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피스 타로로 읽는 지금 _ Discs 5번, "걱정은 소용이 없다"
나는 적어도 3개 이상의 일 네이밍을 갖고 산다. 공간 운영자, 문화예술 기획자, 타로 읽는 사람, 가끔 글을 쓰고, 작은 협동조합의 실무자, 치유 그림 교육/상담. 직업이어서 일을 선택하기보다 일 자체로 매력이나 필요가 있거나 관계망에서 연결되어서 일을 한다.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의 '일'이 포토샵 레이어처럼 쌓이는 시즌과 완전히 '일'이 하나도 없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닥친다. 그러면 다른 형태의 불안과 초조함을 달고 시간을 건너간다.
프리랜서, 문화예술계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의 경향과 스트레스의 성질이 비슷하다. 일이 미친 듯이 쌓이는 시기와 하나도 없는 시기를 견디는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고, 불안감이 불쑥 튀어나올 때 방어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 번씩 모이는 날에 서로의 급발진 행동과 이유 없는 작은 노동에 몰입하는 자신의 행태에 대해서 희화화 반, 위로를 바라는 마음 반으로 털어놓는다. 가지각색의 정신 나간 것 같은 행위는 재미있고 스타일을 알 수 있어서 깔깔 웃고 스스로를 광대처럼 내놓는다.
오늘의 마더피스 타로는 생존 문제가 만드는 일어나는 걱정과 초조함에 관한 카드이다.
서울에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염리동 꼭대기 대학 선배네에 무조건 받아달라고 부탁하고 쳐들어간 해였다. 집이 망해서 지원은 커녕 서울 올 때도 겨우 도망치듯 나왔기 때문에 몇십만 원 잔고가 겨우 있었다. 두 달여 만에 지금은 이름도 남지 않은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는데, 월급이 나오기까지 한동안 점점 통장이 바닥이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두고 교통비, 점심 식비를 빼고 쓸 돈으로 소주 한 병을 살 것인가 식재료를 살 것인가. 갑자기 싱크대의 밀가루가 보였다. 빙고!! 바로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신나게 샀다. 그리고 처음으로 수제비 반죽을 만들었다. 우리 할머니가 칼국수 수제비를 손으로 반죽해서 만드셨는데 맛이 일품이었고 만드는 과정을 재미있게 관찰한 아이가 나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밀가루 반죽을 하였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 적당한 끈기를 품을 때까지 뭉치고 두드리고 밀었다. 말랑말랑 탄성이 생기면 주먹으로 팡팡 두드리고 바닥에 쳐서 공기를 뺀 후 랩을 씌워 냉장고에서 한 시간 숙성을 시킨다. 그 사이 멸치와 다시로 육수를 내고 남은 야채 끄트머리를 총총 썰어둔다. 엄마처럼 얇게 수제비를 떼어서 육수에 퐁당퐁당, 야채도 퐁당퐁당. 소금이나 간장으로 살짝 간 맞추기면 끝.
처음 만든 수제비 맛이 기가 막혔다. 두어 시간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고 나니 머릿속이 말끔해졌다. 오히려 아껴서 구입한 소주를 마실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술은 답답한 내 마음을 견디기 위해 동원한 것인데 짧은 부엌 노동 덕분에 술 마실 이유가 사라졌다.
그 뒤로 수십법, 수백 번 답답한 에너지가 올라올 때가 있었다. 화장실 줄눈의 물때가 눈에 번쩍 띄어 처리할 일은 미루고 미친 듯이 고무장갑 끼고 욕실을 광이 나도록 닦거나, 커튼의 때가 보여서 집안의 온갖 페브릭을 다 걷어서 빨래를 한다던가. 구석에 쌓아놓은 오래된 짐들을 분리 정리해서 버리는 등 이사할 때나 할 짓을 했다.
마더피스 타로 공부를 하며 디스크의 5번 카드를 보는 순간 구질구질한 생존의 순간에서 수제비를 빚는 내가 보였다.
"와, 일 마감 직전에 갑자기 화장실 물 때 청소하는 그거 아닌가요?"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의 입이 터졌다.
"맞아, 맞아. 나는 싱크대 그릇 다 꺼내서 닦는데."
"난 안 해도 되는 냉장고 청소!!"
난리가 났다. 사는 일이 이렇게 녹녹지 않은 것이다. 각자 매 순간 작은 위기(견디면 지나갈)를 맞이해서 집중 노동으로 버티는 노하우가 있다. 노동을 하다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이게 급한 게 아닌데 현타가 온다. 하지만 이미 잔뜩 풀어놓은 곰팡이 제거제의 거품이 부글거리고 있으니 마무리는 해야 한다. 하다만 반죽은 버리는 것 말고는 무슨 소용이 있겠나 마음이 급해도 반죽을 완성해야지. 빨래가 다 되었다고 세탁기가 명령하면 얼른 널어야 하고. 꺼낸 그릇도 닦아서 다시 싱크대에 넣어야 하는 법.
이렇게 시작한 노동을 마무리하면 적당한 성취감이 오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장감이 수그러들며 현실의 답답함이 나를 우울함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막는다.
마더피스 타로 카드의 디스크 5 여인의 얼굴은 우울하고 답답하며 노동하는 팔과 몸에 긴장이 담겨 있다. 5번 숫자의 의미에 고통과 투쟁, 갈등의 상징이고 변화와 재탄생에 필요한 파괴와 과정을 담고 있다. 마이너 카드는 서양 연금술의 바탕이 되는 물, 불, 공기, 흙 4요소를 상징하는 4가지 슈트이다. 물은 컵으로, 불은 완즈(막대기), 공기는 쏘드(칼), 흙은 디스크(원반)이다. 각각의 특징에 따른 현실의 변화를 위한 투쟁, 갈등, 파괴가 5번 카드에 담겨 있다.
디스크는 흙 성질이어서 성공, 결실, 안정, 물질세계 속 감각과 관련이 있는데, 디스크 여인은 아무리 우울과 답답한 같은 마음의 두려움이 생겨도 뭔가 결실물을 만드는 행위, 구체적인 노동을 통해 상황을 지나가려고 한다. 다른 카드들과 다른 불안과 우울을 다루는 방식이다. 불안과 슬픔에 휩싸이거나(컵), 행동의 패턴에 갇혀있거나(칼), 사람 사이 직접 표현으로 갈등을 표출(불)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다.
디스크들은 절대 굶지 않는다. 현실에서 생존 문제에 닥쳐도 먹을거리를 만들고, 외부의 수행하러 나가도 꼭 먹을 것을 들고 다닌다. 디스크 카드를 보면 얘들은 먹고사니즘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들이구나 감탄을 한다.
직장, 일, 돈의 문제가 생긴 우리의 디스크 5번 여인은 노동을 하고 몸을 움직여서 에너지를 굴린다. 자아가 우울감에 고착되지 않도록 신체를 쓴다. 요리하는 행위는 점토를 만져 조각을 하거나 나무를 깎거나 덧대어 공예품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창조적인 활동으로 다시 내외부의 평가로부터 나를 지킨다.
티베트 속담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다." 이것을 잘 아는 그녀는 걱정보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현실의 노동을 택했다. 새로이 다가오는 긍정적 목표를 받기 위해 우울에 잠기지 않도록 에너지를 끌어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디스크 5 여인처럼 주로 음식을 만든다. 첫 수제비 이후로 걱정이 많아질 때 대용량의 마녀 수프를 돌린다. 공간릴라에 부엌이 있던 시절에는 10인분 이상의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먹였다. 경상도식 김치국밥, 진한 된장국과 현미밥, 감자샐러드 샌드위치, 유부초밥, 어마어마한 양의 무+배추 피클. 만들어서 나도 먹고 공간에서 밥 먹을 때 차리고, 가까운 동네 친구들에게 예쁘게 선물했다.
미친 듯이 음식을 만들고 나면 노동이 주는 선물인 꿀잠을 얻는다. 결과물을 바로 보고 나눔을 하면 성취감이 크다. 그 속에서 무너진 에너지가 다시 일어서서 움직임을 느끼고 내게 쉬는 시간을 주면 더 좋고.
지금도 일을 쳐내야 하거나, 일이 너무 없을 때 비슷하게 카레, 굴라쉬를 가득 만들어서 아래 윗집 친구들과 나누거나 개별 포장해서 냉동고에 넣어둔다. 바쁠 때 꺼내 먹을 저장음식이 되어서 냉동고를 열 때마다 뿌듯하다. 오래 두면 안 되니 부지런히 밥도 먹어 적당히 건강을 지키는데도 도움이 된다.
흙의 물질세계 속 풍요를 향해, 결실을 맺고자 하는 성질이 내 안에서 작동하는 순간들이다.
누구나 한 가지씩 급발진 노동의 욕구가 황당한 순간에 작동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을 떠올려보라, 디스크 5 여인이 당신의 팔다리를 움직여서 우울로 가라앉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나의 디스크 5 여인은 어떤 노동을 하는지 각자 살펴보기를 권한다. 그 순간이 언제 나에게 오는지. 다음에 걱정에 가라앉는 순간이 온다면 더 적극적으로 노동을 하기를, 내 안의 디스크 5 여인이 빵을 다 만들 수 있게 부지런히 온몸을 다 써서 일하기를.
그리고 나면 일상은 변해있을 것이다.
(2024. 6. 27 오늘 저녁에는 호박잎을 삶고 강된장을 만들어야겠다)
참조 : 마더피스 타로에 새긴 여성의 힘과 지혜(비키노블 지음, 백윤영미/장이정규 옮김. if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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