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읽기
오래전이지만 성격검사에서 내향성이 90퍼센트 이상이었다. 친구관계라도 한 명 이상 만나는 것은 부담스럽고 직업을 찾는다면 혼자 하는 일이나 조용한 직업이 어울린다. 이런 직업을 원하는데 반대의 직업군에 있으니 힘들 만도 하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는데. 아이를 낳으니 내향성이 100퍼센트 일거 같은 남자아이가 나왔다. 여자아이인 첫째 소리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 맞추기 곤란해, 했었는데. 나보다 더한 내향적 성격인 나도 역시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어린이집, 학교, 놀이시설, 친척이나 지인 집 방문. 무엇이든 안 해, 안가. 가야 하는 이유나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계속되는 아이의 거부에 “너 안 가면(안 하면) 영상 안 보여줄 거야” 협박으로 아이의 행동을 끌어내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며 내향적 기질이 줄어들기는 하나 기본적인 성향은 변하지 않는 듯싶다. 성격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치원 시절부터 태권도를 추천하고 있는데 아홉 살인 지금도 꿈쩍하지 않는다.
최근 나도가 생각지도 않던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엄마, 모모가 내가 그림을 대충 그린데.” 말하며 심란한 표정으로 독서노트를 뒤적인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독서노트는 책을 한 권 읽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인상 깊은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짧은 소감을 기록한다. 한 주에 한 번 독서노트를 검사하는 선생님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아이에게 ‘독서왕’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는데 나도는 1학기 내내 독서왕이었다. 독서왕 타이틀을 두고 아이들끼리 경쟁관계가 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라이벌 중 한 명인 모모가 나도의 독서노트를 죽 훑어보더니 “너는 그림을 대충 그리잖아. 소감은 너무 짧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친구에게 한 소리 듣고 자신의 그림을 세세히 살펴보는 나도.
“독서노트니까 그림은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은데 이번에 그림일기 수업도 시작됐으니까 누나 다니는 미술학원 같이 다녀 볼래? 한 달만 다녀도 그림 그리기가 훨씬 쉬울 텐데.”
안 그래도 그림일기가 시작되고 한 주에 한 번 선생님에게 그림일기를 제출하는데 그림을 대충 그린다는 친구의 말이 신경 쓰이는지 그림일기를 시작할 때마다 엄마 못 그리겠어, 어떻게 그려 말하며 곤란해하는 중이었다. 배움의 필요성을 느껴 용기를 끌어내 미술 학원에 간 첫날은 너무 힘들다며 울상이더니 세 번쯤 출석하니 재미있다며 웃는 얼굴이다.
오카리나 연주를 좋아하는 나도가 기타에 관심을 보여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미니 기타도 선물로 받았는데 소리가 다니는 음악학원에서 주말에 과자 파티를 진행한다고 한다. 소리가 신나서 나도에게 오라고 하니 나도는 사람 많아? 묻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피아노 배우면 기타도 빨리 배울 수 있어. 누나가 초대하는데 갔다 와 말하니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보이더니 또 고개를 도리도리. 피아노에 관심은 있으나 사람이 많을까 두려워 망설이는 아이의 거절에 영상 30분 보기로 용기를 끌어내 과자 파티에 다녀왔다. 다녀온 후 생각보다는 편안했는지 피아노를 배워보겠다고 해 학원 하나가 추가 됐다. 피아노는 처음부터 관심이 있어서인지 첫날 다녀온 후 재미있다며 웃는 얼굴이다.
발달 장애 아이 히카리를 키우며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숲 속에서 아이를 키울까 고민하던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학교라는 곳이 자기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언어를 배우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교실 소음 때문에 힘들어하던 히카리가 비슷하게 소음을 힘들어하는 친구를 만나고 친구가 좋아하는 음악에 관심을 보인다. 히카리에게는 음악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언어였다.
“지금 히카리에게 음악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깊고 풍부한 감정을 스스로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사회와 연결해 나가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되는 언어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나의 나무 아래서>p22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것이 밖과 연결되는 경험. 이 경험이 많아지기를 희망하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춤거리는 아이의 등을 떠민다. 해봐, 어때,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