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끝나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책가방을 방에 던져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고무줄, 망까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숨바꼭질, 발야구, 피구, 자전거 타기. 겨울에는 쌀포대로 눈썰매 타기, 봄에는 올챙이 키우기. 흙과 잡초 넓적한 돌멩이, 나뭇가지 등으로 이루어지던 소꿉놀이.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무엇이 나를 키웠나 생각하면 놀이다. 부모의 방목 속에 아침부터 밤까지 행해지던 여러 놀이들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들려오고 나이에 맞지 않는 학업이 아동학대라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아이들의 뇌가 파괴된다는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경고도 따라붙는다. ‘정신질환’이라는 말 자체를 ‘뇌질환’으로 바꿔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머티즘내과 김현아 교수의 저서 <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정신 질환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인간적인 삶을 위협하는지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은 딸의 사연을 통해 들려준다(자살, 자해를 반복하며 일상생활 지속이 어렵다.)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사용할 정도로 정신적 외상에 대한 인식이 올라간 시점에서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 매 맞은 이야기를 웃으며 농담처럼 건네고는 한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맞아 며칠 누워 지낸 적이 있고 나는 못이 박힌 몽둥이가 내 눈앞을 스쳐가던 순간, 부풀어 오른 얼굴 등을 기억한다. 아이들을 향한 매가 당연시 되던 시절 ‘트라우마’라는 단어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잘못했다고 빌며 울던 기억을 가지고 일상을 (무사히) 살아내고 있을까
여기저기 널린 돌처럼 폭력도 흔했으나 그에 못지않은 즐거움(자유) 또한 부족하지 않았다. 자주 맞았고 많이 놀았다. 여러 개의 미주신경으로 인간의 방어체계(부동화)를 밝혀낸 다미주 이론의 제창자 스티븐 포지스 박사는 놀이를 효율적 신경훈련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놀이를 통하여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내고 치료했다. 아이들도 억압당하고 고통받으며 아프다. 그렇다는 것을 어린 시절을 훌쩍 지나 느끼고 있다.
정신 병리 특징 중 하나가 놀이를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놀고 싶어 하거나 신나게 뛰어노는 것은 아이가 건강을 향하고 있다는 신호 일 수도 있다. 아이의 정신분석이 종료되었다고 할 때쯤에 아이의 놀이장애가 크게 감소되어 있을 것이라고 멜라니 클라인은 쓰고 있다. 마음껏 웃으며 뛰어노는 한 시절은 제정신으로 서 있기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올리며 느끼게 될 중압감에서 해방의 통로를 치유의 통로를 마련해 놓는 것일 수 있다, 신경도 튼튼하게 하면서. 자유롭게 노는 아이 삐삐는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듯싶다.
아이들이 내적으로 아주 잘 적응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이가 노는 것을 즐기고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환상의 고삐를 풀어주고, 동시에-특정 지표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듯이-현실에 충분히 적응되었다면, 그리고 자신의 대상들과 아주 좋은-애정이 지나치지 않은-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신호임에 틀림없다. 멜라니 클라인 <아동 정신분석> p191
놀이는 교감신경을 활성화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사회 참여 체계로 교감신경의 흥분을 다시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모델에서는 놀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을 이용해서 생리적, 행동적 상태를 ‘상호조절’하는 효율적 신경훈련입니다.
스티븐 포지스 <다미주 이론> p93
한걸음 더 나아가 '정신질환'이라는 말 자체를 '뇌질환'으로 바꿔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실이 그러하고, 뇌도 엄연히 신체이므로 여타 신체질환과는 달리 의지나 성격의 문제라는 편견을 만드는 말은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이다. 김현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p290
김현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멜라니 클라인 <아동정신분석>
스티븐 포지스 <다미주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