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헥, 야옹야옹

캐서린 조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을 읽고

by 북남북녀

학창 시절 내내 숏 커트다. 분홍색, 노란색 화사한 색감의 옷은 입지 않는다. 남색, 검은색 어두운 색감 옷을 입는다. 치마는 어색하다. 교복 치마 외에는 멀리한다. 이사할 경우 힘쓰는 일을 자처한다. 목장갑을 끼고 번쩍번쩍 무거운 살림살이를 옮긴다. 하늘하늘 원피스, 긴 생머리, 립스틱, 하이힐, 액세서리. 그런 것은 우습다. 나와 연관이 된다면.

아들 없는 집 4녀 중 셋째다.


4남매 중 위로 오빠 한 명 있는 아들 있는 집, 셋째인 에이가 묻는다.


“첫째(딸)가 좋아, 둘째(아들)가 좋아?”

“둘 다 좋아”

“에이, 아닐 텐데.”

“둘이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거야?”

“둘 다 구할 거야.”

“둘 다 못 구해, 그러다 셋 다 죽어. 누굴 구할 거야?”

“나는 둘 다 구할 거야, 셋 모두 살 방법을 꼭 찾아낼 거야. 이게 삶이야” 정색하며 큰소리로 대답한다.

"우리 엄마는 언니 집에서 형부가 먹은 것을 나보고 설거지하래. 엄마들은 아들을 좋아해."

에이가 대답한다.


산후조리원. 첫째를 딸로 낳은 엄마들은 둘째를 고민한다. 첫째를 아들로 낳은 엄마들은 큰소리로 말한다. 둘째는 없어요. 힘들어서 못 낳아요. 시댁은 아들을 좋아하지요. 딸 낳은 엄마의 작은 목소리.


삼 남매 중 밑으로 남동생 한 명 있는 아들 있는 집, 둘째인 에스에게 내가 묻는다.

“너희 부모님은 아들 조카를 좋아하시지?”

에스가 대답한다.

“아니,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않은데.”

에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 역시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에이, 아닐 텐데”


아이들이 남긴 우유 속에 팅팅 불은 콘플레이크 두 그릇을 한 데 섞는다. 선 채로 훌훌 마신다. 식판에 남아 있는 햄 쪼가리, 된장국물에 남은 건더기와 두부, 씹다만 야채를 한 숟가락에 떠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는다. 설거지하기 전 무슨 의식 같다. 아이들 깎아 주고 남은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사과 조각을 맛도 느끼지 않은 채 씹어 삼킨다. 바닥에 떨어진 수박 조각을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니라 내 입으로 가져간다.


왜 이러지, 그냥 버리면 되는데 뭐 하고 있는 거지. 섬광 같은 질문이 번뜩이며 지나간다. 학습된 행동은 반사적으로 몸에서 튀어나온다. 개처럼 헥헥, 고양이처럼 야옹거린다. 내 어머니, 또 어머니, 또 어머니들이 이렇게 살았겠지. 전수된 행동. 헥헥, 야옹야옹.


갑자기 터져 나오는 고성. 왜 음식을 바닥에 흘리고 그래? 부글부글, 부글부글. 용암이 흘러넘치기 전 부글거림.


원하지 않더라도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 어느 날 무더기로 튀어나올 때가 있다.

커다란 변화와 더불어서.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은 캐서린 조라는 한국계 미국인의 정신 병동 체험기라고 말할 수 있다.

2017년 아들을 낳은 후 산후 정신증으로 정신 병동에 입원한다. 아들의 눈동자에서 악령이 보인다. 아들이 죽어야 한다는 소리도 듣는다. 분노가 많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와 분단 민족의 비극을 품고 있는 가족들. 폭력을 쓰는 남자에게 시달림을 받다가 탈출했던 경험과 시댁의 트라우마 상황으로 전개되는 지적과 비판. 근심, 우려는 저자의 개인적 특성과 만나 아들을 악령으로 보게 한다. 정신의 붕괴를 경험하며 분열된다.


기혼여성보다 독신 여성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출산을 경험한 기혼여성은 모유를 분비하며 체내의 해로운 물질도 배출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배출.

출산은 흐른다. 안에서 바깥으로.

많은 것이 흘러나온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이 아니라 <내 눈동자 안의 지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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