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의 요구에 시달리던 어린 왕자는

함께한 시간이 남기는 것

by 북남북녀


장미꽃의 요구에 시달리던 어린 왕자는 떠나기로 결정한다.

장미꽃은 터무니없는 요구와 가시가 달린 말로 어린 왕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장미꽃으로 인하여 괴로움 속을 거닐게 된 어린 왕자는 장미꽃에게 이별의 인사를 고한다.

잘 있어라고.


“하지 마, 엄마” 첫째가 말한다. 아침 식사 시간에.

네 살 둘째가 밥을 먹지 않고 뱉어내자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여덟 살 첫째가 나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밥을 뱉어낸 둘째에게 내가 소리 지르거나 혼낼까 봐 첫째가 미리 막고자 하는 말이라고 나는 알아듣는다.


첫째와 나는 칠 년을 함께 있었다. 그중 일 년은 오전에 유치원에 있었으니 그 시간 제하고 내내 같이 있었다.

첫째는 내 표정만 보고도 내 상태를 짐작하는지 아침 시간처럼 미리 얘기할 때가 있다.

하지 마 엄마라든가 가지 마 엄마라든가.


밖에 나가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야 할 때쯤 둘째가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곤란해하며 나는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고 있으면 첫째는 “가지 마, 엄마”라고 말한다. 혹시나 둘째를 떼놓고 엄마가 집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할까 봐 미리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알아듣는다.


어떻게 엄마가 둘째를 놓고 가겠어, 첫째에게 말한다.

다감한 성격이 아닌 나는 안 간다고 하면 달래려고 하기보다는 “그래, 그럼 엄마 갈게”라고 돌아선다.

진짜 가는 것은 아니고 가는 척할 뿐이지만 첫째는 내가 할 행동을 미리 예측해서 그러지 말라는 말을 미리 건넨다.


첫째가 지금 보다 어릴 때 나는 첫째의 요구가 힘들어 어린 왕자처럼 괴로웠다. 첫째 아이들이 대체로 그렇겠지만(육아의 서투름과 겹쳐) 고집은 왜 이리 세고, 하라는 것은 안 하고 울기는 또 얼마나 우는지. 첫째와의 갈등이 아주 심한 날에는 사정이 있어 보류하고 있던 어린이집을 보내볼까 밤마다 고민했다. 어린이집에 가면 안 먹던 밥도 꿀꺽꿀꺽 잘 먹고 내가 가르치지 못하는 규율도 배워오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떠날 수는 없으니 첫째라도 떠나보내 볼까,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첫째가 다섯 살 무렵 어린이집에 가게 됐으나 안 가겠다고 아침마다 우는 통에 일주일 만에 종료됐다. 둘째 임신 중이라 육아를 몇 년은 더 해야 하기에 안 간다고 울며 버티는 아이를 억지로 건물 안으로 들이밀 수가 없었다. 다시 하루 종일 첫째와 함께 하는 시간을 택했다. 갈등 상황이 계속되더라도.


지극히 외향적인 첫째와 지극히 내향적인 나는 성격이 반대다. 첫째가 울면 심각해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이것저것 울음을 그칠 방법을 시도해보지만 첫째는 어떠한 시도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울음을 막으려는 내 노력이 자포자기의 형태로 변해 기운이 모두 빠져버리면 울만큼 운 첫째는 갑자기 다시 웃기 시작한다. 감정 표현이 직선적이며 솔직한 첫째의 울음은 위로를 건네며 충분히 울만큼 기다리면 되는 것인데 나는 그 기다림이 언제나 힘에 겨웠다.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고 안으로 표현되는 나와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고 밖으로 표현되는 첫째와의 간극은 내 기력을 밑바닥까지 소진하게도 했다.

그 간극만큼의 갈등과 울음과 고성이 오갔다. 대체 왜, 좀 그러지 좀 마, 엄마 마녀야, 집 떠날 거야.

서로에게 건네는 협박과 서운함과 이해심에 대한 요구와 함께 생성되던 조심성


어느 순간 ‘아’ 하는 순간이 오더니 ‘그렇구나’라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을 거쳐 이제는 표정을 보고 우리는 말을 건넨다. 내가 생각에 골몰하는 표정이면 첫째는 내 미묘한 표정을 알아채고 “왜 그래, 엄마”라는 말을 건네고 동생의 말썽으로 곤란해라는 중이면 내 행동을 예측해서 “하지 마, 엄마”라는 말을 미리 건넨다.


나 역시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고, 먹고 싶은 것은 꼭 먹어야 하는 첫째의 성격을 알게 됐다. 그러지 못하면 굉장한 스트레스 상황에 아이가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치원도 그만두고 동생과 엄마와 하루 종일 지내야 하는 첫째에게 방문을 닫고 혼자 핸드폰 보는 시간을 조금 내준다든가, 달콤한 군것질거리를 둘째 잘 때 첫째에게만 내준다든가 하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평화의 시간이 찾아오도록 애쓰고는 했다.


장미꽃의 요구에 괴로워 자신의 별을 떠난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장미꽃의 잔꾀 뒤에는 애정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고. 너무 어려서 자신은 꽃을 사랑할 줄 몰랐다고.

장미꽃의 요구에는 사랑이 존재했다. 관심받고 싶고, 돌봄 받고 싶은 장미꽃.

어린 왕자의 눈길을 자신에게 쏟게 하고 싶은 장미꽃.

어린 왕자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요구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숨어있었다.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구의 수천 송이의 똑같은 장미꽃 앞에서 속상해서 풀밭에 엎드려 울던 어린 왕자는, 자신과 장미꽃이 보냈던 시간으로 자신의 장미꽃이 소중한 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천 송이 다른 장미꽃과는 구별되는 자신과 관계 맺은 오직 하나의 꽃.

시간은 지나간다. 함께 하는 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풍경에는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나와 당신이라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나와 당신이라는 새로운 지도가 형성된다.

함께 걷는 길에서는 마음도 연결되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중요해진다.


함께 보냈던 시간 속에서 요구가 아니라 사랑을 발견한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탓하지 않게 됐다.

자신이 어렸던 것이다.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서 사랑할 줄 몰랐던 것이다.


첫째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보냈던 시간으로 서로를 발견했다.

서로는 이제 표정을 보고 몸짓을 보고 마음을 안다.

우리가 보냈던 시간은 서로에게 가는 마음을 선물했다.

너로 인해 괴로움으로 잠 못 드는 시간은 사랑으로 길을 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제 너는 마음으로 나를 본다. 나 역시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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