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로 이동하면서
당신을 얼마나 더 잘 알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소.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광기 어린 예술혼에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만 소중히 생각하다 보니 늘 주변과 불편한.
그러면서도 늘 지독한 외로움, 경제적 어려움과 엄습하면 동생 테오에게 청해서 해결하는 영원한 동생 바라기.
결국에는 그 독하다는 압생트로도 당신의 아픔과 끓어오르는 감성들을 다스리지 못하지 않았소.
얼마나 힘들었겠소.
'정신병자'라는 낙인을 찍고 싶지는 않소만
당신의 그림을 보면 '과연 맨 정신으로 이 그림을?'이란 의문이 서는 건 여전하오.
그런데 분명히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소.
첫 번째로 당신이 한국사람이 아니길 천만다행이요
그 당시 한국에서 생활했다면 동네 어르신들께 "이 고얀 놈 같으니라고!"라고 욕먹으며
당신의 등짝과 어르신 곰방대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 같소.
게다 대들기 좋아하는 당신이 가만있을 리 없었을 테고
동네 어르신 또한 가르침을 대충 매듭짓지 않으셨을 테니 볼 만했겠소.
당신이 한국에서 살지 않았기에 다행이란 말이요.
두 번째로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유튜브 시대까지 살았더라면) 유능한 유튜버가 되어 테오에게 손 벌리지 않을 만큼 독립적으로 잘 살 수도 있었을 테고, 톡톡 튀는 개성으로 그림 판매도 탁월했을 테고, 외로움을 달랠 다양한 기회가 많아 위안도 잘 받았을 텐데... 물론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설명한 거요.
당신을 위해 준비했소. '빈센트 반 고흐'라고 유튜브 창에 치면 쉽게 나타나는 화면들을 한 번 보시겠소.
돈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조회수가 무려 6,7만 건인 것도 허다하오.
압생트로 고통을 이겨가며 미치광이처럼 그려대던 그 그림들의 진가가 이제야 빛을 발하나 보오.
난 당신을 불운의 화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소.
당신처럼 확실하게 좋은 인복을 갖은 사람도 없으니까.
생전에 테오만 해도 그렇고, 죽어서까지 형 옆에 있는 것 알고 있소?
생후에는 Don McLean이 테오 마음으로 그리움 절절 넣어 불러주는 그 멋진 노래 Vincent만 봐도 그렇고.
그뿐이요. 유튜브 시대 엄청난 구독자들이 '빈센트 반 고흐'를 찾아대지 않소.
어디 그뿐이요. 당신의 흔적을 느끼려고 작은 마을 오베르까지 달려오는 이들도 많고.
또 있소. 당신의 숨결을 공유하기 위해 당신 그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날라서라도 가주는 마니아층도 두텁고.
당신은 불운하지 않소. 좋은 인복을 타고난 복쟁이요.
빈센트 반 고흐 형제의 무덤
오베르 마을에 도착해 제일 먼저 간 곳은 뙤약볕이 쏟아지는 밀밭 들판이었소.
가는 길에 동생 테오랑 옆에 나란히 잠들어있는 당신을 보았소.
아직까지 권총 자살이다. 아니다. 타살이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형옆으로 옮겨진 테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고 나니 당신은 참으로 동생복은 타고났다는 생각이 또 들었소.
동생 테오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려면 족히 100년을 더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요.
누군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신을 향해 빨간 장미가 열정적으로 웃고 있더군요.
나란히 누워있는 태오가 준비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테오와 함께 있으니 좋소? 얼마나 든든하겠소.
강력한 지원자, 숨은 재능을 인정해준 유일한 사람. 당신의 후광은 '온전히 믿어준 테오의 덕'이 아닐 런지요.
그곳에서 테오한테 잘해 주고 계시죠? 압생트보다 더 월등한 효력을 가진 테오에게
당신을 대신하여 ‘감사했어.’라고 전했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들판
당신 무덤을 뒤로한 채 옆 언덕을 오르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되었던 들판이 황갈색 장관을 이루며 환영하더군요.
오르세 미술관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감성인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은 요동성.'
'투박하면서도 곧 날아갈 깃털 같은 물감 자욱들.'
'영감이 사라지기 전 속히 뙤약볕의 강렬함을 쏟아 내야 한다는 집착' 들이
이곳에 오니 더 떠오르더군요.
아마 그것은 우아즈 강을 따라 펼쳐진 광대한 백생 지대의 밀밭 덕분인 것 같기도 하오.
'이글거리는 태양이 당신을 더 강렬하게 만들어 주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보태지기도 하고.
갑자기 나도 당신처럼 강렬한 요동성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러나 당신이 이 들판 어디쯤에서 총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내 슬퍼졌소.
‘많이 아프지 않으셨나요?’
‘설마 지금도 압생트를 마시고 있지는 않으시죠?’
운 좋게도 여전한 쪽빛 하늘. 황갈색의 누런 밀밭. 이글거리는 태양이 당신의 그림 속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며 '어서 그려봐'라고 재촉하더군요. 참 좋았소.
그러나 일행들이 눈치를 주니 어쩌겠소. 훗날 그리기로 하고 기념촬영으로 대신했소.
인상파 화가 도비니 흉상
밀밭 길을 돌아 마을 언덕에 이르니 이 마을을 얼추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성당이 하나 있더군요.
저쯤 어디엔가 당신의 우울증을 치료해주며 유일하게 당신과 소통했다던 가세 박사의 집이 있다고 들었소.
관리하지 못하여 출입을 막아놓았다고 하니 눈대중으로 저쯤이라고 찍고 이동하였소.
오베르는 당신 덕분에 마을 전체가 도시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고 들었소.
그래서인지 마을이 고흐 시대의 온기가 그대로 보존되어 마치 백 년 이상의 세월이 멈춰버린 도시 같소.
마을 여정이 끝나고 나면 아마도 반 고흐 인문 서적을 한 두 권 읽은 듯할 것 같소. 영광이요.
언덕을 조금 내려오니 보라색 라벤다 꽃이 도비니 흉상을 더욱 향긋하게 받들고 있소이다.
도비니는 그때 당시 오베르 마을에 들어와 정착한 꽤나 명성이 있었던 인상파 화가라고 했소.
근처(30분 거리)에 도비니 아뜰리에가 있어 인상파에 관심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들었소.
이 마을에 작은 길조차도 '그림 속 풍경 산책 코스'로 정비되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하오.
오베르의 교회
마을 어귀쯤에 다다랐을 때 오베르의 교회가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더군요.
이 작은 마을은 온통 당신의 흔적들로 채워져 당신을 생각하지 않고는 동네 여정을 마칠 수가 없었소.
1890년 전에 그렸다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가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강건하게 버티고 서서
'그려봐~라' 라며 명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열정을 채 다 쏟아내지 못하고 떠난 고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난 아무리 봐도 당신처럼 그릴 수가 없을 것 같소.
당신이 쏟아낸 '저 찬란한 이글거림의 색채와 빛'을 어쩌면 좋소?
당신은 천재화가요. 천재. 유능한. 화가.
고흐를 설명하기에 바쁜 오베르
오베르 시가지는 작은 길목들도 온통 반 고흐 당신 이야기밖에 없더이다.
오베르 관공서 앞 도로 맞은편에 당신 그림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안내표지판 뒤에 있는 건물이 초등학교) 꽤나 맛있다고 안내되어 있던 빵집 빵 냄새가 당신만큼 요란하더이다.(맛있다는 이야기)
그림 안내 표지판을
다 읽고 돌아서니
오베르 관공서
또한
그림 속 그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음을 보여주며
"여기가 왜 반 고흐의 마을인지 알겠지?"라고
위엄을 토하는 것 같았소.
1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얼마나 좋소.
이제 당신이
불운한 화가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겠소?
고흐의 방이 있는 라부 여인숙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마을은 고흐 당신의 70 여일 마지막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마을이 틀림없소.
이곳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묵었다던 라부 여인숙(Auverge Ravoux)을 둘러보았소.
당신 방은 값이 싼 만큼 3층 경사진 천창에 작은 채광용 창이 붙어있는 좁은 방이라고 들었소만...
한쪽 귀에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압생트 술병을 들고는 창가에 기대어
혹시 아를에서 고갱을 기다렸듯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당신의 잔상이 떠올라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었소.
그 잔상을 떠올리며 약간 겁은 먹었었소.
나는 집착이 심한 사람은 딱 질색이고
게다 '다른 것을 틀렸다.'라고 우겨대는 사람하고는 더더욱 마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요.
오르세 미술관에서 당신의 영혼을 마주했다면
이곳에서는 당신의 생활을 마주했소.
뙤약볕의 밀밭, 햇볕이 스며드는 라부의 다락방, 압생트 술병, 가세 박사, 오베르 마을 산보.
마을은 극히 단조로워 보였으나 마지막 70여 점을 그리기 위해
'격렬히 불태웠던 예술혼. 얼마나 애썼을까!'생각하니 인정 별점 (★)을 자그만치 7개는 주어야겠소.
이곳이 생을 마감하기 전 70여 일간 머물렀던,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고흐의 방이라고 들었소.
당신이 숨을 거둔 방은 ‘자살이 일어난 방’이라는 딱지가 붙어 손님을 더 이상 들이지 않았고
현재는 당신을 기념할만한 앙상한 침대와 당신의 일생이 담긴 10분짜리 비디오만 뎅그러니 있더군요.
사실 권총 자살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졌으나 자신이 머물던 방에 돌아와 2일 동안 괴로워하다가
동생 테오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들었소. 여전히 테오. 확실한 인복 테오랑 함께 말이요.
고흐의 동상이 있는 작은 공원
이 작은 마을에 당신의 모습을 얼핏 볼 수 있는 쉼터가 있더군요.
깡 마른 모습으로 화구통을 둘러 맨 멋스러운 젊은 화가의 모습으로 쉬었다 가라고 의자를 내어 주더군요.
아까 사들인 요란하게 구수한 빵 냄새를 풍기던 그 빵을 당신 앞에서 먹으며 여정을 돌아보았소.
이곳에 오길 잘했다.
쉼이 되어 좋았고.
색채와 빛의 강렬함에 이해도 얹을 수 있어서 좋았고.
편협한 집착으로만 알았던 당신에 대한 나의 오류를 잡을 수 있어서 좋았고.
돌아가 당신의 현란한 요동성을 흉내 낼 용기도 생겨서 좋았고..
빈센트 반 고흐 당신의 불운은 이제 끝이야.
당신을 따라다니던 '불운한 화가'가 아니라 "좋은 인복을 타고난 엄청난 행운의 화가"잖소.
이제 빈센트 반 고흐 당신을 편견 없이 사랑하기 위한 마무리로
다음 행선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으로 정했소.
거기서 또 만나 이야기합시다.
암스테르담이요. 암스테르담.
Ps: 반고흐 당신과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긍정 Tip으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첨부합니다.
* 긍정 Tip *
'산다는 것은 비움의 찬스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하오.
당신이 다음 생에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선 배워할 과제는 바로 '비움의 찬스'인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