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by 북남북녀

버렸어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었다. 엄마를 보면서.

혹시 나를 버린 적 있느냐고.


어느 날 알지 못하는 사람 집에서 잠을 깼다. 벽에 시화집이 걸려 있어 그 화집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두운 색 배경에 작은 집 한 채와 커다란 나무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나무에는 붉은 감이 한 개 혹은 두 개 걸려 있었다. 나무에 이파리 하나 걸리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겨울밤의 풍경. 그 그림 한구석에 적힌 시.


애비는 종이 었다/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서정주의 자화상.


시를, 그림을 보고 또 봤다. 낯선 곳에서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가게에서 오백 원짜리 빵을 하나 사서 도시락 대신 들고 학교에 갔다.

그런 날이 하루였는지, 이틀이었는지 알지 못한다. 기억은 단편적이다. 여기저기 잘린 영화 필름처럼.

그러나 각인된다. 감정이라는 것은.

버려졌다고.

사실과는 상관없이 나는 그때 버려진 거였다.

사정상 잠깐의 맡겨짐이었으나.


그 후로도 여러 가지 것들이 내가 부모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막았다. 각인된 감정은 쉽게 풀어지지 못하게 엉키거나 얼어있었다. 아무도 나를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부르지 않았으나 스스로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불행의 늪을 헤엄쳐 다녔다. 불행의 늪은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숙이.


“나는 얼어붙었거나, 녹는 중이었다"라고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이야기한다. 그 역시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를 시기했다. 아들들은 곱셈이었으나 딸은 나눗셈이었다. 딸의 금발을 갈색이라 말하고 딸의 키가 자신보다 작은 것을 매번 확인했다. 거울 앞에 딸을 세워놓고서. 딸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딸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는 어머니.


작가는 얼어붙는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열네 살부터 독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하다가 열일곱 살에 독립에 성공한다. 딸이 독립할 때조차 어머니는 쓸만한 가방들을 두고 허름한 가방 하나를 내준다.


이야기는 살구로 시작된다. 알츠하이머 질환에 걸린 어머니. 처분해야 하는 어머니의 집. 그 집의 살구나무에서 따온 살구 더미들. 어느 순간에는 어머니와 연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작가에게 살구 더미는 불안을 던진다. 살구 더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새로운 문제 앞에 있다. 어머니와 관련된.


동화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 문제에 휘말렸다가 그것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동화에서는 ‘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힘없는 이들의 서로에 대한 친절한 행위가 살아남기에 적합한 수단이 된다고.

살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동화로, 프랑켄슈타인으로, 눈의 여왕으로, 체 게바라로, 아이슬란드로 이어진다. 눈의 여왕에서 얼어버린 카이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감정이었다. 게르다의 눈물이었다. 체 게바라는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되어 변화한다. 의사에서 싸우는 사람으로.


이야기는 변화를 일으킨다. 구원 혹은 죽음이라는 결과가 파생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남편과 자식의 사체를 먹고 살아남아 훌륭한 삶의 본보기가 된 여인이 있었고,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진 미로 속에도 들어가 본다.

여러 이야기들을 거치며 작가는 서서히 변화된다.

변화된 작가는 겁이 많았던 어머니, 소심했던 어머니, 열망대로 살지 못한 어머니를 발견한다. 자신과 닮은 어머니, 어쩌면 같은 편이었을지 모르는 어머니를.


충분히 깊게 이해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이자 사랑이다.


살구 더미의 불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거치며 용서이자 사랑으로 변한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얼어있었던 작가는 알 수 없는 힘에 휘둘렸던 그래서 어긋나는 미로 같았던 어머니를 이해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장례를 치른 후에 나는 꿈을 하나 꿨다. 꿈속에서 내가 자는 방으로 엄마가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미안하다 말한다. 그리고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꿈이었으나 나는 이 이미지를 붙잡았다. 아버지와 같은 장례식을 두 번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언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기회를 꿈이 선물해왔다. 나는 그 선물을 사용하고 싶었다. 기꺼이.

열두 살 때 남의 집 살림을 해서 동생들을 공부시켰다는 엄마. 엄마가 걸어온 길은 내가 걸어온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느끼던 불친절함은 그 척박한 땅의 소산일 터였다.


나는 엄마가 살기 위해 내게 행한 불친절함에 묶이기보다는

엄마가 걸어온 길을 함께 걷고 싶었다. 그 척박한 땅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엄마의 이야기 속으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것이 자신의 비극일지라도, 그 이야기 때문에 본인이 불행할지라도 계속 이야기한다. 혹은 그 이야기를 멈추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이야기가 좋다. 이야기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싶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당신의 이야기로 길을 만들어 나오고 싶다.

내 이야기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막연하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전 10화장미꽃의 요구에 시달리던 어린 왕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