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대란에 쪽파가 생긴 일

순하고 무른 잎들

by 북남북녀


대파 대란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대파 값이 올랐다는데 한 주는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쪽파가 한 무더기 생겼다.

그것도 흙 한 점 묻지 않은 하얗게 세척되고 깨끗이 손질된 쪽파가. 대파와 쪽파는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요리하는 사람의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는 나는 모든 요리에 쪽파를 넣을 거다. 쪽파가 있는 동안은.


된장국에 콩나물을 넣어 끓일 때가 있다. 처음에 콩나물 된장국을 끓이게 된 계기는 콩나물국을 끓이려는데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춰도 맛이 이상했다.

엄마가 끓여주거나 식당에서 먹던 맛이 아니라 맹물에 소금 푼 맛. 도저히 그냥 먹을 수 없는 맛이라 버리기는 아까워 된장을 풀었다. 콩나물 된장국을 처음 먹은 남편은 된장국에 콩나물 들어간 건 처음 본다면서도 잘 먹었다.

그다음부터는 감자에 양파에 몇 가지 재료를 씻고 잘라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콩나물을 두세 번 휘이 헹궈 된장국에 넣게 됐다.


이렇게 대충 요리를 하니 주부로 생활한 지 십 년이 훌쩍 넘어가는데도 요리가 늘지 않는다. 간단한 거 위주로 재빠르게 하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가짓수도 매번 같다. 잘하는 사람의 요리를 보다 보면 오 하는 탄성과 함께 저렇게 하려면 손이 얼마나 많이 갈까 하는 고단함이 보이기도 하는 것은, 요리라는 것이 내게는 일이어서 그럴 거다. 좋아서 하기보다는.


일이라 하더라도 깔끔하게 잘하면 좋은데 오늘은 게으름을 피우다가 애꿎은 상추를 죄 버리게 됐다. 깨끗이 손질된 한 주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쪽파와 이 삼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던 큰 비닐봉지 속 상추와 냉이라고 주시고 가신 작은 비닐봉지.


4일 전 시어머니가 시골에서 가지고 오신 것들을 비닐 채 그대로 냉장고 한구석에서 내내 방치하다가 주말이라고 돼지고기 반근을 사와 드디어 풀어봤다.


상추는 세척하려고 보니 냉장고 한구석에서 죄 짓물렀고 농약을 뿌리지 않아서인지 먹지 못할 정도로 상한 잎들도 많았다.

마트에 가서 깨끗이 손질된 것만 사 먹는 며느리인 나는 비닐봉지의 냉이가 쪽파처럼 손질돼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육수 물에 된장을 풀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냉이가 담긴 비닐봉지를 여니 냉이, 쑥, 알 수 없는 식물들의 혼합이 나왔다. 자잘한 좁쌀 크기의 꽃무더기가 보이기도 한다. 냉이라고 하면 냉이 맛이 궁금해 반찬가게에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있는 것을 사 먹은 경험이 전부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시골 땅에서 농약 없이 스스로 자라다가 이곳까지 뽑혀 왔을 그것들의 잎도 이미 반은 상해 있었다. 된장 육수는 끓고 있는데 비닐 속을 보며 난감해졌다.


마트에서 파는 야채는 일주일이 넘어가도 상태변화가 적어서 그런 줄로 생각했는데 시골서 직접 농사지은 것들은 일주일이 채 못 간다. 순하고 여린 상추 잎이 짓무르고 하얀 부분이 노랗게 변했다. 냉장고 속에서도 빠르게 시들어간다. 농약 안친 것들은 이렇게나 순하구나.


언제부턴가 호구라는 단어가 흔히 쓰인다.

예전 어느 남배우와 어느 여배우가 연인 사이라 공표를 했는데 그러는 중 여배우의 결혼 이력이 알려졌다. 미혼이라고 생각했던 여배우가 어린 나이에 유명 가수와 결혼했었다는 것이 화제가 됐다. 얼마 뒤 두 배우의 결별 기사가 떴다. 연인 사이로 공표했던 남배우에게 한동안 호구라는 단어가 쫓아다녔다.


호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본 적은 없지만 <호구의 사랑>이라는 드라마 제목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사랑에 호구가 있을까.


적게 사랑하든지 많이 사랑하든지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든 주기 마련이다. 자신을 주던지, 자신이 가진 물건을 주던지. 요즘 풍토로는 무언가를 잘 주는 사람을 선량하다고 생각하거나 인품이 좋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호구라는 것으로 폄하하기도 하는 듯하다. 사랑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받아서 감사가 아니라 빼먹을게 많은 사람으로. 다 빼먹고 나면 이용당해 버려지는 사람으로.


그러니 어떻게든지 호구 잡히지 않는 성격으로 보여야 하고 타인의 언행이 조금만 무례한 듯 보여도 벌컥 화부터 내게 되는 것이 스스로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잡히기도 하는 듯하다.


농약 안친 것들은 순하다. 순해서 쉽게 상한다. 냉장고 속에서도.

호구라는 단어가 흔한 요즘 같은 때는 순하다는 것이 약점 같기도 하다. 순하면 버티지 못할 세상 같기도 하다.

제때, 제때 농약 친 것들이 독해져서 오래 보존되듯이 독을 품고 뻣뻣하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호구 잡히지 않고서.


소쿠리에 가득 담긴 상한 상추 잎들을 보면서 냉장고 속에서도 사흘을 버티지 못해 상해가다니 너희들은 왜 이리 순한 거니, 왜 이리 무른 거니 이러니 내가 버릴 수밖에 없잖아. 상추 탓을 한다.

봄나물의 난감함에서는 이렇게 가져오시면 어떡하냐고 부모 탓을 해볼까. 자식 생각해 챙겨 오셨을 그 마음은 무시하고서.

(시골 땅에서 자식 주려고 김치 담그고 아픈 다리로 쪼그려 앉아 봄나물 캐고, 상추 뜯어 온 것은 이왕 가는 길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셨겠지.)


겨울 끝머리의 차가운 기운 가득한 땅에서 싹을 틔워 멀리까지 오게 된 순한 식물들.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겨울 기운에 봄 생기 가득한 이 식물들이 버려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좋은 것들이 한 무더기 버려진다. 내 게으른 손에 의해서.


어찌어찌 솎아낸 뒤 고기 굽고 쪽파 듬성듬성 썰어 초장에 묻힌다. 초장도 친히 부모님이 제조해 오신 것이니 그저 나는 무쳐만 놨다. 농약 안친 순한 상추에 고기 한 점 올리고 쪽파 무침을 넣어 쌈을 싸서 입에 넣는다. 이 한 쌈에는 농약 안 치고도 바람맞고 비 맞으며 잘 자란 상추와 쪽파의 대견함이 있고 멀리 시골서 아들네 갔다 준다고 뽑고 담았을 부모의 마음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겠으나 제 살을 내어준 인간 아닌 동물의 생명도 들어가 있다.


내어주는 일이 호구로 명명되기도 하는 요즘, 내어주는 부모와 내어주는 식물과 내어주는 다른 생명으로 이 식탁이 차려졌다.


호구 잡힐 위험에 처하더라도 순한 사람으로 사는 용기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그래야 이 모든 것들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거라고 알싸한 쪽파 향을 입속에 품고서 생각한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한 소쿠리 버리게 된 게으름을 탓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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