키울 뿐이다. 이제 저 여자가 머리끄덩이까지 잡는구나, 엇나간 아이의 마음은 더 차게 식는다.

 

<고양이에 대하여>에서는 장염에 걸려 생명을 포기한 고양이 에피소드가 있다. 한 이틀 토하는 행위를 반복하던 검은 고양이가 어느 순간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음식도 거부한다. 저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서 저자는 병의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고양이는 스스로 죽을 결심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죽기로 결심한 고양이를 살리려면 온종일 매달려야 한다. 가족들은 고양이일 뿐이라 하고 저자 역시 온종일 고양이에게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는 죽음을 기다리는 고양이를 그냥 두지 못한다. 삼십 분마다 고양이의 입을 벌려 탈수용액을 먹게 한다. 삼키려 들지 않아 고양이의 입가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죽고자 하는 고양이와 죽으면 안 된다는 저자의 사투. 밤에도 저자는 자신의 침대에서 고양이를 재우며 한 시간마다 깨운다. 남은 모든 힘을 거부하는 데 쓰는 고양이에게. 매일 병원을 다니고 주사를 맞혀도 고양이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아팠을 때 간호사가 닦아주고, 머리를 빗어주고, 침대보를 갈아 준 일을 떠올린다. 고양이 역시 자신의 더러움에 괴로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수건을 뜨거운 물에 적셔 고양이를 세심하게 닦아준다. 이렇게 한 뒤에 자신의 손을 뜨거운 물에 넣어 따뜻하게 데운 뒤 고양이의 몸을 천천히 문질러준다. 저자는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고 추측한다. 고양이가 몸을 일으킨 후 움직인다. 곧 웅크리고 다시 앉기는 했지만. 죽기를 결심한 고양이의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움직임이다. 손의 온기가 고양이에게 전해진다.


<고양이에 대하여>는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한다. 다른 부분은 인정하고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다른 존재의 자유를 존중한다. 먹이를 제공한다고 소유물로 여기지 않으며 힘겨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바라본다.

 

고양이가 회복하기 시작했을 때가 최악의 시기였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살아난 고양이는 혼란의 시간을 거쳐 잃어버린 고양이의 습성을 찾는다. 평범한 본능을 가진 평범한 고양이로 살게 된다.


“녀석과 나란히 앉는다는 것은 내 삶의 속도를 늦춰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을 없앤다는 뜻이다. 내가 이런 마음가짐일 때 녀석도 통증이나 불안감 없이 좋은 상태라면 내가 고양이인 자신의 마음에 손을 뻗어 그의 정수를 발견하려 애쓰고 있음을 자신도 안다고 넌지시 내게 알려준다. 사람과 고양이, 우리 둘은 우리 사이의 장벽을 초월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고양이에 대하여>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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