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을 지나고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여명>을 읽고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특별하지 않듯이 내 욕구도 특별하지 않다. 가장 큰 욕구라 하면 책 읽을 시간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
직업도 없고 학생도 아니었을 때 한 달 동안 도서관만 다닌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못해서 억울함의 강도는 올라가고 기분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실하기도 지겹다 하면서 일탈의 기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보자고 생각했다. 사정을 들은 친구가 흔쾌히 십오만 원을 빌려주면서 빨리 안 갚아도 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침마다 시립도서관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걸었다. 때는 봄. 누런색의 얇은 점퍼를 입고 오르막길 끝에서 숨을 헐떡였다.
일 곱 시에 도서관에 도착하면 한 시간은 성경책을 읽었다. 나머지 시간은 가져간 책을 읽으며 자료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자료실 문이 열리면 책장 사이, 사이를 누비며 책 구경을 하고 일고여덟 권의 책을 안고 열람실 자리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 문이 닫히는 시간까지니 잘하면 하루에 다섯 권도 읽지 않을까 싶었는데 많이 읽는 날은 두 권, 적게 읽는 날은 한 권이다. 자리에 앉으면 억울하다 생각되는 일이 독초처럼 올라왔다. 그 좋은 도서관 자리에 앉아 심장을 부여잡았다.
바깥은 벚꽃이 만개하고 어떤 일의 후유증이 별처럼 쏟아져서 없던 방랑벽도 생길 듯했다. 식물원을 지나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등산하듯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벚꽃을 보며 구름 같네,라고 생각하며 길을 걸을 때 책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아났다. 가녀린 모양새로 떨어지던 하얀 벚꽃과 바로 눈앞의 오르막길, 심장에 닿는 듯한 뜨거운 감각. 이런 게 욕구라는 걸까, 까맣게 타들어가던 심장이 다른 이유로 뜨겁게 타올랐다.
“내가 기르는 붉은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울 것 같아서요.”
딸을 보러 가지 못하겠다고 사위에게 편지를 쓰는 콜레트의 어머니 시도.
“그런데 나는 이제 많이 늙었어요. 내가 없는 사이 그 붉은 선인장이 꽃을 피운다면, 이제 다시는 그것의 개화를 볼 수 없을 것만 같군요......”
실제로 선인장의 꽃이든지, 은유적 표현이든지 많이 늙었기 때문에 더 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제 늙어서 사랑이라는 것과는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사랑의 갈등에서 여성이 나아가는 길을 그리는 콜레트.
실제로 콜레트의 어머니 시도는 사위의 초청을 수락하는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딸의 얼굴을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자신이 며칠 떠나고 없으면 고통스러워할 고양이와 이제 막 꽃이 피는 세돔, 열매들이 열리는 식물(글록시니아)을 두고서.(“내가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이 고통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 며느리가 모두 잘 돌봐주겠노라 약속했지요.”)
어머니의 수락 편지를 거절의 편지로 만들어 소설을 쓰는 것에서 작가의 생각이 묻어나지 않나 싶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고 싶은 콜레트, 인생의 황혼기라 하더라도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콜레트. 내게는 사랑보다도 한 사람 속에 자리한 이 욕구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내가 경험하고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즐겁다.
즐겁게 읽었다. 사소했지만 즐거웠던 내 욕구를 추억하면서
....... 씨,
당신은 나보고 집에서, 그러니까 사랑하는 내 딸 곁에서 한 일주일 머물다 가라고 하셨지요. 당신은 그 아이와 함께 살고 계시니 내가 그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또한 그 아이를 보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래서 그 아이를 보러 오라는 당신의 초대가 얼마나 감동적인 지도 잘 아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입니다. 왜냐고요? 내가 기르는 붉은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울 것 같아서요. 그것은 친구가 내게 준 매우 귀한 선물인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이곳의 기후 조건하에서는 사 년에 한 번 밖에 꽃이 피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많이 늙었어요. 내가 없는 사이 그 붉은 선인장이 꽃을 피운다면, 이제 다시는 그것의 개화를 볼 수 없을 것만 같군요.......
그러니 나의 진솔한 감사와 더불어 당신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나의 아쉬운 마음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여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