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정 많은 둘째에게

겁 많고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것

by 북남북녀


멋쩍은 미소를 짓네. 아니면 민망한 표정일까.

오 분 전에 아빠와 누나와 눈을 만지겠다고 나간 너는 나가자마자 아빠에게 안겨 들어왔어.

“땅에 발을 대지를 않아”라며 아빠는 너를 놓고 누나와 다시 나갔지.

누나는 눈 쌓인 놀이터에서 아빠가 끌어주는 썰매를 타고 있어. 베란다에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너에게

“엄마와 같이 나갈까?” 물으니 고민하는 표정이야.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으니까.

눈을 만지러 나간 너는 눈 쌓인 땅이 무서워서 아빠에게 안겨있으려고만 하다가 결국 아빠에게 안겨 들어왔지. 나가고는 싶으나 무섭기도 해서 고민하는 네 표정.

다시 한번 나갈까 물으니 고개를 끄덕여 함께 나왔어.

아니나 다를까 너는 엘리베이터부터 안아 달라고 해.

이번에는 엄마에게 안겨 눈 쌓인 놀이터를 나왔지.


너를 보고 누나와 아빠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바닥을 내려다보니 녹지 않은 눈과 얼음덩어리 들이 보여.

너를 안고서 “밑 에봐, 눈이야. 발로 차볼까?” 하고 탁 치니 네가 좋다고 웃어.

“우와 얼음이야. 깨볼까?” 하고 발로 탕탕 치고 밟으니 네가 좋다고 또 막 웃어.

손으로 만져볼까 하니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너는 드디어 눈 쌓인 땅에 발을 댔어.

너는 나처럼 발로 눈을 쳐냈다가 밟아보다가 손으로 만져봤지.

같이 만지며 “우와, 차가워 차가워” 하니 너도 만지며 “차, 차” 하면서 손으로 눈을 만지고 탁 쳐서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어. 아예 철퍼덕 앉아서 바지에 눈을 묻히고 본격적으로 눈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지. 모래놀이를 하듯이.


그러면서도 옆에서 썰매를 타고 있는 누나를 한 번씩 곁눈질하길래 “썰매 타볼까?” 하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무서워”그래.

그러면 나는 “괜찮아, 무서워도. 다음에 타면 돼” 그러지.

썰매를 타기보다는 썰매에 대한 무서움이 크다는 것.

괜찮은 거야. 너만의 속도가 있다는 거니까.


네가 처음 길냥이를 만났을 때도 무서워했잖아.

누나는 좋아서 만지고 간식을 주는데 너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었어.

그러다가 지금은 길냥이가 보고 싶어서 밖에 나가자고 그러지.

슈퍼 앞의 길냥이에게 가서 간식을 주고 만지고 싶어서 밖에 나가자고.


너는 보는 것 자체가 사랑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스무 걸음 떨어져 있다가 한 걸음 앞으로 가고 또 한걸음 앞으로 가고 그러다가 어느 새 길냥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예뻐,예뻐 하고 있었지

길냥이를 보며 천천히 다가가는 시간동안 너는 길냥이에 대한 사랑을 키웠어.

무서운게 많은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이유가 될 정도로 애정을 키워나갔지.


이 겨울 앞으로 눈이 얼마나 더 올지는 모르겠어. 그러나 엄마는 네가 눈과 친해질 수 있을 만큼은 왔으면 좋겠어. 무서워하던 썰매의 속도감도 즐길 수 있도록.

꼭 이번 겨울에 눈과 친해지지 않더라도 이번에는 만질 정도로는 눈을 알았으니 다음 해에 썰매를 타도 괜찮다고는 생각해.

썰매를 안타도 상관없으나 네가 누나가 썰매 탈 때 바라보는 눈빛을 보니

썰매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는 듯해서 너도 한번 타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앞으로 네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교육기관에 가게 되면 ‘남자가’라는 말을 많이 들을 거야.

남자가 이런 걸 무서워해, 남자가 이런 걸로 울면 안 되는데, 남자가 이런 것 정도는 먹어야지.

그래서 나는 네가 그러한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해주려고 해. “무서워해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못 먹어도 괜찮아”

남자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남자가 감정을 표현해도 된다는 것을 너에게 먼저 알려 주고 싶어서.

세상으로 나가 ‘남자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너 자신을 억압하고 맞추려 노력하기보다는 “괜찮아, 남자도 그럴 수 있어”라고 너 자신의 속도로 생각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기기도 바쁜 세상에 쓸데없는 노력을 하면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야.


너는 외출할 때 엄마, 아빠의 신발을 작은 손으로 집어주며 신으라 하지. 고집부리다가도 엄마, 아빠가 우는 시늉을 하면 금방 고집을 내려놓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안 그래도 되는데도 꼭 엄마, 아빠 입에 한번 대어주고 먹기도 하고.

이러한 너의 다정함은 너의 속도와 관련이 있을 거야. 천천히 느리게 아는 만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만큼 그것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니까. 너에게는 결과보다는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지.

그 과정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지.

나는 앞으로도 너에게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해줄 거야. 너의 속도에 답답해할 세상이 너를 찍어누르기 전에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무서워도 괜찮아” 계속 계속 말해줄 거야.


천천히 다가가 깊이 아는 것은 괜찮은 거야.

아무것도 몰라도 그것도 괜찮은 거야.

네가 있는 것만으로 괜찮은 거야. 그게 모든 거야.

너만으로 괜찮은 거야. 그게 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