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by 북남북녀

그녀는 오른쪽 팔을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투명한 유리컵이 하얗게 빛을 발하는 형광등과 부딪혀 반짝 빛이 났다.

미안하다고 말해. 안 그러면 이 컵을 던질 거야.

한여름, 길가를 걷는 아이에게 높이 솟은 해가 강렬하게 내리 꽂힌다.

해는 동정이 없다. 참을 수 있으면 참아 보려 무나 말하는 선생들처럼.

조회 시간에 아이들이 쓰러져도 양호실로 옮기면 그만이라는 듯 자기 말만 하는 연단 위에 선 교장처럼.

자, 마지막으로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끈기는 무엇인가 늘어지는 반갑지 않은 말들.

해는 아이의 등을 얼굴을 공격하듯이 내리쬐고 있다.

언니한테서 뺨을 맞는 듯한 얼얼함과 따가움이 아이의 전신으로 붉게 퍼져나간다.

죽을 거 같아, 이런 젠장 할. 아빠가 들었다면 얼굴로 손이 날아왔을 말이 아이의 마음속에 꽂히며 극심한 갈증을 일으킨다.

뛰자, 뛰어. 뛰는 듯했지만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진 아이의 몸은 흐느적, 흐느적 느린 속도로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었다.

녹색, 주황색, 노란색 색색의 지붕들이 닿아 있는 동네 초입. 아이는 숨을 몰아쉬며 집으로 향한다. 산동네 꼭대기 위치한 집으로 걷는 동안 쥐와, 거미와, 바퀴벌레와 쥐며느리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냐, 오냐

남색 철문을 밀고 빨간색 큼지막한 벽돌집을 빙 돌아 재래식 화장실 냄새가 맡아지는 뒷마당으로 간다. 판자때기와 비닐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집.

드르륵 미닫이문을 민다. 아귀가 맞지 않는 문은 노인처럼 앓는 소리를 낸다.

불을 켜지 않아 캄캄한 부엌,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불꽃놀이 같은 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하하하, 깔깔깔, 클클클, 나는 광 팔란다. 고, 고

방문을 여니 단칸방에 동네 아줌마들이 꽉 차게 들어앉아 있다.

아이의 엄마는 보지도 않고 왔니라고 말한다. 이런 씨팔, 뭐 이래, 좀 잘 돌려봐. 성질나네

아이는 책가방을 방 한쪽에 두고 부엌으로 나간다. 냉장고 문을 열어 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신다.

차가운 물의 기운이 온 혈관을 타고 흘러 한여름 뙤약볕에 냉기를 품는다. 바깥에서와는 다른 이유로 아이의 얼굴이 붉게 타오른다. 팔딱, 팔딱 작은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한다. 팔딱이는 심장을 이기지 못하는 아이가 컵을 놓친다. 쨍그랑 폭포수처럼 부서지는 유리컵이 날카로운 조각으로 땅 위에 안착한다.

뭐야. 어, 컵을 떨어드렸어. 치울게

어이구, 미친년.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들.

광 팔아, 광 팔아. 고고, 고고.

컵을 든 손을 높이 들고 그녀가 남편을 바라본다.

미안하다고 그래. 어서, 빨리.

그녀의 눈이 고양이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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