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에 대한 단상

오케스트라 향연처럼

by 북남북녀


아침 7시, 아침밥 준비를 위하여 국을 끓이려는데 윗집인지 쿵쿵대는 소리가 들린다.

저 집은 아침부터 아이들이 노나 보네.

어느 날은 자정이 넘은 시간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로 나오는데 드르륵드르륵 물건 옮기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 시간에 가구를 옮기나.


벽 하나 바닥 하나 두고 나누어진 구조인 아파트에 산다는 건 내 집 아닌 곳의 삐걱대는 문소리, 또르르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 콩콩콩 아이들이 뛰는 소리, 쿵쿵 성인의 발 망치 소리 등이 오케스트라 향연처럼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쿵쿵하면 저쪽에서 삐그덕, 삐그덕. 거기에 쾅하고 문 닫히는 소리까지.


지금 사는 앞집은 문에 종을 달았다.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땡그랑, 땡그랑 종소리가 울린다.

청소를 하거나 아이들과 놀 때 땡그랑하는 종소리가 들리면 산속 깊은 곳의 절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 집에서는 새벽에 윗집 텔레비전 소리가 내 집에서 트는 것처럼 들렸다. 산 아래 아파트여서 조용한 편이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서 책을 읽으면 텔레비전 노랫소리나 드라마 소리가 들려왔다.

윗집은 할머니 혼자 사셨고 나는 그 소리가 반가웠다.

윗집 할머니와 나는 같은 시간에 천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깨어 있는 거였다.

새벽 3시나 4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든 시간에.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면 덜 외로웠고 할머니도 내가 아래층에 깨어 있는 것을 아셨으면 했다. 그러면 할머니도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싶어서.


어느 날은 옆집 엄마가 아이를 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집은 남자아이만 둘이었다.

그때 나는 밥 안 먹는 아이와 씨름 아닌 씨름을 할 때였다.

핸드폰 보기와 간식으로 유혹도 해보고 배달 반찬도 시켜보고 해도 아이는 완강하게 밥을 입에 물고만 있었다.

체중은 표준에서 한참 미달이었고 키도 작았다.

식사량 부족으로 인한 극성 변비로 관장까지 할 때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해서 사생결단 낼 듯한 자세로 아이 밥 먹이기에 매달렸고, 어떤 날은 온갖 협박과 애원과 강압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한 때 들려오는 옆집 엄마의 고성은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나를 위로했다.

제일 힘든 게 엄마지, 밥 하나 먹이기도 이렇게 힘든데 남자아이 둘은 또 얼마나 힘들 것인가 하며 그 엄마의 고성에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다.


새벽 두시쯤 복도에서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날도 있었다. 그 소리에 눈이 떠져 남편을 깨웠고 남편은 얼른 일어나 뛰쳐나갔다. 10분 정도 지나서 남편이 집으로 들어왔다. 사연인즉슨 옆 옆집에 성인 남매가 사는데 남동생이 술에 취해서 죽겠다고 복도 난간으로 뛰어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누나는 동생을 말리고 싶었으나 힘에 부쳤다.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며 뛰어내리려는 남동생을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남동생을 난간에서 잡아내리고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 뒤로 그 집과 우리 집 문 앞은 과일이 오가고 김치가 오가는 통로가 됐다. 서로 수줍어해서인지 직접 보면 안녕하세요 인사만 나눌 뿐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놓이는 선물과 쪽지로 상냥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 또한 그러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시몬느 베이유는 자기 자신 외에 다른 대상이 없는 것을 지옥이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듣는 소리들은 이곳이 지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은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고요한 새벽시간조차도.


수줍음이 있어서 앞에서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그 소리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안다.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 여름 새벽, 어느 집에서 삶아지는 옥수수 냄새가 반가워 킁킁대며 그 냄새를 들이마셨던 것처럼 존재의 소리가 반가워 나도 바스락 거려본다.

나 여기 있어요. 당신에게는 미세한 소리로 전달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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