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치자면 연한 강박이다. 일정한 시간에 같은 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나는 일, 같은 시간에 집안일을 시작하는 것.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좋고 문을 잠그면 두세 번 확인한다.
침구나 옷 같은 경우는 같은 색깔로 맞춰 있는 것을 좋아한다.
열 맞춰 정리된 물건이나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나는 내가 일반적이고 남편은 그러한 질서(가지런한)에 너무 무심하다고 생각하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본인이 일반적이고 내가 너무 강박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남편 왈 ‘네가 부자로 태어났다면 사람들 꽤 괴롭혔을 거야. 먼지 한 톨 보기 싫어서.’)
그러나 이런 성격은 실용적인 부분이 있다. 편의점만 들어가도 열 맞춰 배열된 물건에 ‘오 좋다’라는 탄성이 나오고, 도서관에 가면 열 맞춰 배열된 책들에 아주 행복해진다. 좋아하는 책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정리되어 있는 모습은 행복감을 한층 상승시킨다. 꼭 바다나 산에 가지 않더라도 이러한 가지런한 풍경은 마음속의 시끄러움과 대비하여 잔잔한 편안함을 안겨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창고 정리를 한 시간여 걸쳐 정리한 적이 있다.
창고에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날짜 순서상 먼저 빼야 하는 박스들이 뒤에 쌓여 있어 물건 찾기가 힘들었고 물건을 뺄 때마다 박스를 열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어느 날 날 창고 안 박스 안의 물건들을 모두 빼서 날짜 순서대로 정리했다. 물건을 찾고 빼기 쉽도록.
집에서 육아를 하게 되면서는 첫째와의 몇 번의 갈등, 남편에게 쏟아 내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인한 몇 번의 싸움 끝에 오로지 내가 지킬 수 있는 내 소유의 강박만 신경 쓰기로 했다.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 정도. 딱 그 정도만.
거기에 사소하게 하나 더한 것이 있다면 침대 정리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아침밥을 먹인 후 후식을 준다.
아이들이 달콤한 것을 먹으며 집중해 있을 때 설거지 걸이도 던져두고 뛰듯이 안방으로 간다.
베개와 이불이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라 아이들이 다른 방에 있을 때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오늘, 아이들이 눈치를 챘다. 패드를 펼쳐 먼지를 털어내고 있을 때 아이들이 들어왔다.
엄마가 정리하는 것을 보고 신나 하며 침대에서 뛴다. 한 걸음 후퇴다.
‘조심해’라고 말하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몇 번 뛰고 지루해진 아이들이 두 번째 놀이를 제안한다.
“엄마, 괴물이야.”
“응, 그래” 대답하고 커다란 패밀리 침대에 눕는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구르기 시작한다. 낮은 목소리로 괴물의 음산함을 흉내 내며 악어떼 노래를 부르면서.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악어떼가 나온다’ 하면서 아이들에게 손을 쫙 뻗으며 잡는 시늉을 한다. 이놈들은 좋다고 소리 지르며 도망간다.
침대에서는 먼지가 풀풀 날리고 아이들은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며 좋아한다.
먼지 먹은 괴물은 목이 잠겨서 캑캑 거리며 계속 구른다.
괴물 놀이의 긴장감이 떨어질 때쯤 첫째는 캠핑카로 돌아온다. 침대는 괴물의 터전에서 미국에 있는 캠핑카가 된다. 첫째가 장난감 식판에 브로콜리, 소시지, 고기, 빵, 가지 등의 야채를 예쁘게 담아온다. 캠핑카에서의 식사시간이다.
속이 깊은 첫째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각각 좋아하는 음료까지 챙겨 온다.
“둘째는 바나나우유 나는 초콜릿 우유 엄마는 맥주.”
플라스틱으로 만든 뽀로로 주황색 주스 음료수 병을 맥주라고 건네준다.
노란색 뚜껑을 열어 꿀꺽꿀꺽 마시는 시늉을 한다.
“엄마, 어때?”
“응. 너무 시원해. 좋다.” 하니까
“시원해?” 말하며 활짝 웃는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와 뿌듯한 모습이다. 그 와중에 둘째는 건배를 하자며 자기 컵을 앞으로 내민다.
우리는 침대 캠핑카에 앉아 장난감 컵과 병을 맞대며 건배를 외친다.
침대 캠핑카에서의 식사시간도 몇 번 반복되니 시들해지고 첫째가 수영장을 가자고 한다. 우리는 상상으로 캠핑카를 타고 베란다 수영장에 도착한다.
베란다에는 놀이 매트가 깔려 있다. 한 귀퉁이에 첫째가 엎드린 후 팔다리를 휘저으며 수영하는 흉내를 낸다. 둘째도 첫째를 따라 팔다리를 휘저으며 수영을 한다. '엄마도 수영해'라는 말에 아니야 엄마는 구경하는 게 좋아라고 말하며 앉아서 지켜본다. ‘와 잘하네’라는 추임새도 넣어주면서.
그나저나 아홉 시 무렵 침대 정리하러 들어갔는데 시간은 이제 열두 시를 향해 가고 있다. 아침 설거지 걸이는 싱크대에 그대로 있고 거실 바닥에는 여기저기 장난감이 흐트러져 있다. 침대는 놀이하느라 다 헤쳐진 모습 그대로 유지 중이다. 정리를 하고 청소기를 한번 돌려야 할 텐데 당장은 점심 준비가 우선이다.
강박, 엄마의 강박 따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는 하루가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아이들은 치료사다.
엄마의 강박 따위는 가볍게 치료할 수 있는.
물론 이 ‘가볍게’는 가볍게 만은 아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이상.
강박 대신 흰머리가 한 열 개 아니면 스무 개는 더 생겼을 테니까. 앞머리가 하얗다. 눈 온 것 것처럼.
첫째 말로는 ‘귀엽다’이지만.
어느 날 애들 아빠에게 내 앞머리가 하얗다 했더니 그 말을 들은 첫째가 귀여워 그랬다.
하얀 앞머리를 보며 귀엽다고.
엄마는 너희들 덕분에 오늘도 많이 귀여워졌겠구나.
펑펑 눈이 온 것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겠지.
고맙다, 이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