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지 그랬어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 위한 아빠의 몸부림
언제나처럼 엄마는 잠을 자기 위해 한 시간은 먼저 안방으로 들어간다.
한참 달게 자던 중 아이들이 들어오는 기척을 느낀다
엄마 양옆으로 자리를 잡는 아이들.
“소공녀, 소공녀, 라바, 라바”
아이들은 서로 읽고 싶은 책을 아빠에게 얘기한다. 소공녀를 먼저 읽자는 아빠의 말에 둘째는 울먹거리고 첫째는 소공녀를 계속 외친다. 잘 자던 엄마의 미간이 아이들의 소리에 찡그려진다.
“싸울 거면 둘 다 거실로 나가.” 한밤중 조용하게 울리는 엄마의 말소리. 엄마의 말소리에서 노기를 감지한 탓일까, 둘째가 소공녀를 읽겠다고 한걸음 양보한다. 아빠의 소공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이제 잘 테니 그만 읽어 달라는 첫째의 말을 엄마는 잠결에 듣는다. 자는 와중에도 둘째가 양보했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그럼 이제 라바 책 보면 되겠네”라고 또 조용히 한마디 말을 보탠다.
엄마의 말에 자신의 책은 아직 읽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둘째는 라바, 라바를 외친다.
아빠는 엄마에게 왜 말을 꺼냈냐며 둔탁하던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아빠는 피곤하니 오늘은 그냥 자자고 둘째를 설득한다. 설득되지 않는 네 살 아이는 ‘라바, 라바’라고 외칠뿐이다. 휴 하는 아빠의 기나긴 한숨. 왜 라바 책 이야기는 꺼내서 자신을 더 피곤하게 하냐며 엄마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못한다. 아빠가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삼십여 분쯤 지났을까. 엄마는 아빠와 둘째의 분쟁 소리를 잠결에 듣는다. 한 권만 읽고 그만 읽자는 아빠와 한 권 더를 외치는 둘째. 밤 열한 시가 넘어가는 시간 아빠의 한숨이 반복된다. 피로함으로 갈라지는 아빠의 목소리. 엄마는 아빠를 돕기 위하여 둘째에게 “이제 자야지” 또 조용히 한 마디의 말을 건넨다.
도와주려는 엄마의 말에 온갖 피로함과 짜증이 몰려드는 아빠. 자신이 읽어줄 것도 아니면서 왜 라바 책 이야기는 꺼냈는지, 엄마의 말로 지금 이런 상황이 온 것이 아니냐며 목소리에 불만이 가득이다.
엄마는 아빠의 말에 뭐라고 대꾸를 하고 싶은데, 자신이 읽어준다고도 하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또 잠에 취해 있다.
둘째를 설득하는 소리와 피곤해서 툴툴거리는 아빠의 말소리를 자장가 삼아 엄마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어린아이가 나왔네, 꿈결처럼 생각하면서.
언제던가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엄마와 아빠가 아닌 남편과 아내이기만 한 시절, 부부는 목소리를 높이며 싸웠다. 싸운 이유는 기억을 못 하지만 남편의 마지막 말은 아내에게 각인된다.
“나는 지금 배가 고파.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난 거 같아.”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뒤로 남편의 입이 댓 발 나와 보이고 얼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며, 아이 같은 툴툴거림의 소리가 지속적으로 울리는 날이면 아내는 남편에게 묻는다.
“밥 먹었어?”“뭐, 먹을까?”
육아가 시작되고 남편의 툴툴거리는 아이는 피곤할 때 등장한다. 매일 밤 책을 읽어주는 남편이 많이 피곤한 날, 툴툴거리는 아이가 등장해 불만을 토로한다. 대개는 엄마를 향하여. 쿨쿨 자고 있는.
잠결인 듯 꿈결인 듯 엄마는 아빠의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아빠를 먼저 재우고 자신이 책을 읽어주고 싶으나 엄마에게도 잠을 깨는 일은 어마어마한 화를 표출하게 하는 일이다.
아빠 속의 아이가 입 댓 발 나와서 툴툴거리는 아이라면 엄마 속의 아이는 날카로운 고성을 지르는 화난 아이다. 한 밤에 이 화난 아이를 깨우고 싶지는 않다, 고 다소 이기적인 생각으로 엄마는 다시 잠을 청한다. 그러는 중에도 둘째의 한 권 더의 외침은 계속된다.
다음날 아침, 여섯 시 넘어 둘째가 눈을 떴다. 아빠는 잠 깬 아이가 예뻐서 둘째에게 얼굴을 갖다 댄다. 팔로 안으려 한다. 둘째가 손으로 아빠의 얼굴과 팔을 밀어내고 엄마에게로만 손을 뻗는다. 둘째는 어제 아빠와의 분쟁으로 마음이 상했다. 아빠가 책을 원할 때까지 읽어주지 않아 삐친 것이다. 작은 아이의 감정 표현이 귀여워 엄마, 아빠는 서로를 보며 킥킥 웃는다. 보통날 같으면 아빠를 안으며 사랑해라고 말했을 텐데.
아이는 자신에게 향하는 아빠를 밀어내느라 바쁘다.
엄마는 쯧쯧, 이라는 혀 차는 소리를 낸다. 그러게 어젯밤에 왜 그랬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빠는 억울하다는 듯이 엄마에게, 네가 제일 나빠라고 이야기한다.
졸려서 그랬을 뿐이야, 엄마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둘째는 아빠에게로 몸을 돌리지 않는다. 아빠가 둘째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데도.
쯧쯧, 적당히 하지 그랬어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더 억울한 표정이 된다.
오늘 밤은 아마도 퇴근 후에 아빠가 커피를 두 잔은 마시리라. 아이가 원할 때까지 책을 읽어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