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병원에 간다

by 북남북녀

대기실은 마스크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요일에도 병원에 사람이 많다는 것이 이 번 독감의 교훈일까. 건강할 때는 생각하지 못하는 아픈 사람. 나 역시 일요일에 병원에 간 사람 중 한 명이다. 일요일에 병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는 것은 정말로 진짜로 참을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인 거다.

매스꺼워요. B형 독감은 원래 그래요. 관절통이 심해요. B형 독감은 원래 그래요.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하나로 묶은 의사는 죽을 것 같은 나와는 다르게 평온하게 대답한다. 마지막 차트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내 얼굴을 확인한 의사는 열도 있으니까 주사 한 대 맞고 가세요. 1분 만에 진료는 종료된다. 진료는 종료됐으나 7일 동안 열은 잡히지 않았고 매스꺼움은 계속됐으며 전신통증도 줄어들지 않는다. 성인 되어 처음 보는 39.5도가 찍힌 내 체온계.

B가 정신연령 테스트를 했을 때 다섯 명중에 자신의 나이보다 더 나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다른 사람은 한두 살, 세네 살 어리게 나왔는데 나는 다섯 살이 더 얹어 나왔다. 서른이라면 서른다섯으로 마흔이라면 마흔다섯으로 산다는 말이다. 정신 연령 테스트 많이 아니라 그룹 토의 모임에서 리더가 내일 죽는 다면 오늘은 무엇을 하겠는가 질문한다. 이것도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여행을 가겠다, 나무를 심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겠다, 가족을 만나겠다 등등의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나는 똑같을 거 같다고 대답했다. 하루 뒤 죽는다는데 무얼 할 수 있지? 똑같이 살다가 죽는 수밖에. 죽음이 내일이라고 어떤 특별함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나는 이상하게 생각됐는데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내 대답 역시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 나는 내일이 어떤 대단한 날이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내일이 오늘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다면, 밥 먹고, 학교 가고, 직장 가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바람도 가지지 않는다. 똑같은 일상 외에

그런데 이런 독감이라니. 말로만 듣던 독감이 나를 찾아오자 죽을병도 아닌데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며 신까지 찾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독감이라도 미열만 나고 괜찮던데요. 왜 나만 이렇게 심하죠? 왜 하필 지금 이 시기 독감인 거죠?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연차도 없어 빠질 수도 없는데. 애들은 어떡하죠? 방학이라 매끼 밥 챙겨줘야 하는데. 물론 나는 아이가 아니니까 이런 말을 내뱉지는 않는다. 독감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그중에 나란 사람이 더 심하게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고 있으니까. 꼭 나만이 아니라 나 역시, 나도 걸릴 수 있는 거니까. 당연한 말을 왜 해. 원래 그렇다니 견디는 수밖에. 입술을 꼭 깨문다.

푸른색 체크 목도리를 두르고 마르크를 쓴다. 찬 기운 속에서 푸근한 봄기운이 맡아졌을 때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죽지 않았다. 벌써 새싹이 돋아난 나무도 있다. 와~! 내 눈이 내 병이 아니라 밖을 향한다. 와~~ 괜찮네. 속 메슥거림도 먼 곳에 있고 통증도 밖을 보는데 방해되지 않는다. 와~~ 마스크를 내리고 습기 가득한 봄 냄새를 맡으며 옷도 처분하고 책도 정리하고 쌓아온 쓰레기도 버려야지. 간소하게, 발에 채이지 않게. 언제 또 이렇게 아플지 모르는데. 지금으로 충분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거야. 성향은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진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거야, 나는. 어쩌면 고집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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