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하나가 켜진다는 것
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를 읽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피부를 칼로 베는 쓰라린 감각을 몰고 오는 캄캄한 겨울밤. 아이는 반으로 잘린 플라스틱 병의 입구에서 종이 빼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고물상 하는 아버지가 어디선가 잔뜩 얻어온 반으로 잘린 플라스틱 병은 집 앞마당에 산처럼 쌓여 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밖으로 나온 아이는 캄캄한 마당에서 움츠려 앉은 두 형체를 알아본다. 추위와 피곤함 탓인지 아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아이는 차가운 바닥에 앉는다. 부모가 하듯이 플라스틱 입구에서 종이를 빼낸다. 부모는 아이에게 아무런 말이 없다. 들어가라는 얘기도, 하지 말라는 얘기도. 하라는 얘기도. 방안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는 꺄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입김조차 고드름이 될 것 같은 찬 공기 속에서 부모도 아이도 말이 없다. 손만 바삐 움직일 뿐이다. 산처럼 쌓인 병이 없어지며 평평한 땅이 드러날 때 아이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불로 몸을 둘둘 만다. 찬 공기는 아이의 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와 한동안 아이의 몸을 덜덜 떨게 한다.
몸의 떨림과 이불의 온기 속에서 아이는 막연히 깨닫는다. 저 깊은 곳에 등불 하나가 켜진 것을. 차마 혼자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모든 사람들 깊은 곳에는 이런 마음의 등불이 고요히 타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앞으로의 삶이 지나치는 자의 삶으로 점철되더라도 한탄과 비애로 몸부림치게 되더라도, 아무도 명령하지 않은 추위 속에 스스로 앉아 있었다는 것은 아이에게 빛이 된다.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는. 무너져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정신의 붕괴는 허용에 있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수없는 공격에도 아이는 등불을 본다. 지금은 지나치는 자로 살고 있다 하더라도 한때는 지나치는 자가 아니었어, 라는 내적 울림. 살을 에는 추위의 기억은 온기가 되어 아이를 감싸준다. 신의 손길과 같이.
학창 시절 “실패는 내가 갖고 있는 가장 확실한 신념이었다”를 배운 조지 오웰. 사회계층의 가장 낮은 계급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확실히 체험한 조지 오웰. 총명한 학생을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쥐어짜는 학교라는 권력 속에서 아첨하고 비틀리고 고통당하고 멸시당하며 괴로워하는 어린 소년. 똑똑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맞닥뜨리게 되는 소년의 불운한 상황. 소년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권력에 아첨하고 작은 호의에 감지덕지할 때조차 소년의 내적 자아는 굳건히 버티고 선다. 유일한 진심은 증오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진실을 깨닫는 눈은 소년의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학대에서 오는 정신적 붕괴를, 또는 망가진 사람이 되어 삶에서 멀어지는 것을.
내 마음속 한가운데에는 늘 내적 자아가 깨어 있어서, 도덕적 의무와 심리적 사실 사이의 차이를 지적하고 있었다. <코끼리를 쏘다>76p
강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이길 자격이 있었고, 그래서 늘 이겼다. 또 약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져도 쌌고, 그래서 늘, 끊임없이 지기만 했다. <코끼리를 쏘다>76p
증오가 진실일 때는 증오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첨하지 않고(아첨하더라도 파괴되지 않고) 망가지지 않는다. 그 ‘진실’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자신은 지킨다. 진실이 아닌 것들로부터 망가지지 않도록.
조지 오웰은 살아남는다. 생존 본능으로. 내적 자아로.
살아남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기만의 내적 울림은 자기만의 길을 찾게 한다. 조지 오웰은 계층적 차별을 뚜렷이 인식하면서(인식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구원의 빛은 신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나를 놓여나게 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은 알았다. 자신에게 빛을 던지는 게 무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