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적인 만남

by 북남북녀

전기난로가 주황빛으로 타고 있었다. 입술을 마르게 하는 건조한 공기로 얼굴이 따끔거렸다. 밤샘근무를 위해 믹스커피 한 잔을 책상 위에 타 두고 있을 때 당신은 자신을 돌보지 않아요, 학대하는 거 같아요. 커다란 의자를 뒤로 젖혀 기댄 상태로 안 됐다는 시선을 내게 보내며 옆 근무자가 말했다. 옆 근무자의 책상 위에는 커피 대신 검은 성경책이 놓여 있었다. 커피 잔을 들어마시려다 말고 나는 웃고 말았는데 저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나에게 투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창백한 피부에 경직된 표정. 후줄근한 옷차림에 며칠 감지 않은 듯한 기름진 머리카락. 얼핏 보면 옆 근무자는 세상 모든 짐을 지고 있는 순교자를 연상시켰다. 아버지가 목사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학대하는 거 같아요,라는 말이 공기 중에 머물다가 드문드문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타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곳이었고 방어이자 공격이기도 한 공간이었으나 옆 근무자는 내 어떤 점을 보며 그런 결론을 얻은 걸까 궁금해졌다. 실소하지 말고 진지하게 물어볼걸 후회까지는 아니나 아쉬움 같은 감정이 미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떠오른 기억에 그럴 수도 있겠네.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무렵 동네 아주머니가 나에게 어디를 가자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회색 건물 계단 앞에 섰다. 계단을 오르니 넓은 공간이 나오고 평소에 맡지 못하던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여닫이 목재문을 여니 어머니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의 머리는 헝클어졌고 한쪽이 납작하게 눌려있었다. 자루 같은 흰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빛이 검다고 느껴졌다. 스러져가는 저녁 해가 비치는 온돌방 바닥에 누운 어머니는 우리 안의 동물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형상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 공간 안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성인이라면 하염없는 눈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눈물이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흘러넘쳤다.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으러 나온 아주머니가 왜 울고 있니 묻는다. 아무런 말도 나는 할 수 없다. 이유를 나 역시 알 수 없다. 아주머니는 나를 데리고 어머니께로 갔고 어머니 역시 나에게 이유를 재차 물었으나 한 마디의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나를 조금 모자란 아이로 인식했던 듯싶고 그래서 그러려니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은 동생이 태어난 날이다. 동생과 나이차이가 다섯 살이니 여섯 살 무렵이다.

커가면서 나는 유독 여성들에게 동정적이었는데 매 맞는 여성을 보거나 방치된 여아들 힘들게 노동하는 여성을 볼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머리를 굴렸다. 어머니야 잘 알 수 없었겠으나 어린 시절 물을 길어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열심을 냈고(초등학교 가기 전의 나이에 양손에 물통을 들고 하루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이사 같은 가족의 노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남자아이같이 힘을 쓰려 기를 썼다. 왜 그런지 나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그래야 할 거 같았다. 또래 관계가 형성되는 시기에는 집을 지나쳐 친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세 명이 길을 걷는다면 한 친구 집 앞에 가고 다른 친구 집 앞에 간 후 터덜터덜 혼자 집으로 향했다. 이것 역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그래야 할 거 같았다. 친구가 집 앞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기도 했다.

여초지대라 불리는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가 순교자를 떠올리는 인상의 근무자로부터 ‘당신을 돌보지 않아요.’라는 말을 들은 곳이다. 여성근로자에 노동 강도가 세다고 알려진 곳이어서 험한 일은 내가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나는 밤 근무 시간에 해놓고는 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지금 역시 여성이 많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한 동료로부터 엉덩이가 너무 가볍다는 말을 농담처럼 들었다. 다른 여성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으면 내 몸은 재빠르게 움직인다. 내가 들어 옮겨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내 손과 발은 자동적으로 그 물건을 향해 달려든다. 필요할 때 문을 열어주고 상대방이 편안할 수 있게 양보하는 것, 또는 발화하는 것. 이런 것은 상대가 같은 여성일 때 자연스럽고 당연한 움직임이다.

이 모든 행동에는 무의식적인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쫓김이었다. 동물 같은 인간의 나약함과 대면하지 않으려는. 어릴 때 봤던 그 형상은 사나운 짐승처럼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그 짐승을 피하려 더듬거리는 몸짓이 내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혜원이라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