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봐? 그런데 그럴 때마다 따지고, 삐져보니 아무런 대책도 서지 않았던 것 같고 내 기분인지 모르겠으나 집안 분위기만 냉랭해지고, 왜 삐져있는지 조차도 챙겨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나 혼자 속상하다, 혼자 섭섭하다, 혼자 삐졌다, 혼자 풀렸다 했던 것 같습니다. 알아주지도 않는데 이렇게 늘 혼자 억울해하고 못마땅해하느니 차라리 ‘나를 나답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 '맘에 들지 않는 The남자이지만 그와 재미있게 살아보기'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The남자를 가깝고도 멀게, 멀고도 가깝게 부를 단어를 떠올려보니 그 사람, 그이, 남의 편, 남편, O₂아찌(산소 아찌) 등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휴대폰에 별칭을 자주 바꾸는 방법으로 그를 평가하며 즐기기로 했습니다.
별칭과 애칭을 참 많이 만들게 만드는 우리 집 'The남자.'
The남자라고 칭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 유일한 남자니까.
1. 어느 날 문득 아주 멀리 거리감을 두고 싶을 때는 ‘그사람’
2.남편이라고 묶어주기에는 얄미워서 특정 3인칭남자로 칭하고 싶을 때는 ‘그이’
3.대화도중 정의로운 판사나 되는 냥 심판관 노릇을 할 때는 ‘남의편’
4. 그럭저럭 남편답게 보통수준을 유지할 때는 ‘남편’
5. 생활 속 필요한 존재로 느껴질 때나 훈훈함이 돋보일 때는 ‘O₂아찌’
그런데 정작 The남자는 내 폰에서 자신의 별칭이 자주 변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순전히 나의 감성과 감정으로 조용히 이루어지는 비밀 병기니까.
휴대폰 별칭 ‘그사람’
어느 날 The남자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One day class로 서로 얼굴 그려서 거실에 걸어 놓을까?'
"No, no, 노~우~."
No를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그것도 망설임 없이 강렬한 어조로. 괘씸했습니다.
왜 그리고 싶었는지, 당장 그리지 못하면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아님 나중에 하자고 하던지, 아님 No대신에 “글쎄~”라며 부드러운 거절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에이, 당신은 오늘부터 당분간 남편으로 인정 안 함. 너무 먼 나라 사람.
오늘부터 당신은 내 휴대폰에 '그사람' 이야.
휴대폰 별칭‘그이’
오랜만에 만난 걷기 팀의 한 멤버가 남편이 미워 죽겠다며 성토를 합니다. 이때 내가 찐 친구가 되기 위하여 무조건적 동조 플러스 남편들의 만행을 함께 거들었습니다.
내 생일에 외식을 하자며 외출 준비를 명하기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어디로 가는대요?' 했더니 "응, 가보면 알아. 식당 예약해 놓았어." 참나, 내 생일인데 나한테 메뉴에 대해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은 채 예약을?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식당에 도착하고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복어 횟집이지 뭡니까? 그래 소화나 잘 시키자는 의도로 마음을 비웠어요.’ 실망을 그만하고 싶어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선물 봉투를 꺼내더니 열어보라더군요.
"풀어봐, 좋은 걸로 했어"라고 하기에 풀어보니 리본을 맨 향수가 들어 있더군요.
단 한 번도 향수병을 꺼내 들고 바르는 모습을 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건만...
내 생일인데 무얼 받고 싶으냐고 단 한마디도 물어보지도 않고
좋은 거면 뭘 합니까? 자기 취향인 것을....
'나 향수 익숙지 않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나 써' 했더니
“왜? 처음부터 익숙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뿌리면 되는 거지.”
웃기는 거 아닙니까? 내가 선호하는 취향도 아닌데.... 향수도, 그 사람도 엄청 낯설더군요.
"미안해서 어쩌나, 내가 갖으려고 선물한 것 같네" 참 어이없는 3인칭 남자.
분명 평상시와 달리 웃음기 없는 모습에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했으면 기분 정도는 살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넙죽 “고마워”하고 챙겨?
언제나 내 생일은 이런 식이었다니까요.
“어머~ 정말?”, “공주처럼 대접만 받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동질감을 느끼며 ‘다 그러고 사는 거구나’라고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사람을 휴대폰에서 '그이'라고 명했답니다.’
그리고는 비웃고 싶을 때마다 연락처 창에 ‘그이’를 치고 ‘킥 킥’ 대며 즐거워했던 것
같습니다.
휴대폰 별칭‘남의편’
어느 날 우리 집 The 남자가 15층 집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복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공정성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니야.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
"그렇다니까"
' 아니야. 혹시, 15층 아저씨의 본모습은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지.'
The남자는 화가 나서 씩씩댄다.
"누가 당신더러 심판해 달랬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남편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듣기만 하면 되지. 뭘 안다고 훈수야. 훈수긴."
내가 너무했나. 훈장도 아닌데 훈수 질을 하고... 반성하다 말고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당신도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 들게 행동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
‘당신도 늘 훈 수질 하며 내편 아니었거든. 늘 정의의 사도처럼 남의 편이었지.’
그래서 내 휴대폰에‘남의편’이었거든.
휴대폰 별칭‘O₂아찌(산소아찌)’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The남자이지만 가끔은 생활 속에 꼭 있어야 하는 존재인 산소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한 세월이 벌써 38년. 알게 모르게 생활 곳곳에 그가 해내는 고유한 역할이 있어 The남자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산소 아저씨의 줄임 단어‘O₂아찌’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적 꿈이 좋은 아빠였던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며 상견례 날짜를 디밀었습니다.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옷도 구입하고 머리 관리도 할 겸 hair shop에 예약을 했습니다. The남자가 먼저 다녀오고 나는 하루 뒷날 다녀왔습니다. 관리를 마치고 card를 내자 선결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설마? 정말요? 그 사람이 계산했다고요? 정말이요?’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 반복해서 질문을 했지만 대답은 한 가지. “정말이라니까요. 바깥 사장님 참 멋진 분이세요.”
휴대폰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O₂아찌’가 전화를 받습니다.
“맘에 들게 예쁘게 잘해주던가?”
“특별히 예쁘게 잘해주지 않으면 환불하러 간다고 했는데 맘에 들어?”
‘고마워~용~’
‘님은 오늘부터 휴대폰 별칭이 ‘O₂아찌’로 변경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소심한 복수 같기도 하고, 조금 간사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방법으로
맘에 들지 않는 남편 The남자와 재미있게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The남자의 한계와 약점을 인정하고 내 삶에 만족하며 부드러워지겠습니다.
The남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나의 행동방식을 강요하지 않으며 우리 둘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를 지키며 그렇게 나답게 살아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거리를 지키라고 깨워주신 김병수 님의 글에 감사드리며 전합니다.
『누구나 한계와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가지 삶에 만족하면 사람은 저절로 부드러워진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나의 행동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각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를 지켜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