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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May 22. 2024

녹색이 필요해

호프 자런 <랩 걸>


한 씨앗의 기다림이 숲을 이루듯이 한 인간의 기다림이 인생을 이룬다. 힘겹게 첫 이파리를 밀어 올린 후에도 햇빛과 물을 이용하여 양분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어떠한 방해에도, 장애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이 한 나무의 성장을 막아서는 듯 보인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뒤로하고 불안증과 조울증 몰아치는 광기를 견디고 부족한 연구자금과 과학계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학문적 냉소를 극복하며 <랩 걸>의 호프 자런은 자신의 실험실을 이룬다. 자신을 구하기 위한 길을 계속 걷는다. 이 여정에는 죽을 뻔한 사고도 깊은 외로움도 불면의 밤들도 포함된다.


 ‘내가 어떻게 몸과 마음을 쏟아부으며 과학을 하는지’ 듣게 되는 <랩 걸>에서는 한 씨앗의 성장이 만만치 않듯이 한 인간의 여정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장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p34


 초록이 아니면서 성장하는 비밀을 지니고 있는 사막의 부활초도 빳빳하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덩굴식물도 완전한 암흑 속에서 긴 시간 버티며 살 수 있는 극지방에서 발견되는 나무도. 극한 환경을 극복하고 다른 생물의 공격을 막아서며 뿌리를 내리고 이파리를 만들어낸다.


 “ 이 나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도는 그들 세상의 일부에 불과했고, 그들의 세상은 이파리를 만드는 목적에 집중하고 있었다.” p215


 진액 한 방울을 흘릴 때마다 씨앗 하나가 열리지 못하고, 가시 하나를 만들 때마다 이파리 하나를 만들지 못한다’하더라도 식물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며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일반적으로 식물은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건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견뎌내면서 시간을 통한 여행을 한다.”p274)


 불쌍한 병든 소녀’라 표현하고 ‘건강하고 치유된 모습의 그날이 내 이야기 속에서 출현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던 저자는 아기를 낳은 후 퇴원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심하다가 ‘어떤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해결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해결책이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아이의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대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것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고 있는 일이고, 내가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생각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사랑할 것이고, 그도 나를 사랑할 것이며, 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p326


 아이를 키우면서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과학자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로 읽혔는데. 사람은 조금씩 이상하다. 식물도 조금씩 이상하다. 이 이상한 어느 지점은 ‘해결책이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 식물이 살아내기 위한 극복의 이야기일 수 있다.


 

각 종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성장 곡선을 가지고 있다. p300

첫 뿌리가 감수하는 위험만큼 더 두려운 것은 없다. p81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p203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p52


호프 자런 <랩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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