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고양이 자매에게 _ 덕분에 에어컨을 켠다
서울 열대야가 부쩍 길어져 에어컨을 놓을까 말까 매년 고민하다가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부는 무한 루틴이 이어졌다. 왠지 여름은 원래 더우니까 더워야 정상이니까, 지구가 아픈데 나까지 생채기를 안겨줘야 하나 고민이 더해져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다.
5~6년 전만 해도 덥지만 저녁에 창문 열고 선풍기 틀면 견딜만해서 사람들 모이는 공간릴라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심각하게 열대야가 이어진 2018년 결국 고양이들이 더위 타는 반응을 보여 부랴부랴 에어컨을 설치했고 덕분에 나도 여름에서 벗어났다.
올해는 여름이 빨리 오나 보다 느낀 것은 고양이의 눌어붙은 모양 때문이었다. 고양이들이야 원래 액체설, 무관절설이 나올 정도로 평소에도 뒹굴거리면서 늘어지지만, 여름의 털습기와 근육의 축 처짐은 다르다.
무엇보다 그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바람이 잘 통하는 바람길에 양다리를 들어서 쩍벌 한 상태로 누워있다거나 이불 위에 누워서 자는 시간이 길어진다. 더 이상 이불속을 파고들지 않고 내 품을 떠나 조금 멀찍이 누워서 쩍벌 하는 상태로 자고 있다.
심지어 기상시간이 가끔이지만 늦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이때다, 애들에게 물어본다.
"얘들아, 너희들 여름 저혈압이니?"
이십 대에 여름마다 저협압이 심해져서 일어났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축 늘어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장난기가 스물 올라온다.
"얘들아, 간식 먹으까?"
눈이 커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종종 일어나 침대를 내려간다. 기운 내라고 츄르 반쪽씩 짜서 프로바이오틱스를 섞는다. 내가 먹을 것도 챙기고. 애들도 먹고 나도 먹고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려는 의지를 높인다.
어느 해 여름, 동네 지인의 아로마테라피와 비누 제작 공방에 들렀다. 마침 백화점에 손자수를 놔서 납품하는 한산모시 1인용 요를 최저가로 판매하고 있었다. 가끔 공방과 친한 공예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고 소개하는데 그해는 모시가 주제였다. 아, 물론 최저가라는 해도 작은 이불 조각 하나치고 면이나 합성섬유 제품과 비교가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러나 손으로 살짝 만지는 순간! 아.... 서늘한 천연 섬유가 주는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 작은 동양자수 한 줄이 맺음 한 깔끔하고 고급스러움.
'그래, 이 이불 평생 쓴다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선물하자!'
큰 결심을 하고 집에 데리고 왔다. 어휴, 가난한 프리랜서 기획자가 이 무슨 사치인가 싶어 모시를 담은 가방이 무겁고 한숨 나오고 종일 그랬다. 반품하지 말고 냅다 써버리자며 그날 밤 바로 침대 위에 깔고 잠깐 씻고 왔다.
그때 본 풍경. 침대 위 곱게 펼친 한산 모시 위에 우리 고양이들이 귀족 아가씨처럼 우아하게 늘어져 계셨다. 마치 원래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사치를 부렸나 괜한 죄책감에 쫄아붙은 나의 심장은 화사하게 빛났다. 아, 고양이들을 위한 것이었어, 그럼 아주아주 괜찮지. 한산 모시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매년 날이 더워지고 꿉꿉해지면 이불을 꺼내 매트리스 귀퉁이에 존을 만든다. 그러면 둘이 번갈아가면서 그 위에서 뒹굴다가 잔다.
아이들은 합섬섬유나 너무 뭉글뭉글하고 폭신폭신한 침구, 페브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광고에서 좋다고 해도 데리고 오면 백발백중 실패! 차라리 거칠지만 마원단으로 만든 호박쿠션(직접 만들었음. 두 번 다시 만들지 않을 예정), 인도면으로 만든 시트, 광목 원단 이불. 자연 그대로의 천연 섬유를 제일 좋아한다. 거기에 내 체취가 묻으면 더 더. 광목은 저렴한 편이지만 인도면, 마, 리넨 다 비싼 천연섬유이다.
짜식들, 좋은 건 또 알아가지구!!! 그래도 원단만 사면 괜찮아. 언니가 미싱으로 드륵드륵 박아서 좋은 자리를 만들어 줄께. 옷은 끝끝내 만들지 못했지만 너희들을 위한 것을 만드니 참 보람차다.
이것이 바로 집사의 삶, 좋은 것은 모두 고양이 것.
고무고무 고양이들이 늘어져 있는다지만, 다른 계절에 비해서 늦잠 자는 날 드물게 생겼을 뿐이다. 그녀들은 자연의 시계를 정확하게 지킨다. 덕분에 나의 괴로움은 한층 더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더위가 힘든 나는 여름 아침, 특히 기압이 떨어진 장마철에는 눈을 뜨기가 괴롭다. 그런 나의 상태를 아랑곳하지 않고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일어난 아띠는 새벽 5시부터 나를 깨우기 시작한다. 일어나서 나에게 밥을 주고, 일어나서 나와 놀고, 일어나서 화장실을 치우고 물을 갈아라, 일어나서 내 털을 빗고 마사지를 해라. 집념의 고양이는 내가 눈을 떴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더욱더 강렬하게 나를 깨운다.
10년의 학습은 무섭다. 핥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를 아띠는 너무나 잘 안다. 잠을 깨울 때 핥아댄다. 심지어 귓가의 이불을 긁어서 사각거리기도 하고, 귀에 대로 아아앙 운다. 뭔가 오기가 난 날은 자는 척 버티지만 대부분 진다. 아띠의 노력 끝에 내가 꿈틀거리면 이때다 루카가 와 아아아 아, 아아아아앙 화음을 맞춰 운다.
"어이구, 얘들아. 너무한다. 어이구 어이구." 엉금엉금 기어서 허리를 피고 애들 밥자리 치우고 밥 주고 물 준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은 덕분에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커피를 내려 먹으면서 미뤄둔 책을 읽거나 지난밤 다 못한 서류를 만지고 청소를 한다. 여유 있게 도시락을 만들어서 나갈 준비를 하면 어느새 몸이 정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다.
이런 투닥거림으로 엎치락뒤치락하다 부스스 애들의 두꺼운 털이 빠지기 시작하면 바람이 서늘해진다.
계절을 몸으로 전하는 아띠와 루카. 언니를 닮아서 매년 여름이 올 때 장염을 살짝 한다. 그러면 토하거나 식욕을 잃고 며칠 기운이 없다. 올해도 아띠가 한 이틀 안 먹다가 사흘째 오늘도 안 먹으면 병원 가야지 하던 날 그릇을 비웠다. 아무래도 여름맞이 몸살을 알았는지 기운 없는 아띠의 등과 머리를 오래오래 쓰다듬었다. 밥 잘 먹어서 폭풍친창과 함께. 애들의 상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켜보는 요령이 생겼다.
계절을 가장 먼저 내게 전해주는 고양이들. 올해 여름 얼마나 더울까. 에어컨은 너무 차갑지 않게 무풍 28~29도! 창문은 자주 열었다 닫았다 환기! 털은 평소보다 더 자주 빗어주고, 물은 시원하게. 가끔 입맛 도는 간식을 아이들에게 주듯 나도 제철 과일이랑 야채로 밥 잘 지어먹고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보자고 장 볼 리스트를 짜는 밤이다.
(2024년 7월 7일 비가 오는 건지 마는 건지, 또다시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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