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항상 엉터리로 얘기하면서, 어떻게 내가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길 바라는 거야!> 나는 흐느꼈다. 아버지는 침울해졌다. 내 추억 속에서, 언어에 관련된 모든 것은 돈 문제보다 훨씬 더 큰 원망과 언쟁의 동기였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에서
화자의 물건은 충분하다. 부족한 건 없다. 집은 따뜻했고 굶은 적도 없다. 언제나 배불리 먹었다. 사립학교를 갔을 때 알게 되는 것은 다름이다. 부모의 듣는 음악이나 부모의 언어나 부모와 연관된 사람들이 학교와 학교의 언어와 학교와 연관된 사람들과 달랐다. 화자는 교사가 자신의 언어를 고쳐줬듯이 부모의 언어를 고쳐주고 싶다.
책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데 그런 거 필요 없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에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의 "착하고, 나쁘고, 무관심하고"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착하기는 하지,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럴 뿐이야. 사는 게 만만치 않을 뿐이지, 애는 썼잖아.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상황이 나빴을 뿐이야. 가끔 되뇌기 때문에.
내가 Y..... 의 중산층과 교류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먼저 내 취향에 대해 묻곤 했다. 재즈를 좋아하냐, 아니면 클래식이냐. 영화감독으로는 자크 타티가 좋으냐, 르네 클레르가 좋으냐. 그때 난 내가 또 다른 세계로 건너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에서
책이나 음악이 필요한 세계와 그런 게 필요 없는 세계(그런 게 필요 없다기보다는 그럴 시간과 여력이 없다는 것에 가깝겠지만."당연한 얘기지만, 빚을 갚지 못해 궁지에 몰렸을 때는 오페라나 한번 들어볼까 하는 기분이 좀처럼 들지 않는 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중)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오래된 이야기는 반복된다.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위대한 문장에 희열을 느껴서라기보다 내 좁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 복잡한 인생에 대한 감각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집어삼킬 듯한 인생의 어둠과, 고맙게도 그 속을 애써 뚫고 나오는 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애실 <되살리기의 예술>에서
다이애나 애실은 191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1993년 75세에 은퇴할 때까지 50여 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1917년에 태어난 사람이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자의 환경이 빈곤한 문화와는 먼 부류일 수 있다는 말 일 거다. “나는 그 특정 계층의 일원이었다. 대부분 런던에 살고 대학 교육을 받았고 19세기 말로 향해갈 무렵 도서 판매업자들로부터 출판계를 넘겨받은 영국의 중상류층”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에서 말하는 또 다른 세계에 접해있는 사람이다. 집구석 구석 책이 있었고 책 읽는 게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일찍부터 책을 접하며 자라났다.("우리 집안에서는 독서를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자랐다. 집 안에서는 독서, 집 밖에서는 승마. 이 두 가지는 단순한 취미라기보다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돈과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편집 일을 선택했다.("사실 나도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는 돈 걱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돈 걱정을 하며 살았지만 언제나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니까 백수로 지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인생의 어둠’은 아니 에르노의 사회계층과는 다른 개인적 문제일 수 있으나 어느 문화에서 자라든지 어둠의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나를 집어삼킬 듯한 어둠’과 ‘그 속을 애써 뚫고 나오는 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책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다른 문화계층에서 자랐겠지만 나 역시 이 문장에 공감한다.
있지, 우리 인생은 밝다, 어둡다로 단순하게 나뉘는 게 아니야. 그 사이에 음영이란 중간지대가 있다고. 음영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게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나름대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무라카미 하루키 <애프터 다크>에서
‘음영이란 중간지대’ 어느 계층에서 태어나고 어느 문화에서 자라든지 어둠의 소리는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처럼 들려온다.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어둠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나가느냐(한밤중에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의 문제를 <애프터 다크>에서는 다루는 듯하다. 좋은 기억을 떠올릴 것,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 서로의 온기를 나눌 것이 될까.
책을 읽는 중간중간 아이들이 내게로 온다.
첫째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얼굴에 비비면서 엄마, 심심해 심심해.
‘엄마, 영상이 보고 싶어’라고 알아듣는다.
삼십 분만 이라고 말하면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둘째 아이는 땀이 전혀 나지 않는 날씨에 엄마, 더워. 더워 바닥에 엎드린다.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로 알아듣는다.
부채질을 해주며 등을 쓸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