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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냥 울어요

나의 친애하는 고양이 자매에게 _ 언어로 다 표현 못하는 순간들, 사람들

by 마담 삐삐

나의 지인 중에는 미술과 이미지 계통의 작업을 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그들은 언어를 베이스로 상상하는 나와는 너무나 달라서 가끔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깜짝 놀란다. 예를 들어 책을 만들 때에도 나는 언어로 된 원고를 수거하여 교열교정 후 내용에 맞는 이미지와 디자인을 만들어 앉힌다. 이건 편집의 상식이다.

이 친구들은 이미지를 다 만들고 그 위에 원고를 쓴다고 한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방식이어서 신기했다. 그녀들에게는 이미지가 기초이고 그다음이 언어여서 글부터 쓸 수가 없단다. 이 얘기를 밤새도록 하며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다름을 같음으로 바꾸는 것보다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아는 순간이 즐거운 밤이었다. 언어가 기초인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순서, 이미지와 감정이 먼저 언어가 뒤!


마음의 입장에서 말이 좀 답답하지 않을까. 마음을 표현의 옷으로 입는 것이 언어일 경우가 많은데, 마음이 보기에 충분하지 않을 때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중요한 순간에 함께 있고 흔들릴 때 잡아준 시간을 떠올리면 몇 마디로는 진심 아쉽고 부족하다. 기껏 언어로 할 수 있는 말이 고맙다 뿐이니. 그 마저도 제대로 못해서 오해와 불신을 쌓긴 하지만..

공간릴라 냥이 시절1. 프로방해묘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자고 적어보지만

고보협과 식구들. 아이들이 십 년 간 잘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었다. 먼저 우리 아이들을 구조한 한국고양이보호협회와 실무자들+임시보호한 회원 가족들, 임시보호하는 집에 있는 큰 고양이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구조해서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고 입양을 결심하였고, 내게 오기까지 아이들을 돌봐줬으며 최초이자 최후의 목욕도 그분들이 시켰다. 임시보호가 끝나는 날, 그 순간 아이들의 대모님의 마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라면 참 다행이지만 꼬맹이들 한 달 반 돌본 정을 떼는 날이라 많이 울었을 것 같다. 고것들이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자리마다 마음이 다 묻어있을 테니. 어휴 그 마음...


공간릴라 운영지기인 그녀. 공간에 데리고 올 때 당연히 허락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지 헤아림이 부족했다. 워낙 타인과 다른 존재에게 경계가 없는 분이라 끝끝내 반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고 역시나 그랬다. 구조 동물에게 공간을 공유한다고 말을 번드레하게 했고 착한 이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짜서 던졌다. 내가 너무 데려오고 싶어했기에 더더욱 반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한참 뒤에 동물을 무서워하는 분이 어쩌다 그렇게 금방 찬성을 했을까, 죄송한 마음이 생겼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존재에게 관대하고 먼저 동물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어서 고양이들이 그녀를 너무 좋아했다. 의자의 등받이와 몸 사이에 쓰윽 들어가고 다리와 발에 자기 몸을 디밀고. 3년 가까이 공간에 있는 동안 아이들은 꾸준히 그녀를 좋아했고, 한번씩 깜짝 놀라는 친구에게 계속 미안했다. 다행히 3년 만에 집으로 데려왔고 우리의 공간은 다른 모습으로 이사를 했다. 올해 열 살 생일을 맞아 얼굴책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올렸는데, 그녀가 축하글을 남겼다.

"벌써 10년이구나, 그 10년 동안 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너희는 어땠니? 생일 축하해~^^"

한동안 그녀의 십 년, 우리 고양이들의 십 년, 나의 십 년이 동시에. 고마움을 써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할까. 그녀의 허락 없이는 아이들과 처음의 순간을 맞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 몫까지 합쳐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불가능하다.


공간릴라 냥이 시절 2. 내가 멈추는 곳, 그곳이 나의 자리다

나의 귀인, 동네 친구들. 두 아이를 돌보는데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고 있고 앞으로도 쭉 있을 예정이다.

처음에는 초보 집사인 나에게 육묘의 경험과 지혜를 나눠준 동네 친구 부부. 애들이 사소하게 아플 때는 병원에 가는 것보다 전화로 문진을 해보고 가보라는 등 고양이 위주의 육묘 Tip을 전수받았다.

혼자 사는 사람이 고양이, 강아지를 키우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외박을 할 때이다. 아이들과 살면서 여행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휴가의 의미를 담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지만 가끔 일상을 떠나는 시간을 싫어하지 않는다. 여행보다는 아이들이 우선이어서 내 마음에서 십 년째 밀어내고 있을 것이다. 무의식 중에 아이들 탓으로 돌리지 않도록, 여행 결핍이 생기지 않게 하느라 나도 모르게.

루카가 있는 밥, 없는 밥 다 먹고 어딘가에 과식토를 해놓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 밥시간에 밥양 맞춰서 줘야 한다. 이런 밥먹는 스타일 때문에 외박하기가 저어된다. 그렇다고 지역 출장 일을 포기하면 프리랜서인 나는 굶어 죽기 딱 좋다. 그럴 때 동네 친구들에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십여 일 파리 문화예술 탐방 프로젝트가 가장 긴 여행이었는데 다양한 연령대의 동네친구들이 활약을 했다.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밥과 물을 주고 화장실을 치웠다. 밥주기+응가를 치워야 하기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만이 가능한 도움이었다. 그/그녀들은 매일 멀리 태평양 너머에서 걱정하고 있을 나에게 사진까지 보냈다. 덕분에 맘 푹 놓고 할 일을 무사히 다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이틀 출장가거나 가족모임이 있는 날, 몇 년에 한 번 여행하는 날 부탁하면 흔쾌히 살펴주는 금쪽같은 보모들 리스트가 있다. 지금은 친구들과 같이 공동주책 입주해 살고 있어 윗집 친구가 주로 아이들의 대모역할을 한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 애들도 이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살랑거린다...기보다, 고양이가 강아지처럼 그럴 리가 없다. 3층의 사랑스런 이가 고양이들 집에 들어가면 도망치지 않고 아주 당연히 "너 왔니? 그래 어디 밥 좀 줘봐라"는 포즈로 맞이한다.

또 한 사람의 귀인. 어느 술자리, 만약 네가 어떻게 된다면 내가 너의 고양이들 양육자가 될게라고 약속했다. 내가 무슨 일 생기면 아이들은 한국고양이보호협회로 다시 가야 해, 그렇지만 네가 입양할 수도록 내가 유서로 써놓을게라고 마치 곧 내일 일처럼 얘기를 나눴다. 당연히 오지 않아야 할 미래이다. 아이들 마지막 가는 날까지 난 건강하게 고양이들 옆에 있을 것이지만 사람 일이란 알 수 없으니까. 내게 든든한 마음의 보험계약서를 사인해서 준 친구는 요즘도 가끔 들러 아이들을 참 이뻐한다.

이 사람들에게 나는 신세를 진 것이지만 그만큼 누군가의 신세짐을 받으려고 애쓴다. 그 마음에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 나는 언어로 정의할 수가 없어서 몸으로 때운다.


"이제 왔니, 늦었네. 어디 밥 좀 차려와라." 돌봄하러 온 친구를 맞이하는 고양이 자매의 에티튜드

연재물의 히어로, 사랑을 알려주려 내게 온 우리 아띠와 루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라 알려주었고, 계산 없는 사랑을 내게 전하는 우리 고양이들. 결핍의 찐득함이 나를 점차 망치고 있는 나날, 고양이 자매는 명징한 칼이 되어 끈끈이를 잘라냈고, 마음이 바싹바싹 마른 나뭇잎 같을 때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나를 촉촉하게 적셨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우리는 에너지와 느낌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서로 공부하며 십 년째 사랑하는 중이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 오고 돌봄에 꽤나 익숙해지는 어느 날 술을 먹고(미안하다 얘들아 언니가 술쟁이라..) 집에 왔는데 어제처럼 아낌없이 반겼다. 그날은 힘든 일들을 처리하면서 꽤나 마음이 곤한 상태였다. 두 녀석이 앞다퉈 반기는 얼굴 앞에 무너져서 엉엉 울었다.

"너희들은 내가 살인자여도 아마 이렇게 사랑했을 거야. 그렇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지. 그냥 나를 사랑하는 너희들이.. 크흑흑흑.."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몇 날의 힘겨움이 아이들의 사랑 앞에 정화하는 과정이라 그냥 말이고 뭣이고 다 사라지고 울음만이 남았다. 말 따위 무슨 소용이람. 그냥 내 앞에 고양이 자매가 있고 그 아이들이 기다리는 내가 있는데. 우리가 마주해서 사랑하면 되는데. 언어 바보!


언어로 다 못하는 말은 내버려두고 울기라도 해야지

말이란 사람의 행동 뒤에 오는 것이라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면 천만다행이다. 말 앞의 표현불가능한 과정과 감정, 에너지가 있다. 그러니 다 표현지 못한 마음은 말의 브레이크를 걸어 세워두고 달려가 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안되면 울기라도 해야지.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들의 표현처럼.


(2024년 7월 1일. 오늘은 더워서 애들이 본척만척이다. 칫!)


여름 맞이하는 고양이 자매. 점점 늘어지고 움직임이 둔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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