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손에 쥐고 화장실로 간 아이는
양육과 본성의 고민에서
엄마, 엄마 첫째가 화장실에서 엄마를 소리쳐 부른다.
볼일을 보고 난 후 뒤처리가 미흡한 나이라 도움을 청하는 소리다.
소리를 듣고 화장실로 들어간 엄마는 깜짝 놀라고 말았으니, 세 살 배기 둘째가 한 손에는 바나나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변기 레버를 쥐고 서있었다. 입에는 바나나가 듬뿍 든 모습으로.
항문기인 둘째는 배변 활동에 관심이 많다. 첫째가 볼일을 볼 때면 꼭 따라 들어가 힘을 주는 모습을 관찰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확인한 후 자신이 변기 물을 내린다.
화장실에서 바나나를 쥐고 있는 둘째의 모습에 엄마는 놀랐으나 태연을 가장하며 얼른 첫째의 뒤처리를 도와준다.
첫째가 화장실을 나가고 오물오물 바나나를 먹으며 변기 속을 살피던 둘째가 웩하며 구역질을 한다. 입안의 작은 바나나 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이놈이 바나나 한 잎을 다시 베어 물고 변기 물 내려가는 것을 살펴보려 해 엄마는 둘째를 재촉해 얼른 화장실을 나오게 한다.
<괴물의 심연>에서 뇌과학자인 저자는 아이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본성이 80퍼센트라면 양육이 20퍼센트라는 것이다.
두 아이를 키워보니 나 역시 본성에 비중을 더 두게 된다. 두 아이가 같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지만 반대의 성격을 띠며 좋아하는 음식도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유전자의 배합이 어떻게 이뤄졌느냐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같은 경우는 성격 면에서 친가 쪽 유전자가 두드러진다면(아빠를 닮았다. 외향적) 둘째 같은 경우는 외가 쪽 유전자의 성격이 두드러진다.(엄마를 닮았다. 내향적)
아직 응가의 개념이 없는 둘째는 용감하게 바나나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으나, 배설물의 역한 냄새에 구역질로 반응했다. 응가에 대한 인식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냄새에 대한 본성적인 반응은 표현됐다.
첫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텔레비전 틀어도 돼?”, “엄마 화장실 가도 돼?”묻고는 한다. 텔레비전 보기나 화장실 가는 것에 대해 특별히 제지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묻는 걸까 의아했다. 첫째에게 그런 건 안 물어도 괜찮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가고 싶으면 가라고 말해도 첫째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구역질하는 둘째의 행동이 이런 첫째의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가 됐다.
첫째는 신나게 놀다가 감정이 격해지거나 흥분하면 행동이 과격해진다. 동생을 잡거나 밀기도 하고 갑자기 발을 세게 동생 쪽으로 뻗기도 한다. 한 번은 내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소리를 크게 질러 깜짝 놀란 적도 있다.
타인을 해하려는 의도 없이 즐거움의 연속에서 나오는 신체의 반사적인 행동이나(힘 조절을 못하는)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라 제발 그러지 좀 마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놀이 중간에 같은 행동이 몇 번 반복되기도 해서 말 좀 들어라는 이야기도 수시로 하게 된다.
그러면 첫째는 의기소침해지거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다.
신나던 놀이는 울음바다로 끝나게 될 때가 많고 엄마인 나는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구역질이 나오는 둘째의 행동으로 그것은 첫째가 흥분을 하면 나오게 되는 본성에 가까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본능적인 영역)을 내가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텔레비전 틀어도 되나 화장실 가도 대를 첫째가 귀찮을 정도로 반복해서 물어온 이유는 첫째가 흥분할 때마다 하는 반사적인 행동에 말 좀 들어라는 내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말이 첫째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래도 엄마의 말을 듣고 싶은 마음에 귀찮을 정도로 텔레비전 보기와 화장실 여부를 물어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엄마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엄마 말을 듣고 있었으나 엄마인 내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네가 빨리 이야기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발음도 정확하고 문제가 없었기에 그런 소리를 들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내향성이 깊어 표현도 잘하지 못하고 그 말을 들을 때면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의도적으로 말을 느리게 하는 습관을 들였다. 특히 감정이 벅차오르는 순간 말하기를 해야 할 때는 감정을 덜어내고 한 템포 쉬며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상태에서 말하려고 노력했다. 남편은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졸리다고 하는데 아마도 감정을 덜어낸 채 말하는 습관이 배어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졸림을 유발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말투일 수 있으나 그 뒤로 소통에 문제가 없었으니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감정 과잉 상태에서 본성적인 모습으로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면 행동을 교정함으로써 그것을 조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첫째는 아직 그것을 알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고 경험도 부족하다.
첫째가 흥분해서 반사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걱정스러워 주의를 주게 되나 첫째 입장에서는 도저히 변할 수 없는 영역을 계속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본성에 관련된 부분이고 그 부분의 교정이 일어나려면 첫째가 스스로 느껴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이해하고 통합하는 뇌의 발달도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첫째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행동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문제가 있다는 듯이) 첫째에게는 폭력적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바나나를 들고 화장실로 가겠다고 한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말리고 싶겠으나 부드럽게 설득해도 고집한다면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구역질을 한다면 치워주고, 아이를 탓하는 이야기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의 몸(뇌 포함)과 마음이 성숙하면 어느 때는 분명 바나나를 들고 화장실로 간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테니.
본성에 가까운 아이의 행동을 섣부르게 막아서다가는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아이에게 억울함이나 분노라는 부정적인 감정의 씨앗만 심어놓을 수 있다.
훗날 아이가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더라도 뿌려진 감정의 씨앗들은 싹을 틔우고 잡초처럼 자라나 아이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