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형제가 찾아왔다
어쩌면 평생 몰랐을 일들
민들레 꽃씨가 날리고 거리에는 붉은 철쭉이 피어나는 계절에 처음 가는 길을 달린다. 아유, 꽃 예쁘다라는 엄마 말에 그러게 벚꽃은 다 졌는데 철쭉은 이제 시작이네, 라는 말을 얹어가면서.
엄마의 형제가 찾아왔다. 근 20년간 소식을 모르고 살던 형제다. 그 전에는 간간이 연락을 하고 살았다는데 어릴 때라 기억이 전혀 없다. 두 명의 이모와 두 명의 외삼촌이 있다는 것은 엄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2년 전에 사망했고 재산 관련 상속포기 서류가 필요해서 법원에 신청해 엄마의 주소를 알았다고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엄마는 좋겠네, 동생들 보러 가서라는 말에 바람은 살살 불고 꽃은 피는데 이번 주가 이상하게 춥더라,고 엄마는 말 한다.
자동차로 한 시간여 달려 처음 가는 지역에 도착했다. 처음 방문한 지역이나 우리 사는 곳과 비슷했다. 건물들과 마트와 도로와 차들. 내비게이션은 주택가를 향하고 도착한 우리는 골목길에 차를 댄다. 차에서 내리니 위에서 여기야, 여기라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친척들은 창문을 보고 있었는지 언니, 여기야 라고 소리친 후 밖으로 나온다. 서 너 명이 한꺼번에 나와서 이모야, 외삼촌이야 소개를 한다. 신기하게도 외삼촌은 엄마와 외모가 비슷했다.
첫째 이모의 집, 두 명의 외사촌과 두 명의 외조카도 있다. 집으로 들어서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시간이 한참 간다.
우리 가족은 소파와 소파 주변에 쪼로록 앉았다. 식사 때라 고기 안 먹는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해산물로 준비했다는 말을 들려주며 상이 차려진다. 첫째 이모도 고기를 안 먹는다며 따로 살아도 식구라 식성이 비슷하다고 놀라워한다. 상 위에 참나물과 두릅과 열무김치와 맛깔스럽게 무친 파가 놓인다. 나물을 좋아하는 엄마는 두릅을 보고 반가워한다. 산에서 직접 캐온 두릅이라는 말에 얼른 젓가락을 데고 맛을 본다.
커다란 대게가 놓이고 언니 위해서 쪘어, 이모가 말한다. 엄마는 도리도리, 대게 안 먹어.
냉장고에 꽃게가 있다며 얼른 쪄주겠다는 이모. 생선회와 소라찜과 맑은 해물탕에 거하게 차려진 한 상. 엄마는 외삼촌과 반주를 기울인다. 외삼촌은 열두 살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공장에 취직했는데 작은 공기에 딱 두 주먹의 밥을 주더란다. 그 당시 배고픈 게 제일 힘들었다고 불콰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자신의 손으로 벌어서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않고 살았다는 말도 하고 또 한다. 네네, 외삼촌의 말을 듣는다. 엄마는 외삼촌과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인다.
엄마 아버지이자, 내게는 외할버지는 농악을 했다. 동네 행사나 학교 행사 때 앞에서 꽹과리를 쳤다고. 이모들은 그런 아버지가 그 당시는 창피했다. 다른 사람들 하는 모습은 멋져 보였는데 무대에 자신들의 아버지가 있는 것은 그렇게 보기가 힘들었다나. 손재주가 좋아서 음악 연주뿐 아니라 못 고치는 것이 없었다고도. 외할아버지에 대해 처음 듣는다. 엄마의 성씨가 씨족을 이루고 살아 지금도 그 지역에 가면 오십여 명은 모두 친척이라는 말도. 쫄딱 망한 종갓집이고 망하기 전에는 외증조할아버지가 서당을 열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것도. 외삼촌과 이모들의 부모를 추억하는 말에 엄마는 조용해진다.
이모가 어머니가 우리 엄마를 외가로 보내 놓고 마음 아파하셨다는 말을 건넨다. 자신의 아이 세 명외에 고만고만한 조카아이 네 명을 더 거둬야 했던 외할머니는 장녀인 엄마를 외가로 보냈다. 엄마 나이 열 살이 갓 넘어갈 때. 엄마는 외가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내다가 아는 사람이 서울 간다고 하자 따라나서서 일찍부터 노동의 세계에 들어섰다. 서울의 여관에 소개되어 허드렛일을 했는데 빨래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서너 명이 방망이를 두들기며 하루 종일 빨래를 하는데도 끝이 없었다고.
엄마는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다. 외할아버지가 농악을 한다는 말도 손재주가 좋다는 말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싶다. 밑에 외삼촌은 벌이를 위해 엄마처럼 일찍 객지 생활을 시작했으나 이모들은 외할머니 손에 자라 그 지역에서 결혼을 했다. 부모의 그늘에 있었다.
커피와 차를 마시고 필요하다던 서류를 건네고 우리 가족은 일어섰다. 정말 잘됐다고, 오늘 만나지 못했다면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몰라봤을 거라고 인사를 건넨다. 앞으로는 자주 왕래하자는 말도.
차에 올라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좋겠네, 동생들 만나서. 집이 더 가까우면 좋았을 텐데, 혼자 다니기에는 조금 멀다는 딸들의 말에 엄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이제 사 찾아 뭐하나, 가족도 같이 살아야 가족이지.
외할머니가 2년 전에 돌아가셨다는데 그전에 찾아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말에도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자기를 일찍 객지로 떠돌게 만든 어머니는 밉다고.
우리는 잠시 침묵한다. 엄마 나이 이제 팔순을 향해간다. 노인이 되면 검은 머리에서 색이 빠져 옅어지듯 감정의 부산물도 사그라지리라는 생각을 은연중 품었는데. 나이가 들어도 남을 것은 남는다.
이상하게 추운 봄날, 우리는 엄마 집에 엄마를 내려주고 바삐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 위해 전날 담갔다는 열무김치와 오이 무침을 한 아름 짊어지고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한없이 밑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근원은 엄마였나 보다.
엄마의 버려진듯한 슬픔이 내게로 옮겨 온 건지도.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며 어머니를 원망했다는 고된 시간은 위로받지 못했다.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어릴 적 상처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신을 이 세상에 홀로 둔 서운함에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스한 봄날인데 이상하게 춥다는 엄마에게는 여관에서 빨래를 방망이로 두들기던 작은 아이의 한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