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콩나물시루 같다고 생각했다. 삼 십명이면 적당할 교실에 오십이 개의 책상이 들어찼고 그 책상마다 주인이 있다. 책상으로 가득한 교실이 안됐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힘에 부칠 테니까. 자신이 감당할 무게보다 더해서 감당해야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교실은 소음과 먼지로 가득 찬다.
젊은 남자 선생은 성큼성큼 걸어서 교탁 앞에 선다. 이 사람을 본지는 삼 주 됐다. 웃는 모습이 해사하고 목소리도 힘이 있는 편이라 젊어서 다르네, 생각했다. 늙은 선생들은 아이들 이름도 잘 외우지 않는데(공부 잘하는 아이 한두 명 알아 그 아이들에게만 말을 시키는 부류) 젊은 남자 선생은 한 주 됐을 때부터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운 듯 보였다. 오호 의지가 넘치는 선생이네, 나는 또 감탄했다.
젊은 남자 선생이 교실을 쭉 돌아보더니 자를 꺼내라고 한다. 모양 자를 가져오라고 했었나 ,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교실은 웅성웅성한다. 나처럼 들은 듯 만 듯 한 아이들이 가져오랬어, 묻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선생은 아이들의 반응에 심각한 표정이 된다.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안 가지고 온 사람 다 일어서.
우루루 아이들이 일어선다.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난다. 나 포함 일어선 아이들이 콩나물시루 속 성장이 빠른 콩나물들 같다. 빽빽하게 빈틈없는 곳에서 부대끼며 자라다가 삐죽 튀어나온 콩나물들. 선생은 일어선 아이들을 쭉 훑어본다. 사소한데 심각하네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하기 시작한다. 무슨 소리지 듣고 있는데, 그래서 나는 때리지 않겠어라고 결론 내듯 말해버린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은 자리에 다시 앉아. 교사가 학생을 때릴 때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이 자리에는 내가 보기에 가능성이 없는 학생이 있어. 맞아도 똑같을 거라는 말이지. 내 사랑의 매를 그런 학생에게 낭비하고 싶지 않아.
선생이 열댓 명 아이들을 호명한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젊다는 건 참 예민하네, 의욕이 넘치니까 작은 일에도 진지해. 이런 면에서는 나이 든 선생이 무던하다. 나이 든 선생이라면 맞을 가치가 있는 아이들과 없는 아이들을 나누지 않았을 텐데. 귀찮아서라도. 준비물을 챙겨 오든지 안 챙겨 오든지 무심했을 텐데.
어른들은 모르는 것 같다. 아이들도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자와 관련된 아이들의 가치에 대해 다 이해할 수는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창밖을 보며 민들레 꽃씨를 찾는다. 민들레 꽃씨는 눈을 부릅떠야 보인다. 가볍게 날아다니는 민들레 꽃씨를 찾기 위해 창밖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탁, 탁. 가치 있는 아이들의 맞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빽빽한 콩나물들이 풀 죽었다.
솔 안 가지고 온 사람 일어서, 선생이 말한다. 시끄러운 교실이 조용해진다. 구두 닦는 솔을 가져와서 한 시간 동안은 바닥을 쓱쓱 닦는 시간이다. 교실 바닥에 앉아 자신 앞의 나무 바닥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솔로 문지르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좋다. 반질반질, 미끌미끌. 단순한 팔의 움직임으로 교실 바닥이 광나는 것이 재미있다. 눈에 보이는 결과에 만족하는 기분이 상쾌하다.
다른 선생들은 솔을 안 가지고 오면 유리창 청소를 시키든지 칠판 정리를 하게 했는데 젊은 남자 선생은 청소 솔에도 진지하다. 열댓 명의 무리가 일어선다. 나는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하고 가지고 왔다기보다는 솔을 책상 속에 놓고 다닌다.
젊은 남자 선생은 히죽 웃는다. 역시나라는 표정을 띠고서. 다시 설명하기 시작한다. 가치에 대해서. 때리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모두를 때릴 수 없다면서. 가치에 대한 선생의 사명감이 대단하네. 나 같으면 다 때리든지, 다 때리지 않든지 할 텐데. 젊은 남자 선생은 호명한다. 맞을 가치가 없는 아이들을. 몇 명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탁, 탁. 선생이 맞을 가치가 있는 아이들의 손바닥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교실을 울린다. 창밖을 본다. 햇빛 없는 곳에서 쑥쑥 자라는 콩나물들이 시들었다.
가방 속에서 가정환경 조사서를 늦게 발견해 교무실을 찾아간다. 선생의 자리에 놓고 나오려는데 소파와 작은 테이블이 놓인 곳에 젊은 선생이 나이 든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반 아이의 엄마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한다. 보고 싶어서 봤다기보다는 시야에 들어와 보게 됐다. 하얀 봉투가 건네지는 것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촌지라고 이름 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작은 충격이 머리를 강타한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다르다.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면 동네 아이들에게 말할 일이 생겼네. 내가 본 것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놀라겠지. 우와 진짜 그렇구나 하면서.
교실로 돌아온다. 빽빽한 공간의 콩나물들이 시끌시끌하다. 젊은 선생이 들어온다. 가정환경 조사서 안 낸 사람 일어서. 시끌시끌한 콩나물들이 풀 죽는다. 어둡고 습한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도 풀 죽는다. 선생은 말로 물을 끼얹는 사람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콩나물 같은 아이들을 얼른 자라게 하려고. 아무튼 젊다는 것은 다르다. 자라게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모든 학교 관련 물건들을 놓고 다녀야 하리라. 이 일을 말한다고 엄마가 하얀 봉투를 들고 학교에 찾아오지는 않을테니까. 네가 잘못했네, 준비물은 잘 챙겨야지. 맞을 이유 있었네 할 테니까.(맞을 가치가 없는 거라니까 엄마. 엄마는 이해하지 못한다.) 창밖을 본다. 민들레 꽃씨를 찾으려고. 탁, 탁.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얼른 자라라고. 나는 그렇게 알아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