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부서지지 않아 다행이야

무레 요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by 북남북녀

텔레비전이 부서지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어질러진 방안을 정리했다. 아버지는 살림살이를 부수고 어머니는 소리 지르며 아버지를 말리고. 말하자면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아버지. 평상시는 과묵하고 조용한 사람이 성난 짐승처럼 포효했다.


먹고살기가 힘든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에게도 돌파구는 필요하고 한동안 억눌렸던 에너지가 어떻게든지 밖으로 나오기는 해야 할 테니.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가 건전한 돌파구를 찾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일찍부터 가족의 생계를 생각하며 노동의 세계를 전전해야 했을 테니. 오늘 같은 상황이 별다르게 특별하지 않은 것은 우리 집이 이러지 않으면, 옆집이 그렇고, 옆집이 조용하면 옆 옆집이 우리 집 같았다. 동네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면서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다.


비슷한 직종에 비슷한 경제 사정에 비슷하게 소외된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모여 살던 때. 나는 시끄러운 곳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숨어들었다. 관심인지, 간섭인지. 사랑인지, 폭력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부터 거리가 필요했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의 아키코. 사생아로 태어난 아키코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환경이다. 어머니는 아키코와는 정반대 성격으로 아키코에게 친절하지 않다.

“당신 집안 복잡하잖아,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형편없는 집안의 딸은 안된다네.”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 친구에게는 이런 말까지 듣고 말았다.

‘수도원 식당처럼 간소한 공간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든 빵과 수프를 제공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식당을 연 아키코는 이유 없는 헐뜯김을 당하기도 한다.

아키코의 외부 환경은 아키코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로 시끌시끌하다.


내면에 에너지가 잔뜩 모이는 사람들은 혼자 있어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쉽게 피로해진다. 옆에서 계속 말하고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하는 사람보다는 조용한 산속이나 철썩이는 바다, 좋은 책 한 권이 위로일 때가 있다. 내면의 시끄러움 때문에 외부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고, 관심이 가더라도 혼자서 끙끙 앓다가 시간이 흐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것은 흘려보내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친절하지 않은 인생에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같은 좋은 날도 분명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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