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실내 온도는 34도

이영미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를 읽고

by 북남북녀

굳이 말한다면 이질감 때문이다. 에어컨 틀지 않은 실내 온도가 34도 찍히는 것은. 안에서 쾌적한 공기를 느끼다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훅 들어오는 무더운 공기를 견디기 힘들다. 몸으로 느껴지는 생경함. 꼭 속은 기분이다. 갑자기 맞게 되는 무더운 공기는.

우리 집의 실내 온도는 34도. 지금까지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선풍기 한 대로는 부족한 거실에 송풍 기능만 사용하는 스탠드 에어컨.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을 때. 지하철 안이나 버스 안. 사람들은 가방을 바닥에 두거나 짐칸에 올리라 말한다. 나는 웬만하면(참을만하면) 가방을 무릎에 올리거나 꼭 쥐고 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놓았다가 다시 들면 무겁잖아. 꼭 속는 기분이야,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계속 무거운 게 덜 속는 기분이야,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시절. 전 날부터 허락을 받아 놨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으로. 갑자기 바빠진 매장에 하필 일에 익숙지 않은 막내 매니저가 허둥지둥. 빨리 퇴근해야 하는 내 사정에 막내 매니저가 붙잡는다. 안된다는 나에게 굳은 표정으로 마음대로 하던가. 유니폼을 벗고 인사하는 내게 꽂히는 말. 넌, 참 착한척하지.


중학교 시절 동네 이동도서관. 엄마는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아빠와 살고 있는 친구와 책을 고른다. 죽음으로 헤어진 이와의 이별을 아름답게 나타낸 시라고 생각했다. <접시꽃 당신> 같은 시. 친구에게 보여준다. 이 시 좋다. 미소를 띠고 시를 읽기 시작한 친구의 점점 굳어지는 얼굴. 불행은 문장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


실내 온도 34도 속에서 떠오르는 기억들이란 더 덥게 만드는 기억들뿐. 축축 처지게 하는. 뭐라도 읽어야지 싶어 도서관을 간다. 휴가는 못 가더라도 오 분이면 갈 수 있는 도서관에.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가족에게 듣는 고마운 말이 제목이 된 책. 얇아서 손에 든 책. 읽은 후에는 상당한 무게감을 남겨놓는 책. 편집 디자이너 저자가 루게릭 진단받은 후 2년의 기록. 소수의 환우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들.

가정에서 가장으로 살고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해왔던 저자가 침도 혼자 닦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까지의 과정. 서서히 소실되는 기능들 속에서 발견되는 보물들.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더위가 아니라 생명을 찾을 것. 더위 속 울창해지는 나무와 활짝 벌어지는 꽃들. 빠르게 새잎 올리는 식물과 허리까지 자라 오르는 잡초들.


내 더위와 쓰라림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뻘뻘 땀 흘리면서.


부질없는 것을 붙들고 싸움하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73p


고통으로 자신을 벗어나면서 쓰는 말들. 그리고 남는 것들.


keyword
북남북녀 도서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주부 프로필
팔로워 532
작가의 이전글똥집에 천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