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관련된 오류가 미치는 영향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최초의 기억이 있다. 원형에 가까운 기억, 내가 가지게 된 감정이란 것을 규정하는 기억,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일조하는 기억들이.
잔혹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자신을 새로 창조해야 한다.
그다음에 세상을 새로 상상한다.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을 읽으며 적어뒀던 구절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반추하는 건 주로 사랑받은 기억이다.
이것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의 이제 젊지 않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하는 말이다. 늙은이의 노쇠현상을 말하면서. 더 젊었을 적에는 아침에 일찍 깨면 글을 쓰고 마당에 나가 정원을 손보고 원두커피 내려 마시기를 즐겼는데, 늙어서는 그런 부지런을 떨기보다는 게으름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냥 자리에 누워 먼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그 뒤로 저 구절이 나온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주로 사랑받은 기억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조부모와 숙부까지도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고 집안의 첫 손주였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간난이' '섭섭이' 등의 성의 없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던 시절, 작가의 이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옥편을 찾아가며 밤새 고심해서 지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외출했다 돌아올 때 꼭 사탕을 사 왔기에 작가는 사탕 봉지를 가지고 돌아오는 조부를 기다린다. 혀가 사르르 녹아날 듯한 눈깔사탕은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던 작가 몫이다.
작가가 고향 개성을 떠나 서울에서 초등시절을 보낼 때는 학교에서 개성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된다. 그걸 알게 된 할머니는 베보자기에 송편을 싼 보따리 세 개를 이고 개성역에서 작가를 기다린다.
작가는 어린 마음에 그 상황에 창피함을 느꼈으나 이제는 할머니가 송편 쌀 때 썼던 베보자기를 즐겨 쓰고 아끼는 사람이 됐다.
이러한 일들은 이제 젊지 않은 작가가 새벽에 일어나면 자리에서 반추하는 기억이며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존중받고 사랑받았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기억이기도 하다.
지금 내 기억을 반추해보면 살맛 나게 사랑받은 기억도, 그렇다고 잔혹하다고 말할 수 있는 끔찍한 기억도 없다. 학교 다닐 적,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쳐줄 사람을 기다리면서는 오지 않은 사람에 대한 서러움이라는 감정이 들어섰고 식구 많은 집,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의 부족한 물자 속에서는 불만에 가까운 결핍이 생성됐다. 시골학교에서 한 달 보내고 전학 온 서울의 초등학교에서의 생활은 소외감이라는 것을 알게 했고, 어린이날 행사에 불우이웃 돕기 어린이로 뽑혀 전교생이 듣는대서 내 이름이 말해질 때는 수치감이 형성됐다. 이때의 화끈화끈하고 쭈뼛쭈뼛하고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감정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의 작가처럼 사랑받은 기억보다는 서러움과 창피함과 결핍의 기억에 더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관점이라는 것을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하며 알게 됐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쯤 유치원이나 학원 같은 곳을 다니고 싶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상냥하고 어여쁜 선생님과 다정한 친구들이 있을 그곳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을 상상했다. 어린 마음에도 우리 형편에 그런 것은 불가능한 꿈이라 여겨 감히 엄마에게 표현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잠자기 전이나 심심할 때 보지도 못한 선생님과 친구들을 상상하며 혼자서 흐뭇해하고는 했다.
그러는 중 동네에 새로운 피아노 학원이 생겨 그 학원 선생 두 명이 우리 동네로 와서 전단지를 배포했다. 그 전단지를 받고 나는 용기가 생겼던 듯하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검은색의 고상해 보이는 악기가 꼭 누르고 싶어 지기도 했다.
엄마가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는 부엌에서 엄마의 등을 보며 엄마 나 피아노 학원 가고 싶어, 새로 생겼데. 했다가 날카롭고도 높게 소리치며 나를 뒤돌아보는 엄마의 서슬 퍼런 눈빛에 잔뜩 주눅만 들었다. 아마 내가 때를 잘못 맞춰 엄마에게 말을 꺼냈겠으나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타인의 거부에 약한 사람이 되는데 한몫하는 경험이 됐다.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나는 지금까지도 타인에게 어떤 요청을 잘 못한다.
그러나 기억은 공평하지 못했다. 나는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그 기억이 누락됐을 뿐.
C.S 루이스의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을 읽고 저 거부 사건을 연결해서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났더니 '너, 피아노 학원 다녔잖아, 엄마가 보내줬잖아'라는 소리가 마음에서 들려왔다.
어릴 적 거부 사건 이후로 한참 후인 초등 3학년 때였다.
동네 몇몇 아이들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엄마는 나도 다니라고 했다. 이때는 내가 요청했다기보다는 엄마 쪽에서 먼저 제안해 온 거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재미에 다니기는 했으나 피아노에 대한 열망은 사라진 뒤였고 몇 개월 다니다가 친구들이 그만둘 때 나 역시 그만두게 됐다. 한 달에 한 번 돈 봉투를 가져가는 날만 성의 있게 레슨을 해주는 피아노 선생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때는 피아노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 더 열중했던 듯싶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잘 요청하지 못하게 된 저 거부의 기억'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녀 나라는 사람의 성격 형성에 기여한 바가 큰데, 피아노 학원을 다녔네라고 누락된 기억이 생각난 것은 최근 일이다.
엄마가 내가 원했던 때를 기억하고서 보내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는 내게 소리도 질렀지만 결국에는 피아노 학원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바라던 때와 시간 차이가 있어 그것을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피아노 학원에 대해 강한 거부를 한 기억이 왜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영향을 미쳐 왔을까 생각해 보니 처음이라 그렇다는 결론이 나왔다.
내 욕구를 소리 내어 다른 사람에게 말했던 것을 의식한 것이 처음이었다. 유치원은 안될 게 뻔하니 나름대로는 고심해서 시간이 짧은 학원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말한 최초의 발화의 기억. 욕구와 관련된.
그것이 강한 거부로 부딪쳐 왔을 때 욕구 전체가 모멸당하는 입장에 서게 되고 그것이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로 변형됐다. 욕구라는 것은 숨겨져야 하는 것으로.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 나게 하는 것은 없다고,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존중받고 사랑받았다는 확신이 든다는 작가도 이런 구절을 쓴다.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슬퍼하지 않은 어린 날이 어디 있으랴
작가는 어린 시절 질환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의 손에 의해 정들었던 고향 개성을 떠나 서울로 와야 했다. 아프다면 아픔을 더 끌어당겨 불행이라는 어둠 속에 파묻혔을 수도 있겠으나 고향 뒷마당에 있던 꽃들을 기억하는 것이 이 에세이를 쓴 작가의 시선이다.
사랑도 그것을 알아보는 자에게 기억을 남긴다.
꽃을 기억하며 살지 죽음을 끌어당기며 살지는 또 각자 사는 사람의 몫으로 남는 듯하다고 젊지 않은 작가가 쓴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작가처럼 살맛 나게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 것은 사랑받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볼 눈이 없기도 했던 거라고 지금은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