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The Happiness 04화

과거의 남자에게 정성이라는 재미를 붙이려 한다.

캘리 감성 에세이 '안될 이유가 있다면 될 이유도 있어'

by Jung히다

과거의 남자

그는 늘 역동적이었다.
순한 듯하면서 강했고, 정스러운 듯하면서 매몰찼다.

언제나 폼생폼사로 마음씨를 썼으며
어떨 때는 과하게 배려하는 모습이 부담이 되기도 했다.
대부분 기대치 이상이었던 그 사람이 참 멋져 보였다.


30년이 흘렀다.
그도 조금씩 변해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멋진 듯 보였다.
나는 그를 '산소 같은 사람'이라 말하고 말았다.




그랬던 그가 변해버렸다.

아이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그 나이 되어 남들은 다 자제하는 스키 시니어 대회에 나가 많이 다쳐서...

속상했다.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던 나이기에 그를 위해 발휘할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밤이면 고통 속에 짐승의 소리와 유사한 신음을 내며 하얀 밤을 보내기 일쑤였다.

밥도 반찬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먹을 수 없다.
오른쪽 어깨와 손은 사용할 수 없고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왼손은 퉁퉁 부어 자유롭지 못했다.
추치의 말에 의하면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했다.
박살이 난 어깨뼈 맞추기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인대나 근육까지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많이 놀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남자에게 지금까지 쏟지 못했던 정성을 쏟아보는 것과

오래 걸리겠지만 훗날 재활을 위하여 매 매일 긍정적 동기를 부여해 주는 일.
그리고 시시 일비 하지 않고 평온의 일상을 유지시켜주는 것이었다.

독립적이고 역동적이며 과분한 배려로 두 남자까지 통제하며

나를 왕비마마로 모시게 만들던 과거의 그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이제는 내 정성으로 그를 과거의 남자로 돌려놓아야 한다.

갑자기 섭섭한 생각이 들 때면 "남편을 아들 하나 더 키운다 셈 치고 살면 속 편해"라는

선배 아줌마들의 유익수다를 꺼내 평화 수비 양념을 쳐야 한다.

하는 것마다 다 지지하고 응원해주던 속 넓던 과거의 그 남자가 드디어 짜증을 내기도 한다.
밤마다 훤하게 불을 쓰고 부스럭대며, 고통의 볼멘소리를 내며, 더딘 행동으로 TV를 켰다 껐다 한다.
자는 척하며 대충 넘어가지만 잠귀 밝은 내가 잘 잤을 리 없다. 항상 잠이 모자란다.

영 다른 삶을 살게 된 나는 더 이상 유능한 커리어우먼으로만 살 수 없게 되었다.

어김없이 칼 퇴근하여 염증에 도움되는 식재료로 고단백, 고칼슘, 입맛 돋우는 한 상을 준비해야 하고,
아침은 일곱 빛깔 무지개색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색깔의 신선한 야채, 과일이 듬뿍 들어간 샐러드에 매일마다 다른 드레싱, 삶은 달걀, 만두 한 두 알, 따뜻한 수프로 점심식사에 부담 없는 음식을 준비하며

그렇게 주부 9단이 되어 갔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남자가 아닌 그 앞에 나는 착하고 유능한 주부 9단의 양처가 되어 갔다.

불만? 없다.

불만이 있다면 이 땅에 열심히 살아온 주부 9단의 선배님들께 염치 실종녀로 찍힐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껏 정성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의 남자에게 이제라도 주부 9단으로 정성이라는 재미를 붙이려 한다.





* 긍정 Tip *

안 될 이유가 있다면 될 이유도 있어요


안될이유될이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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