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당신에게 가장 달콤한 기쁨을 주는 땅이 아니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이 구절을 읽으며 벽을 생각한다. 몇 평의 집이든 아파트든 주택이든 상관없다. 책으로 채울 벽이 남아 있는 한은. 좋아하는 책을 쌓아놓을 벽 한 뙈기 존재한다면 괜찮은 거라고
이런 말을 하려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먹을까, 입힐까가 고민의 대부분인 주부가 아니라. 생활비를 확인하고 청소기와 걸레를 드는 일상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책 이야기를 하면 책 역시 누추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금은 책이 많지도 않다. 늘어나는 짐들에 처분 일 순위는 책이다. 책장을 치운 공간에 아이장이 들어서고 교구장이 놓이고 장난감이 쌓인다. 어린 시절과 같이 지금도 상상한다. 창가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푹신한 의자가 놓인 공간. 푸른 이파리를 언제나 볼 수 있는 공간은 알맞은 햇빛이 드나든다. 이파리를 눈에 가득 담고 시야를 벽으로 옮기면 가지런히 배열된 책을 볼 수 있다. 책들의 반짝이는 에너지는 내부기관을 스치며 지친 장기를 새롭게 한다. 심장의 펌프질에 관여하여 싱그러운 생명을 피워 올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인용되어 있다.
생물이 진화의 나무에서 어느 가지에 속하는지를 밝혀내는(종 사이의 진화적 유연관계) 분기학자들에 의하면 폐어와 소는 폐와 유사한 기관과 후두개가 존재하며 심장의 구조도 비슷하다. 연어는 진화과정에서 다른 계통으로 먼저 갈라지며 이와는 다른 구조를 갖는다. 폐어와 연어의 겉모습의 유사점에도 불구하고(물에 서식, 비늘로 덮이고 알을 낳는다.) 폐어는 연어보다는 소와 가깝다. 물고기처럼 생긴 동물들 중 다수는 포유류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어류”라는 범주는 잘못됐다. 산에 산다고 모두 산고기가 아니듯이 물에 산다고 모두 물고기가 아니다. 조류도 존재하고, 포유류도 존재하고, 양서류도 존재하지만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해결책이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호프 자런의 <랩 걸>을 연상시킨다. 저자가 여성이라는 것과 과학에세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개인적인 혼돈의 상황에서 빛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부분에서 더 그렇게 느낀 듯싶다. 호프 자런이 아버지가 되기로 결정한다면 룰루 밀러는 남편이 되기로 결정한다. 세상이 분류해 놓은 어떤 것에서 벗어나는 것, <랩 걸>식으로 말하자면 ‘해결책이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여름 끝
아스팔트 위 죽은 매미를 봤다. 여름 끝의 햇볕은 어느 때와 같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너의 생에도 노래하던 순간이 있었겠지
푸른 하늘 밑 찬란한 숨이 있었겠지
사랑으로 지속되는 울음도 있었겠지
매미 생의 끝이 놓인 계절을 지난다.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p268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