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삐삐 Jun 13. 2024

애처로운 공원의 그 남자

마더피스 타로로 읽는 지금 _ Ⅵ. LOVERS (연인) 첫 번째


마더피스 타로 카드의 Ⅵ. LOVERS

마더피스 타로 카드를 만지고 읽는 시간이 9년 차에 접어들었다. 본격 타로 리딩, 상담을 직업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기회에 사람들의 질문을 마주했다. 나는 사람과의 만남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희한하게 타로 리딩은 그 사람이 말해주기까지 리딩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내가 타로 상담을 했다는 것조차 기억이 사라지기도 한다. 자기 내면적 얘기까지 한 상담인데 기억을 못 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카드와 관련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들여다봐야 누군가와 상담한 내용이 겨우 떠오른다.

처음에는 상담을 받았다는 얘기를 나에게 하면 잊어버린 것이 미안했는데 내면의 얘기를 내가 다 기억하는 것은 상대방에게도 부담이라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직관으로 읽은 내용이라 분석과 해석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전달해서인가보다 정도의 진단이다.

사람들은 많은 종류의 질문을 하였다. 그중 압도적인 주제가 뭐였을까?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있는 인류의 숙제. 바로 연애이다. 특히 신년 타로를 봐주면 백발백중 좋은 사람을 만날까, 만나는 사람과 한해 잘 보낼까, 나는 왜 연애를 못하나,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참 다양하지만 질문의 바닥에 흐르는 욕망은 동일하다. 나이, 성별, 성정체성,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사랑받고 싶다와 그만큼 무게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아, 이 사람을 어쩌나 애처로운 리딩의 기억

완전 열린 공간, 공원에서 축제의 한 꼭지로 지나가는 시민 대상 리딩을 할 기회가 있었다. 8살 ~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30분씩 상담을 했고 타로 상담력을 한층 끌어 올렸다. 내 인생 최고난도의 상담인 그 남자와도 공원 열린 상담소에서 만났다. 내가 어떤 상담이었는지 기억을 잘 못한다 했지만 고난도의 상담은 직관과 함께 알려주기 위해 머리를 엄청 굴리는 노력을 하기 때문에 생생하게 남았다.

딱 봐도 나이가 아주 어린 남성은 아니었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는데도 오래 남아서 결국 내 앞에 앉았다.

"뭐가 궁금하세요? 꼭 문제가 아니어도 되어요, 생각나는 것 떠오르면 말씀해 주세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저는 결혼을 목적으로 여자를 만나는데 여자들이 다 나를 싫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아, 강적이 나타났다. 한편 오죽 답답하면 남자 혼자 타로리딩에 줄 서는 낯선 상황을 감내하여 믿을 구석이 뭣도 없는 나와 마주 앉았겠는가 싶었다. 미소를 띠며 사람을 만나자마자 본인의 목적을 먼저 밝혔냐고 물었다. 그랬을 것이 분명하기에 확인 사살.

"네 당연하지요, 아니면 그 사람을 만났겠습니까?"

아이코. 일단 타로를 뽑게 했고 당연히 감정과 사랑의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타로의 직관을 전달하는 리딩이상의 심리 상담과 연애 상담을 해야 했다.

"서로 마음이 오가기도 전에 결혼을 하고 싶어서 당신을 만난다고 하면 상대방은 나를 결혼의 도구로 쓰려는 남자구나 하고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거예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어떤 사람이 궁금해하세요. 마음을 주고받고 이게 시작입니다. 앞으로 함께 가족을 꾸려서 함께 살 수 있는지 그녀와 신뢰를 쌓는 시간과 정성을 가지셔야 해요."라는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 거의 30분 넘게 이 남자를 데리고 질문에 질문을 던지며 연애 상담을 했다. 시무룩하게 돌아서는 그 뒷모습에 이 사람아, 사람을 도구로 쓰려면 우짜누 혀를 차면서도 한편 짠하기도 했다.

이 남자는 살면서 당연한 순번으로 맞을 결혼의 몫이 이뤄지지 않아 좌절과 결핍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의 청사진 속 결혼을 엿보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계의 회색빛 담벼락과 텅 빈 미래 계획의 회색 스크롤이 열렸다.


아킬레스와 펜테실레이아 신화, 기원전 530~525년 꽃병


폭력과 로맨스

마더피스 타로의 연인은 이분법의 세계, 경계를 구분한 담벼락과 사랑을 둘러싼 가부장의 판타지를 열고 감수성과 무의식 위로 지는 일몰의 바다로 나아가는 배를 그렸다.

두 개의 꽃병에는 가부장 초기 시대의 연인 관계를 묘사했다. 왼쪽 꽃병에는 그리스 신화 속의 아킬레스와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이야기이다. 아킬레스가 전쟁 중인 아마존 여왕을 살해하고 나서 투구를 열었더니 아름다운 그 모습에 사랑에 빠졌다는 신화이다. 가부장제 초장기의 여성을 취하는 간강과 죽음 등 폭력의 과정이다.

오른쪽 꽃병은 남성이 여성을 흠모하는 로맨틱 신화이다. 이 신화는 현대사회에도 계속 진행 중이다. 아테네 여성은 남성이 자신을 숭배하는 동안만 같은 위치에 있는 권력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으로 남편의 소유가 되면 더 이상 숭배받는 위치가 아닌 아버지의 아들을 낳는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는 다시 다른 여자나 어린 남성과의 사랑을 찾아 가정 밖으로 떠났다.(그리스 시대 최고의 연인 관계는 스승인 남자와 사춘기 남성이다. 여성을 성숙하지 못하는 존재로 봤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발명한 장치, 결혼

현대 사회는 마더피스 카드 꽃병의 그리스 시대와는 분명 다르다. 폭력을 행사하면 법적 처벌을 받고 연인의 사랑은 일부일처제의 가족을 구성하며 국가가 보호한다. 그렇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헤어지기를 원하는 연인에게 왜 분노하며 폭력을 행사할까, 결혼을 목적으로 만나자는 얘기가 왜 당연할까.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하다. '소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내 것인데 내 것이었는데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박탈감이 분노를 일으키고 죽여서라도 내 것이 되도록 하고 싶은 무의식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남성이 어려서부터 이런 말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을 것이다.

"우리 아들, 너는 커서 아빠처럼 되려면(엄마랑 결혼해서 너를 낳은)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해."

"커서 여자를 잘 만나려면 돈 없으면 안 된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지. 그러려면 대학도 잘 가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하고. 안 그러면 누가 널 좋아하겠니?"


미혼, 비혼이 많아진 세상에서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정당하게 노동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결혼한 사람들이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조금 달라진다. 남의 밑에서 애쓰고 더러운 꼴도 참아가며 일하는 사람들(남녀 모두)은 책임지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먹여 살리고 돌보는 것. 남성의 경우 내가 가족을 꾸리고 책임진다는 것은 사회적 성공 척도의 기본이었다. 결혼을 못했다는 것은 능력 부족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이런 결혼의 신화를 5~6천 년 간 사회의 근간으로 유지하고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결혼은 인류의 최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었고 재산과 아들을 낳기 위한 도구였다가 근대에 이르러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정립된다. 매우 짧지만 그 어느 관습보다 더 강력한 시스템이다.


불황과 안전하지 않은 시대가 빚은 결혼하지 않는 시대

요즘 20~30대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아주 늦는 현상을 본다. 현상으로서 보이는 것은 달라졌지만 경제 불황과 자본주의 불안정, 정치 사회의 불합리합이 삐죽삐죽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결혼을 급하게 하거나 일찍 하면 어, 아이를 먼저 가졌나에서 돈이 많나 보다로 인식이 바뀌었다는 말에 아, 그렇구나 했다. 

그만큼 내가 먹고사는 일이 점점 더 빠듯하고 어렵고 한편으로 나도 번듯한 소비생활을 하고 싶은 욕망이 우선이다. 어른들도 감히 나이 찼으니 결혼하라고 말을 쉽게 못 한다. 가부장제와 국가사회도 위기에 이르는 중이다. 일정 인구가 있어야 국가가 유지되고 상층부 권력이 지속할 수 있는데 결혼과 출산율이 계속 곤두박질이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탓을 하거나 경제 탓을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다. 6천여 년의 가부장제를 유지한 시스템은 권력과 소유를 지키기 위해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 시대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면 서로의 소유가 되고 소속이 되는 엄청난 관습과 무의식이 우리 안에 있다. 너 그렇게 하면 결혼 못해, 사랑 못 받아, 요즘 시부모들도 안 그래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밑에는 당연한 결혼을 하지 못하는 현실의 답답함 어려움이 담겨 있다. 언어 밑바닥을 박박 긁어내고 표피와 땅속을 파헤쳐야 보이는 것들이다. 유럽사회의 설문 조사 기록을 보면 행복 기준의 가장 큰 영역은 가족이다. 아시아, 한국 역시 경제 사회가 안정망을 만들면 본인 가족을 만들고 지속하는 틀 안으로 빠르게 다시 들어갈 것이다.

공원에서 만난 결혼 못한 남자는 이 시대를 그대로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드러냈고, 안타깝지만 솔직한 자기 고백을 푸념처럼 내게 전했다. 그는 순진무구한 '가부장의 아들' 그 자체여서 마음에 많이 남는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져야 한다는 자기 압박에서 벗어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위대한 과정을 가슴으로 느낀다면 그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카드 리딩을 하다가 6번 연인카드가 나오면 그가 생각나고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고 타인을 만나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를 기원한다. (상담이 아니었다면 나는 대뜸 불쾌감에 대판 싸웠을지도 모를 대화이지만 마더피스 타로 상담은 희한하게 사람을 품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렇다면!

마더피스 타로에서 다루는 사랑은 앞쪽의 두 개의 꽃병 폭력과 판타지를 걷어낸 다음에 비로소 등장한다.

이 얘기는 다른 상담 사례와 함께 다음 주에!


(2024. 6. 13 새벽부터 짠내 나는 남자에게 사랑을 하라고 말하다)




#마더피스타로 #Moherpeace #tarot #타로 #6번러버스 #사랑




이전 01화 기다려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