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 감성 에세이 '산다는 것은'
한 여자.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분위기가 싱숭생숭해지는 것을 참지 못해 유머를 던지며 소녀처럼 먼저 웃었다.
남들은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듣고 나서 조금 생각해보면 '우~하하'다.
약간 언변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도 하고,
남들에게 없는 특이한 차원의 이야기를 많이 갖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늘 나를 선배님이라고 깍듯이 케어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타향살이의 어려움, 여자 관리자로써의 어려움을 단 한 번도 구시렁댄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알아서 척척 케어해주었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선배 같은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종갓집 맏 며느리 종부로써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대면서
어렵지 않게 집안 대소사를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자주 근태를 올렸지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 큰 무리가 없는 진행이었고
요즘은 연가를 올려도 사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구태여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켜주어야 할 건 지켜주어야 한다는 게 내 관리기술 중에 하나이다 보니
'사정이 있나 보다.'정도로 결재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어느 날 coffee 한 잔에 자기의 상황을 살짝 비추어준다.
그녀 스스로 "이제 2번째 제사 지냈으니 앞으로 4번 남았네요."라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마력이 있다.
잔잔한 듯 이야기하다가도 길지 않은 요란한 웃음소리.
게다가 사람 냄새 풍기는 윤리성 반듯한 실천력까지 겸비한 그녀의 행동 담은
도대체 어디쯤에서 그녀를 끌어내려야 할지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1년을 지켜보고 또 한 해를 시작하면서 지켜보았지만
오히려 허구의 꾸며낸 생활사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없는 진실성까지 보게 만든다.
"그녀는 어느 별에서 왔지?"
'현대에 어울리는 사고를 가진 여자가 아니야.'
그랬다가도 남을 이해하는 능력에서 개방성이 누구보다도 탁월하니.
'현대에 정말 잘 어울리는 사고를 가진 여자야.'로 결론을 다시 내려버리게 하는 여자이다.
시어머니의 집안 꾸리기에 한 번쯤 반기를 들고
'저 직장 다니는 며느리예요. 간소화합시다.' 아니면
'어머니 혼자 미리미리 해놓으시면 안 될까요?' 하고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오히려 아무 말씀 없이 잘 수행하며 살아오신 그 어머님을 존경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남편 일가가 집성촌처럼 모여사는 그곳에 살면서
남편 집안 애경사 챙기는 일을 언제나 신이 나서 하고 있다.
'어이없는 이론'을 아무렇지 않게 펼쳐대는 남편의 황당한 요구에도 유머로 잘 치고 넘어간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혼 이야기를 해도 벌써 12번은 했을 텐데
그녀에게는 쿨한 마음 정리 마법, 잘 어우르는 마법이 있는지 즐겁게 잘 살아가고 있다.
진짜 찐 종부에 진짜 찐 열녀인 그녀.
아직도 손수 깨를 사다 참기름 들기름을 짜서 먹는 그녀.
'대단하다'라고 박수를 쳐준 게 잘못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시모님이 돌아가신 후 손수라는 명칭이 많이 줄어들었다.
식재료와 공산품은 무조건 편리 위주로 대형 할인마트에서 구매하고,
겨우 요리만 손수 해서 먹는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그만 나의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새고 말았다.
그러나 부임하자마자 '안 받고 안 주고'를 강하게 실천했던 내게 그녀는 부담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생활근거지 근처로 전근을 가면서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녀가 이별 선물로 손수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건넨다.
해준 것도 없었고 공정함, 시스템의 올바른 구축 등의 핑계로 학연, 지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바른 소리만 하던 내게 그녀는 '손수의 소중함'을 건네주었다.
대형마트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건 성의는 있을 수 있으나 더 이상 소중할 수 없다.
돈만 있으면 언제든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10여 개월이 흘러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탁자 위에 무엇인가 놓여 있다.
'파손 주의' 택배.
언제나 그녀스럽다.
잊고 산 그녀였는데 또다시 그녀의 매력적인 감성이 떠오른다.
'손수의 소중함'을 깨워주었던 그녀!
신이나 즐겁게 열심히 살았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스럽게 수식어 없이 쿨한 편지.
"선배님!
이 가을 그립습니다.
늘 그러하시듯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쿨하리만큼 담백한 그녀의 글줄. 그런데 멋지다.
뭐야.
그녀는 왜 나보다 항상 더 멋진 거야.
뭐야.
그녀는 왜 나보다 항상 마음이 더 큰 거야.
그러면 또 다른 한 여자인 나는
어쩌란 말이야.
선배가 더 밀리니... 더 노력하라고.
그녀가 웃으며 속삭인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뭘 고민하십니까?"
"그냥 잘 먹을게 한마디면 되는 걸 가지고. "
'그래? '
'고민하지 마?'
'고마워~. 잘 먹을게.'
한 여자는
찐 종부에 찐 열녀. 매사에 적극적 긍정심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면서도
'손수의 소중함"을 행하며 쿨하게 잘 살고 있는 매력덩이 여자.
한 여자는
그저 원칙과 매뉴얼만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다
후배가 보여준 손수의 소중함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다가
이제야 깨우치고, 감사하며 조금씩 따스한 감성을 일깨우고 배움 중인 여자.
두 여자 중 누가 더 멋져요?
두 여자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대표적인 직장여성입니다.
그래도
두 여자 중 '손수의 소중함을 행하며 쿨하게 잘 살고 있는' 그 한 여자가
조금 더 멋진 것 같지 않아요.
멋진 후배 그녀에게 한표 던집니다.
강추!
멋진 그녀가 내게 일러주었어요.
* 긍정 Tip *
"산다는 것은 좋은 것을 닮고 싶어 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래요"
4차 혁명시대에 열녀라는 용어를 쓰면서 고민을 했으나 글의 흐름에 적절한 단어가 마땅하지 않아 그냥 쓰기로 했으며, 이글에서는 열녀(烈女)는 조선시대에 절개가 곧은 여자를 이르던 말(출처: 위키백과)이라는 단순한 뜻으로만 해석해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