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연차면 점심을 먹어야지요

떨어지는 꽃잎은 어떻게 되나

by 북남북녀

목요일, 우연이지만 남편과 동생이 동시에 연차를 냈다. 동생이 그냥 쉬고 싶어 연차 냈다는 것을 수요일 저녁 통화하며 알았다. 남편은 목요일 오후에 있는 학부모 상담으로 연차를 냈다. 상담하는 동안 둘째를 맡길 때가 없어 반차를 얘기한다는 것이 잘못 전달되어 연차가 됐다.


옳거니, 나는 동생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집에서 산길을 삼십 분 정도 걸으면 작은 저수지가 있고 수제비로 유명한 맛집이 있다. 동생은 옆 동네에 살아 지하철 두정거장이면 우리 집으로 올 수 있다.

둘째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점심 먹을 겸 산책할 겸 동생과 오르는 산길. 커다란 벚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눈처럼 떨어진다. 눈앞 풍경에 감탄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런데 초록 초록한 나무와 작은 길과 벚나무까지는 잘 찍히는데 공중에서 팔랑이는 꽃잎까지는 잡히지가 않는다.

더 좋은 카메라로 찍어야 하나 봐. 그러게. 아쉽지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꽃잎을 마음속에 담으려 바라본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저렇게 떨어질 때가 있었지. 밑으로 밑으로 하강하던 때가 있었지, 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꽃잎처럼 아름다운 하강은 아니었겠지만.


동생과 가까이 살며 맛집을 다니고 애 낳을 때나 이사 날에는 도움을 받기도, 주기도 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지만, 동생은 나에게 맞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언니에게 맞은 기억이 선명해서 동생을 때린 기억은 또 희미하다. 언니는(내가 생각하기에) 나를 자주 때렸고(여기저기 아무 데나) 그렇지 않은 날(본격적으로 때리지 않는)에는 갑자기 얼굴로 손이 날아왔다. 찰싹! 갑자기 언니에게 뺨을 맞은 날에는 얼굴에 느껴지는 통증보다는 마음에 느껴지는 충격이 더 컸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부끄러웠다. 맞은 내가 부끄러워서 어디로든지 숨어들고 싶었다.


동생이 언니도 나 때렸잖아, 빗으로 내 머리 때려서 빗 부러진 거 기억 안 나? 했을 때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빗이 부러졌다는데도. 나는 내가 맞은 기억만 지니고서 피해자로만 살아왔다. 가해자가 분명했음에도.


동생의 말에서 내가 떠올린 사건 중 하나는 어느 날, 동생이 무슨 말을 했는데 몹시 화가 났다. 뜨거운 화의 기운이 정수리까지 뻗쳤다. 분노로 몸이 뜨거워졌다. 활활 타오르는 거 같았다. 평상시에는 아끼던 책들을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세게 내팽개쳤다. 그렇게 던지면서도 나중에 치워야 할 것을 생각해서 화장품 용기나 깨질만한 것이 있는 곳으로는 던지지 않았다. 나 화났다고.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이렇게 돌변할 수 있다고, 정도의 위협을 동생에게 줄 정도로 통제하며 화를 쏟아냈다.


언니가 나를 때린 것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닌 줄을 안다. 내가 그런 것이 동생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듯이.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에서 우리는 예민했다. 어떻게 보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었다. 언니는 나보다 두 살 위였고 장녀가 아니었지만 장녀 역할을 해야 했다.


여름이면 초등학생인 언니는 초등학생인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가서 옷을 샀다. 언니 옷, 내 옷, 동생 옷. 언니가 시장에 다니며 옷을 사기 전까지는 새 옷을 입은 기억이 별로 없다. 엄마가 어디서 얻어온 옷들을 주로 입었다.

동생 생일이면 언니는 케이크를 사고 과자를 사서 엄마에게 생일상을 차리게 했다. 그리고 동네 동생 또래 아이들을 불러 생일파티를 했다. 우리 집에서 파티라면 그게 처음이었고 유일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보내던 부모님 생신 때도 옷이라든가 면도기를 사 포장해서 부모님께 드렸다.

부모님 생신을 챙기는 것도 언니가 주도해서 매년 하게 됐다.


그런 반면에 언니는 이틀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가지고 있다는 워크맨을 사달라면서. 또 한 번은 김치 국물 줄줄 흐르게 도시락 반찬 싸는 엄마를 마트에 데려가 포일을 사고 도시락 반찬용 햄과 미니 돈가스를 사게 했다. 앞으로 반찬은 도시락 통에 포일을 깔고 이런 류의 반찬을 싸 달라고 하면서.


내향적인 데다가 어리기까지 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서든지 집에서든지 멍하니 있는 것이 내 일이었다. 졸졸 흐르는 도랑물을 보거나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보거나.

언니는 외향적인 데다가 친구도 많고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관심도 많았다. 다른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에 대해 언니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찼을 거다. 그러한 것에서 나에 대한 폭력이 나왔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내 폭력 역시 동생의 어떠함과는 상관없이 그러한 차이, 나와 세상에서 오는 차이에 의한 것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마음이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때,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마음이 한없이 추락하는 거 같은 그런 때.


땅 위에 다다른 꽃잎은 어떻게 될까. 상하고 상하고 상해가겠지.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부식되어 가겠지. 분해되어 땅속에 녹아들겠지. 그 영양분을 받은 땅 위에서는 다시 꽃이 피고 풀이 자라겠지.


떨어지고 떨어진 마음은 어디로 갈까. 상하고 상하고 상해가겠지.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부식되어가겠지.

분해되어 몸속에 녹아들면 그 자리서는 다시 꽃이 피고 풀이 자라날까.


아침을 안 먹어 배고프다는 동생의 말에 발걸음을 빨리한다. 얼큰하고 뜨거운 수제비가 한 솥 가득 우리 앞에 놓여있다. 시원하고 뜨거운 국물의 수제비를 호로록 목으로 넘기면서 다음에는 엄마와 언니들도 같이 오자는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뜨겁고도 시원한 국물에 몸이 훈훈하게 데워진다.


물론 나는 언니에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나름 복수도 했다. 우리 집은 매운 라면을 좋아해서 부엌 서랍에 항상 빨간 봉투의 최고로 매운 라면이 구비되어 있었다. 라면을 끓인 후 먹으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코에서 나온 끈적한 분비물 한 덩이가 퐁당 하며 라면 냄비 속으로 빠진 것이 아닌가. 갓 끓인 라면을 몽땅 버리기도 아깝고 배도 고파서 먹으려고 시도하였으나 도저히 입 속으로 넣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마침 언니가 집으로 들어왔다. 내 콧물 떨어진 라면에 관심을 보인다. 나는 얼른 라면을 언니에게 넘겼고 언니는 뜨거운 라면을 후 불며 호로록 먹었다.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면서. 뱃속이 간질간질하면서 말해야 할까 말까, 말해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라면 냄비가 깨끗이 비워졌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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