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퇴근했을 때 창밖으로 요란한 비명이 들렸다. 아파트 장이 들어섰다. 비명의 근원인 번쩍이는 불빛의 바이킹 앞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나온 듯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소리가 보디페인팅 줄에 서 나는 소리 곁에 남고 나도는 아빠의 손을 잡고 장 구경에 나섰다.
오른쪽 볼에 화사한 꽃을 그려 넣은 소리는 바이킹 옆 에어바운스로 향한다. 삼십 분에 오천 원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돈을 건넸다. 에어바운스 입구 앞에서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한 손에 팝콘 치킨을 손에 든 나도가 아빠와 함께 내 쪽으로 걸어온다. 걸어오는 나도를 본 것이 나만이 아닌 듯 에어바운스 안에서 놀고 있던 유치원 친구 예하가 나도야, 부른다. 에어바운스 입구까지 나도를 마중 나온 예하는 나도야, 같이 놀자. 팝콘 치킨을 손에 든 나도는 순간 멍한 표정이 된다. 갑작스러운 변화나 무언가를 생각 중일 때 -탐색 중이거나 사고 중일 때-이런 표정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들어갈래, 나도야 누나도 있어. 나도의 결정을 거들어보려 하지만 나도는 들어가겠다는 말도 안 들어가겠다는 표현도 안 한다.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아저씨가 예하에게 여기까지 나오면 안 된다, 말하니 예하는 나도를 한 번 더 쳐다보고 에어바운스 안으로 사라진다. 삼십 분이 되어 소리가 에어바운스에서 나오고 다른 곳에서 나도 와 장구경하고 있을 남편에게 연락해 저녁 먹을 음식을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질이나 양에 비해 비싸다는 감은 있으나 맵지 않은 양념에 촉촉하고 바삭하여 괜찮은데, 맛있어라는 말을 하며 장에서 사 온 닭강정을 식탁에 두고 온 가족이 먹고 있었다. 에어바운스 탈까? 나도가 뒤늦게 묻는다. 반나절 늦는 녀석은 에어바운스 입구 앞에서 만난 친구의 요청에 이제야 탐색을 마치고 해 볼 만한 것으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사방이 어두운 지금 창밖에서는 바이킹에 앉은 아이들의 비명이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으나 예하는 이제 집에 갔을걸, 이라고 대답한다. 특유의 멍한 표정인 나도는 고개를 끄덕인다. 에어바운스에 안 들어가도 되니 안심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아쉬워하는 표정이라고 이해하며 나도의 그릇에 닭강정 하나를 놓아준다.
행동은 느리지만 나도의 머릿속은 에어바운스라는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을 거다. 에어바운스에 대한 탐색을 마치면(괜찮은 거 같은데) 친구의 요청에 대해 생각하고 그다음에 자신의 행동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 행동도 그냥 나오기보다는 처음 하는 행동이다 보니 그 자신의 내적인 저항(처음 보는 것에 대한 경계심, 불안, 두려움 등)을 극복해야 한다.
나도는 말을 참 잘해요, 행동은 좀 느리고요.라는 말을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듣기도 하는데(인지영역은 빠르고 신체발달은 느리다는 말로 알아듣는다.) 얼마 전에 영유아 검진을 마쳤을 때 우편으로 온 <영유아 발달평가 안내문>에 심화평가 권고가 표기되어 있었다. 정밀검사 의료기관을 찾아가 한 번 더 검사를 받으라는 말인데 이 평가 결과는 의사의 소견이기보다는 내가 표기한 설문조사에 기인한다. 대변 뒤처리, 옷 입기 같은 것을 혼자 못한다고(자조 영역) 솔직하게 표기했다. 대변 뒤처리야 소리도 초등학교 들어가니 시작됐고(기능상의 문제라기보다는 혼자 할 수 있어도 엄마가 옆에 있으면 아이들은 엄마를 찾지 본인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혼자 옷 입기는 발달 평가 안내문을 읽고 난 후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어 스스로 하게 하니 지금은 곧잘 입는다. (엄마가 입혀줘, 잦은 빈도로 내게 부탁해오기는 하지만)
영유아 발달 평가 안내문에 동봉된 <우리 아이 잘 크고 있나요?> 소책자에는 개월별 발달과제와 영유아 발달장애 종류에 대해 나와 있는데 만 3세가 되어 세 단어 연결 문장을 말하지 못하면 발달성 언어 지연으로 판정되고 어딘가 기준이 모호한 지적장애, 전반적 발달지연, 자폐스펙트럼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가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다. 조기에 알아내어 빠르게 대처하자는 알겠는데 발달 속도가 모두 다른 아이들에게 개성이나 특성으로 구분될 수 있는 행동들까지 병적인 증상으로 몰아갈 수 있는 소지가 있지 않을까
나도는 이번 검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인 이유는 내 의지가 아니라 영유아 검진 개월 수가 끝났기 때문이고 처음인 이유는 길가는 사람이 예쁘다는 말만 해도 겁에 질려 안으라 하고 친척들이 집에 오면 거실로 나오지 않고 친척들이 갈 때까지 방 안에만 있는 아이에게(나는 이런 행동을 기능상의 이유보다는 기질상의 한 특성으로 이해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줄 병원 검진은 미루어졌다. 여섯 살 때 유치원에 간 것이 처음 다닌 기관이고 키만큼이나 뇌도 성장했는지(사물을 이해하는 능력이 조금 더 발달했는지) 낯가림 역시 나아진 부분이 있어 무리 없이 유치원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아이는 성장 그래프에서 조금씩 벗어난다(벗어날 수 있다.) 내 경험상 그렇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어느 면에서는 나 역시 지금 시대의 발달 지연이라는 틀에 맞춰지는 부분이 있다. 옷이 있다고 하여 맞지 않은 옷에 자신을 억지로 욱여넣을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체형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옷들이 나와 있고 나에게 맞는 옷을 찾으면 된다. 특히나 아이들은 하나의 옷보다는 다양한 옷의 가능성을 두고 키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이른 기관 생활-단체생활-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다. 개성이나 특성보다는 질서나 통일성-어떤 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에 아이들이 급하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누르는 힘이 세면 저항하는 힘 역시 그만큼 거세진다. 너무 많은 정보는 때로는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