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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Jun 24. 2024

술쟁이 언니와 고양이들

나의 친애하는 고양이 자매에게 _ 술 주정에 대처하는 고양이의 자세

"이건 나의 진심인데 진지하게 들어주라. 내가 만약 인생이 망가져서 흙바닥에 뒹군다면 아마 그건 술 때문 일 거야." 어느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푸념처럼 한 말이다. 농담이지만 진심이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술자리에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서 간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술을 먹지 않는단다. 나도 꽤 오랫동안 그런 줄 알았는데 생활환경이 변하고 혼자서 밥 먹고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다양한 술을 접하는 등 음주 경험이 쌓였다. 미식가처럼 술 자체의 맛을 즐기는 나를 발견했다. 아, 나는 정말 술이 맛있구나. 인생 큰 깨달음을 얻고 뒤풀이나 사람 많이 모이는 술자리 참석율이 완전 떨어졌다. 차라리 맛있게 술을 먹거나 깊이 얘기하면서 만날 소수와의 술자리를 찾는다.

건강이 좀 나빠지고는 예전보다 술을 먹는 횟수, 먹는 양도 줄었다. 그렇지만! 술을 끊지는 못했다. 술을 끓는다는 마음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잠들 때, 나도 같이 마음이 안정을 찾는다

좌 아띠, 우 루카를 끼고 눕는 침대

고양이 자매들은 잠들 때의 버릇이 다르다. 어쩜 이렇게 다른지.

고등어태비 아띠는 내가 잠들 때까지 주변에서 졸다가 자려고 준비하면 자기가 먼저 아앙 울면서 침대로 끌고 간다. 그리고 내가 누워서 잠을 청하면 왼쪽에 자리를 잡는다. 가을, 겨울에는 겨드랑이로 파고들어 와 이불속에서 자고 봄, 여름에는 이불 위에 누워서 쓰다듬어 달라고 비빈다. 

턱시도인 루카는 내가 완전히 누우면 그제야 침대 밑에서 아아앙 하고 운다. 오른쪽 매트리스를 두드리며 "루카, 일루 와." 자리를 만들면 폴짝 점프, 나무늘보 인형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든다. 그때 쓰담쓰담하면 경운기 지나가는 듯한 거대한 골골송을 들을 수 있다. 이십여분 마사지와 쓰담은 필수!

그렇다. 나는 오른쪽과 왼쪽에 각 한 묘씩 끼고 잔다. 슈퍼싱클 침대 시절,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매일 뻐근하고 다리에 쥐가 났다. 고양이들은 세로로 눕지 않고 가로로 누워서 나는 아이들 사이 살짝 대각선의 한자세로 뻣뻣하게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살아야겠다 싶어 침대는 퀸!!! 자면서 돌아누울 수 있는 침대는 퀸!!

가로 본능, 그 어디에서도 가로 본능

술쟁이 언니의 패턴에 따른 고양이의 대처 방식

술을 집에서 먹는 날은 주로 혼자이거나 아주 가까운 지인 방문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지인 방문, 특히 여자 친구들이 오면 고양이 자매는 낯가림을 빨리 끝내고 그녀들을 탐색한다. 가방 냄새와 몸 냄새를 맡고 쓰윽 부비며 자기 영역으로 그녀들을 찜한다. 그것도 모르고 자기들에게 애교 부린다며 친구들은 좋아한다. 두어 번 방문한 언니들은 도망치지도 않고 멈춰서 맞이한다. 언니들은 신나게 애들이랑 놀아주니까 나도 참 편한다.(흐흐흐흐)

남자들은 여러 번 더 봐야 하고 목소리를 고음으로 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낮은 저음으로 크게 말하면 우리 집을 떠날 때까지 얼굴을 못 볼 수도 있다. 그 모든 확인 과정을 거치면 오빠들에게 어찌나 사랑을 표하는지. 오빠들의 옷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를 엄청 좋아해서 옷에 부비고 몸에 부비고 가방에... 내가 부끄러울 때도 있다.

혼자 술을 먹는 날은 아이들에게도 츄르나 캔을 따서 준다. 내 술안주상을 봐놓고 준비가 되면 애들 간식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얼굴도 들지 않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향해 건배를 청한다.

"얘들아 너희들이 있으니 나의 술잔이 외롭지 않아 참 좋구나."

뭔 소리냐는 듯 쓱 쳐다보고 지들 먹는 일에 집중하는 현재 충실형 묘생들이다.


자, 그런데 문제는 나 자신이다.

바깥에서 술을 좀 많이 먹고 들어오는 날, 이런 날이면..

물론 이미 고양이 저녁 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애들이 맞이하면서 신경질을 표한다.

눈꼬리가 바짝 올라가 있고, 아띠가 특히 준엄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짧게 야옹하며 못마땅함을 표시한다.

"예,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을죄를 졌네요. 아띠야 언니가 술 한잔 했다. 아우.. 그래도 밥 줄 거야. 쫌만 기둘리. 미안해.."

연신 미안하다 사과를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혹은 술이 취해서 흔들거리며) 밥을 대령한다. 그리고 술 깨는 약이랑 비타민 기타 등등과 물을 마시고 씻으면서 아이들 식사 끝나기를 기다린다. 대충 밥을 다 먹은 거 같으면 얘들아 자자라고 한마디를 남기고 침대로 간다. 먼저 침대로 가는 아띠는 멀찍이서 나를 쳐다보고만 있고, 루카는 잠깐 왔다가 간다. 

새벽에 목이 말라서 깨서 옆자리를 좌우 살피면 확률상 80% 내 곁에 없다. 좀 서운한 마음은 있지만 술 먹은 상태여서 그냥 잔다.

"또 술 먹었어?"

바깥에서 술초빼이(경상도 사투리로 식초에 담근 것 같은 상태)가 된 상태로 들어오는 날, 그런 날은...

일단 내가 기억이 잘 안 난다. 물론 고양이들은 옆에 100% 없다. 뒤척이고 술냄새도 나고 나라도 같이 안 자고 싶을 것이다. 진심 이해한다. 윗 옷, 가방, 양말이 어지럽게 여기저기. 물 잔은 반쯤 엎어져 쏟아져 있고 그 와중에 애들 밥은 또 챙기긴 했는데 사료가 몇 알씩 흩어져 있다. 하... 스스로 자괴감에 눈을 떠서 애들을 부르면 그제야 루카가 다가온다. 아띠는 대답도 안 한다. 삐졌거나 피곤하거나 못마땅한 상태이다.

새벽의 기억을 더듬더듬 떠올려보면 집 문을 열면서 아띠야, 루카야 크게 부르고. 아띠 얼굴을 붙잡고 뽀뽀를 하고 애들이 구석탱이에 있으면 거기를 쫓아가서 궁디팡팡하고 쓰담하고 뭐라 뭐라 중얼중얼. 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 음 뭐지?

아버지 술 드시고 들어온 날 잠자는 우릴 다 깨워서 꺼실꺼실한 턱으로 턱뽀뽀하고 껄껄껄 웃다가 자러 가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어린 나는 얼마나 몸서리치게 싫었던가. 잠이 안 깬 척 눈도 안 뜨고 뒤척이며 피한 꼼수까지. 술 취한 아버지랑 내가 다른 게 하나도 없다. 이런!!

아버지가 그런 맘이었구나 싶지만 여전히 떠올리면 으어하는 기억이다. 좋은 것은 좋은 사람에게 좋은 방법으로 다정하게 알려줘야지. 


잠자는 아이들이 주는 안심

술을 먹지 않아도 주변이 조용할 때 둘러보면 아이들이 코코 자고 있다. 자는 모습이 평화롭고 내 삶이 다 괜찮은 것 같은 안심을 준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아이들을 쓰다듬으면 눈을 뜰 듯 말 듯 몸을 비틀며 손길에 자기들 몸을 맘껏 내맡긴다. 

"너희들도 안심하는 거지? 우리가 같이 있어서."

새벽에 이 글을 쓰는 나를 기다리는 우리 고양이들, 내가 술을 끊을 순 없고 조금만 먹도록 노력할게. 

근데 얘들아 우리 아버지에게 똑같은 얘기를 했거든. 아버지가 "술을 취하려고 먹지, 취하지도 않을 술을 뭐 하러 먹노?" 내가 그 말에 말문이 막히더라,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맞지 이렇게. 그래도 먹는 횟수는 계속 줄일게, 그치만 조금 먹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아직은 먹을 수 있으니까. 너희들도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이 가능하니까. 시간이 조금 더 가서 너희들 두고 놀러 다니기 어려울 때 그때는 정말 술을 안 먹을 거야, 먹을 생각도 안 날 거야. 


이제는 체력이 부족해서 대차게 마시는 날이 드물다. 그래도 한 번씩 심하게 술을 먹고 들어오는 언니와 각방 쓰지만 금방 용서해 주는 뒤끝 없는 냥이 자매들이다.

오늘도 일치감치 일어나 애들 밥자리 챙기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애들은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남은 아침잠을 잔다. 이런 어제 같은 오늘이 평온하고 안전함을 증명하는 아침이다.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마감을 꼭 월요일 새벽에 한다.)

덧붙이는 말 : 매일 먹는 것처럼 썼지만 애들이 신경쓰여서 그렇게는 못해요. 늘 집근처에서 먹는 편이라 밥은 꼭꼭 챙겨요!


어제 밤에도 내 곁을 지키는 아이들, 자리는 엎치락 뒤치락 바뀜

 





#catsisters #고양이 자매 #cat #아띠와루카 #아직은어려요 #열살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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