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은 물지 않는다

by 북남북녀

에스 엄마는 푼수야, 푼수라고 말하며 은혜가 웃었다. 어릴 적 군부대 근처 살던 내가 동네 아이들과 미군이 지나가면 우르르 쫓아갔다고 말하자 구걸했어?라고 말하며 또 크게 웃었다. 거지였네. 와하하하. 나도 같이 웃었다. 거지는 아니었지만. 먹을 게 없어서 쫓아간 게 아니라 일종의 놀이였다. 언니, 오빠들이 미군 차를 쫓아가면 같이 쫓아가서 미군이 던져주는 이상한 간식거리를 얻었다. 초콜릿이 아니면 맛만 보고 버렸다. 바깥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작은 시골 동네 아이들은 놀이에 목말랐다. 교회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거나 군부대 차가 지나가면 쫓아가거나 뱀을 잡아 죽여 다른 아이들을 놀려대며 지냈다. 꽃뱀은 물지 않는다는 말은 그 어릴 적 듣던 말이다.


은혜. 공주님 같은 은혜는 머리 색깔이 갈색이다. 염색한 머리가 아니라 타고난 갈색 머리. 어깨까지 내려오는 숱 많고 윤기 나는 갈색 머리를 연두색 방울 머리끈으로 하나로 쫑긋 묶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길이의 분홍 항아리치마를 입고서 하얀 샌들을 신고 날아오르듯 걸어 다녔다. 젓가락 같이 가는 다리는 땅에 발을 디디는 것 같지가 않았다. 쌍꺼풀 짙게 있는 고양이 같은 눈이 웃을 때면 얇아지면서 반달이 됐다. 나는 은혜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고민하지 않고 툭 튀어나오는 문장이 신선했다. 푼수라니, 거지라니. 은혜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은혜네 집을 갔다. 캄캄한 방 안에서 은혜 어머니가 찬송가를 듣고 있다. 은혜 어머니는 거무스름한 피부에 살집이 있다. 동글동글한 인상으로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없는 듯이 조용하게 집안에 있는 날이 많았다.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게 됐을 때 은혜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런 인상이다. 검고 크고 뚱하고. 내 기억에 은혜 어머니가 남은 까닭은 말, 문장이다.


우리가 들어가자 누워 있던 자리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킨 아줌마는 교회 수련회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에게 여기서 너희가 놀면 너희가 고민해야 하잖아, 어떻게 놀아야 할지. 수련회를 가면 그곳에는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너희가 고민할 필요 없이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초등 4학년의 나이는 해라, 마라의 명령어를 주로 듣는 때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이들의 의견이 존중받는 동네는 아니었다. 골목길에서 놀고 있으면 집으로 돌아간 누군가의 울음 터지는 소리는 비일비재하게 들려왔다. 노동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때릴 이유는 차고도 넘쳤으니까. 아이들이 놀이에 팔려서 밥을 지어 놓지 않거나 옷을 더럽히는 일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강압이 아니라 선택을 주는 은혜 어머니의 문장에 존중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존중의 느낌은 사탕 같은 달콤함으로 흡수됐다.


어느 날, 동네 아줌마들이 은혜네 집으로 몰려갔다. 은혜 아버지에게 은혜가 어른에게 푼수라 한다고 거지라 한다고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쪼그만 아이가 말을 이리저리 옮기며 이간질시키고 있다고. 은혜 어머니가 그렇게 말한 거라면서 은혜 어머니에게도 소리를 높였다. 동네 사람들은 은혜와 은혜 어머니에게 화가 났다. 분노했다. 내가 잠을 자는 사이 은혜네는 이사 갔다. 동네 아이들끼리는 은혜가 아버지가 하는 교회 사택으로 이사 갔다며 한 번 놀러 가자는 이야기를 나눴으나 그 이후로 은혜를 만난 적은 없다. 항상 깔끔하게 다림질된 옷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직설화법을 쓰던 은혜와 낮에도 캄캄한 곳에 누워 찬송가를 듣던 은혜 어머니는 우리 동네와 어울리지 않았다. 옷이 지저분해지도록 땀 흘리며 노동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과 양복을 입고서 말로 설명하며 사는 사람의 세계는 다르다


동네에 깨끗이 다림질된 블라우스 입는 아이는 더 이상 없었다. 찬송가도 들려오지 않았다.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도살장의 개들의 끙끙 앓는 소리와 비릿한 피 냄새만이 공중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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