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집에 천리여
신경숙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고
똥집에 천리, 라는 말을 검색어에 넣어본다. 한 블로거의 글에 똥집이 천리다, 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쓰이기는 쓰인 말이구나. 넘어져 무릎이 까지거나, 감기에 걸려 열이라도 나면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똥집에 천리여, 천리 했다. 하루에 한 문장의 말도 하지 않는 말 수 적은 아버지가 자식들이 어디 아프다고 할 때마다 똥집에 천리여, 천리. 저 말이 대체 무슨 뜻이야, 자식들끼리 이야기한 적이 있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습관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듣게 됐다.
아이들이 배앓이, 장염, 감기, 수족구 등의 질환으로 앓을 때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파서 엉엉 울거나, 짜증 부리는 아이를 대할 때마다 괜찮아, 더 건강해지려고 아픈 거야. 엄마가 옆에 있을게, 괜찮아. 이 말은 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으나 괜찮기를 바라는 내 바람이 들어간 말이기도 하다. 처음 경험하는 아이의 질환에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다독이는 말,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거라는 염원을 담아.
똥집이 천리라는 말을 어른들이 흔하게 사용했다는 블로그 글에는 글쓴이의 해석도 나와있다.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말을 똥집은 중요한 내장기관이고 중요한 내장기관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하찮은 상처에 호들갑 떨지 말라는 질책의 의미일 거라 적었다. 그 해석이 맞을 것이라 생각하나 내가 느낀 아버지의 똥집에 천리는 다른 의미로 들린다.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다 보니 둘째가 아기였을 때 홍역 걸린 이야기가 나온다. 홍역 걸린 아이를 고모가 작은 방구석에 두고 문을 닫고서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때 소설 속 아버지는 둘째를 업고 병원에 간다. 아기를 방구석에 두고 다른 이의 출입을 막은 고모에게 왜 그랬냐고 둘째가 묻자, 홍역에 걸린 아이를 치료할 생각은 아예 못하고 다른 아이에게 옮길까 봐 홍역에 걸린 아이는 혼자 뒀다고. 그때는 흔한 일이었다고 대답한다.
네 자매를 낳고 키운 우리 어머니도 우리 낳기 전에 두 아이가 더 있었다고 흘리듯 말한 적이 있다. 우리보다 먼저 태어난 아이는 아들들이었는데 둘 다 죽었다고. 그 시절은 아이가 아프면 속수무책인 시절이다. 먹을거리도, 약도, 병원도 모든 물자가 부족한 시절.
똥집에 천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버지의 혼잣말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무 일없이 지나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무표정한 얼굴로 툭 내뱉지 않았을까. 아이가 아프더라도 병원도 데려가지 못하는 시절을 부모는 지나왔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수 없던 시절을.
글을 읽을 무렵이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첫 집에서의 일이니 초등학교 저학년쯤이다. 다른 식구들은 다 밖으로 나가고 한낮에 아버지와 나만 둘이 덩그러니 방 안에 남아 있다. 말 수 적은 아버지는 그때도 아무런 말 없이 바위처럼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언니가 어디에선가 빌려온 잡지를 읽는 중이다. 유머란이 보인다. 애처가와 공처가의 차이는이라는 물음을 읽고 아버지에게 똑같이 묻는다.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애처가는 아내의 손을 만지고 공처가는 아내의 발을 만진대. 내 대답에 아버지는 미소 지었다. 소리 내어 크게 웃는 모양은 아니었으나 나는 아버지가 웃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지금도 저 유머의 의미를 모른다. 학교 문턱은 가보지도 못한 아버지도 저 말의 뜻을 모르지 않았을까 지금은 생각한다. 서로 뜻을 모르는 말을 하면서 우리는 웃었다. 내가 아버지를 웃게 했다는 기쁨이 내 작은 심장으로 흘러들었다. 형광등이 번쩍하고 켜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몸짓과 말짓에 많이 웃는 것, 내가 어머니로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