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요 자식이요

최소한의 무기

by 북남북녀


자매 넷이 모이면 염색 이야기로 꽃이 피어난다. 할미꽃이.

네 자매 중 막내까지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니 이제 자매는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됐다. 그러니 모이면 건강과 새치 염색이 주 이야기 소재가 된다.


이번 명절에도 모여 염색을 한 달에 한 번 하느니 두 번 하느니 하며 새치 염색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아 정말 염색하러 가기 싫어 머릿결은 빳빳해지고"라는 내 말에 나머지 자매들은 “네가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가지 마”라는 말을 날렸다. “그래 나도 정말 안 가고 싶어.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고. 그런데 생각해 봐. 어린아이 둘 데리고 다니는 아기 엄마가 머리가 허옇게 다니면 어떨지. 가뜩이나 다른 엄마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신경 쓰이는데”라는 내 말에 자매들은 “그건 그렇네” 하며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런데 슬픈 예감은 꼭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니.


겨울은 꾸미는 것에 관심 없는 나에게는 편안한 계절이다. 아이들과 나갈 때 운동복 세트에 롱 패딩 하나 걸치면 되니 얼마나 편한지. 요즘은 마스크까지 쓰고 나가니 외출하는 것에 더 부담이 없어졌다. 마스크 쓰려면 어차피 화장을 하는 것이 더 불편하니 집에서 다니는 얼굴 그대로에 마스크 하나 걸쳐준다.

입춘이 지나고 언 땅이 다 녹아내릴 거 같은 푸근한 날씨. 아이 둘을 데리고 집 앞 공원을 나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우리 셋은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뜀박질을 했다. 깔깔깔 웃는 소리와 몸에서 발산되는 열에 상쾌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 우리를 할아버지 한 분이 흐뭇하게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대화를 할 정도로 가까이 오셔서 우리는 다시 얼굴에 마스크를 썼다.

아이들에게 남자냐 여자냐, 몇 살이냐 질문 공세를 하시더니 예쁘다, 멋지다 칭찬을 날리신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내 얼굴을 보더니 “손주요, 자식이요"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앗, 할머니가 이렇게 뜀박질하며 놀기는 힘들 텐데요. 아무리 제가 새치 염색을 안 해 가르마의 머리가 허옇게 올라왔기로서니 손주요, 자식이요 라니요라는 생각으로 허둥대는 와중에 할아버지는 눈치를 채셨는지 “어허, 자식이로구먼"이라는 말을 남기시고 총총히 제 갈 길을 가셨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차림이 범상치 않았다. 목둘레에 털이 있는 짙은 갈색 무스탕에 검은 정장 바지,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구두. 머리카락은 새치 하나 보이지 않은 흑발에 미용제품으로 고정시켜 앞머리를 날렵하게 세웠다. 마르지도 그렇다고 뚱뚱하지도 않은 몸에 배도 나오지 않은 체형이었다. 멋쟁이 할아버지였다.


아이들과 뜀박질로 상쾌했던 시간은 멋쟁이 할아버지의 손주요, 자식이요라는 말에 검은 장막을 드리우게 됐으니. 이렇게 슬픈 일이. 내가 이럴까 봐 가기 싫은 미용실을 두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다녔던 것인데. 온몸을 검은 롱 패딩으로 휘두르고 마스크로 덮어쓰는 겨울은 괜찮을 줄 알았다. 할아버지가 뭔 죄가 있으려나. 게으름으로 겨울을 보내려 한 내 잘못이겠지. 그렇잖아도 또래 아이 엄마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편이라 신경이 쓰이는데 할아버지가 묵직한 한 방을 날려주신 것이다. 이 상쾌한 겨울날에.


슬픈 예감은 꼭 이렇게 들어맞고는 한다. 방심한 사이 훅하고 한방 세게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타인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며 한 말이 내 다리를 휘청이게 하는 것이다.

엄마의 다리가 휘청이든지 말든지 아이들은 다시 같이 뛰자고 소리쳐 엄마를 부른다. 나는 휘청이는 다리로 다시 괴물이 되어 아이들을 쫓으며 뜀박질을 한다. 꺄 하며 도망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낯 모르는 타인의 말이 마음의 정중앙에 박혔으나 아이들과 뜀박질하는 사이에 그것은 투명한 겨울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뭐 어떤가. 새치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단계인 것을. 내가 나이 있는 엄마인 것이 사실인 것을.


이제 첫째는 초등학교를 입학한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예방접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느껴야 할 감정을 미리 한방 주입받은 거라고.


타인이라는 집단 속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감정과 생각에 휩싸일 수 있다.

내가 원치 않고 계획하지도 않은 것들이 칼 같은 날카로움으로 들어와 마음을 헤집을 수 있다. 고양이에게 할큄을 당하는 것처럼. 고성을 지를 통증은 아니지만 잔잔한 쓰라림이 느껴지는 할큄.

사람 속에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원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감정이 섞여 들어가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오롯이 내 것인지 타인에 대한 반응으로 생긴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지내다 보면 몸 컨디션에 따라 짜증이 솟구치는 날이 있다. 그 감정은 한 달에 한 번이라는 호르몬에 의한 것일 때가 대부분이기에 대체로 꾹 참아내면서 내 감정과 아이들을 차단시켰다.

아니 차단시켰다고 생각했다.

오만이었지만.


짜증이 솟구치는 내내 아이들 앞에서 웃으려 애썼던 내게 어느 날 첫째가 말한다.

"엄마, 머리가 아파"

"왜?"

"모르겠어"

첫째는 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짜증을 꾹꾹 참아내던 나도 두통이 있었으니까.

깨질듯한 두통에도 웃고 있었으니까.

아이는 내가 말하지 않은 감정을 느낄 뿐 아니라 내 두통까지 껴안고 있었다.


숨기려 해도 같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느낀다.

좋은 감정이든지 나쁜 감정이든지.

서로는 연결되어 있다. 원치 않더라도.

연결되어 있어 피곤하고 연결되어 있어 위로받는 관계라는 것.


할아버지와의 잠깐의 만남이 나이 있는 엄마라는 내 마음과 공명해서 이리 속을 휘저어놓을 수 있는데, 매일 마주쳐야 하는 타인들 속에서는 어떤 감정의 증폭을 겪어야 할까.


아마 이것이 이제 학교라는 집단에 속하게 되는 첫째와 내가 극복해야 할 여러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멋쟁이 할아버지가 그것을 알려주었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꾸벅 드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나는 전투를 치르는 듯한 자세로 미용실에 갈 것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원하지 않는 머리 염색을 진행할 것이다.

새치 하나 보이지 않는 흑발로 만들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최소한의 무기를 갖추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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