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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Jun 10. 2024

들어봤니?
울 고양이 살 안 쪘어요 병

친애하는 나의 고양이 자매에게 _ 살 찜과 털 찜 사이

고양이와 같이 살지 않는 손님이 집에 찾아와 우리 고양이 자매를 만나면 90% 이상 이런 말을 한다.

“와, 애들이 되게 크네요.”

“애들이 음.. 되게 뚱뚱하네요.”

황급히 나는 말을 덧붙인다.

“아녜요, 우리 애들 살찐 거 아녜요. 털이 찐 거고, 저 뱃살은 호랑이도 있는 원시주머니라는 내장기관을 보호하는 지방입니다."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열심히 부연 설명을 하지만 손님은 아, 그런가 아닌 거 같은데라고 흘려들었다. 몇 년 동안 설명이 필요 없는 설명을 하다가 얼마 전 현타가 와서 한참 깔깔 웃었다. 오랜만에 놀러 온 지인은 눈이 휘둥그레.

“미안 미안. 와!! 나도 걸렸나, 집사들의 불치병이 있어. 이거 전염병 같은 것인데.. 들어봤니? 울 고양이는 살 안 쪘어요 병. 으하하하.”


원시 주머니와 살 찜과 털 찜 사이

원시주머니(primordial pouch)란. 고양잇과 동물에게서 흔히 있는 뒷다리 가까운 늘어진 뱃살을 말한다. 특히 호랑이들이 뛸 때 출렁거리는 원시주머니는 내장기관을 보호하면서 부드럽게 점프하며 움직이는데 도움을 준다. 고양이들도 같은 과여서 대부분의 성묘가 되면 생긴다.

원시주머니는 뚱냥이 집사들의 변명거리로 딱 좋긴 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고양이 보호자 본인은 속일 수가 없다. 위에 고양이 척추를 봤을 때 배가 쏙 들어가는 체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입이 짧은 애들이 많아서 뭐라도 잘 먹으면 엄청 먹이고 싶고, 조금만 과하게 줘도 살이 찐다. 살찌면 누워버리고, 잠은 더 자고 그러면 운동을 안 하고, 운동을 안 하면 더 비만이 되고, 질환이 따라오고, 관절이 약해지고, 고, 고, 고...... 사람과 비슷하다. 얘들도 넓은 범주에서 포유류이니까.

고양이들 집사는 남의 살인 고양이 살과의 전쟁을 작게 크게 한다. 애들이 살찌는 것은 일종의 관리와 돌봄이 잘 못한다는 증거 같아 자기도 모르게 변명을 하게 된다. 손사래를 치며 애들 살찐 거 아니구 털 찐 거라구 잘 봐 저건 원시주머니야,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주 궁색하다.

그렇게 아니라고 해놓고선, 사람들이 집에 가고 나면 애들 붙잡아서 갈비뼈가 만져지나 아닌가 혼자 테스트한다. 손으로 갈비뼈가 만져져야 비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척도이다. 애타는 맘으로 만져질 거야 반드시 만져져야 해 라며 갈비뼈를 찾다가 애들과 한판 성질 싸움을 한다. 

구조된 후 임시보호 중. 다리가 쭈욱 길다고 느끼는데 아닌가(좌 아띠, 우 루카)

우리 아띠와 루카는 다른 고양이보다 확실한 다리가 길고 몸집이 큰 편이긴 하다. 여묘들이 보통 남묘보다 작은데 몸과 다리 길이로는 밀리지 않는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의 입양 홍보글에도 다리가 길어서 미묘가 될 상이라고 홍보를 했는데, 그때는 그 말이 얼굴이 예쁘다 정도로 들었지 몸과 관련이 되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길쭉해지는 다리와 몸을 보면서 아름다움이란 역시 비율인가. 

여튼 입양하고 처음 검진을 받으러 동물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애들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길이 남을 예언을 하였다.

"어이구, 두녀석다 다리가 길쭉하니 몸집이 크겠습니다. 보통 여아이들은 4kg 대인데 얘들 5kg 넘게 크겠어요. 아띠(고등어무늬)는 전형적인 한국 고양이가 되겠네요. 살도 잘 찌고 성격도 그만그만 괜찮고 똑똑할 겁니다. 요 녀석(루카)은 허허..(한참 더 주물주물) 대사가 좋아서 살이 덜 찌고 근육이 아띠보다 많이 발달할 겁니다. 두 아이 다 길에서 왔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든 면역 관련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요. 유전적으로 거라 어쩔 수가 없어요."

뭔 말인지 모르면서 마지막 말은 잘 안 들리고 다리가 길고 근육이 많고만 들려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꾸벅했다. 돌아보면 의사 선생님의 임상 경험에서 나온 팩트였다. 애들이 크면서 선생님의 예언을 아이들이 몸으로 실현하였다.


한없이 다 주고 싶다와 단호한 보호자 사이

우리 아이들은 다른 여자 고양이들보다 크고 다리가 길고 루카는 언뜻 보면 남고양이로 보기도 한다. 근육이 잘 발달했고 놀이할 때도 점프와 달리기가 주특기였다. 열 살이 된 오늘도 새벽부터 애기 고양이처럼 우다다를 하는 못 말리는 빙구냥이다. 새벽에 눈을 반쯤 뜨고, 아이구야 루카야 너는 너의 나이를 모르냐 하아. 한숨 쉬며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루카를 아띠와 같이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눈치챘으리라. 내가 애들이 살쪘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 '우리 아이들은 살찌지 않았어요' 병에 걸려있기 때문에. 동물병원 선생님과 애들 구조한 고보협까지 끌고 와서 원래 우리 애들은 그냥 좀 큰 고양이라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주 길게, 나름 근거를 대면서..


오늘도 애들 뒤치다꺼리하면서 눈으로 애들 배를 봤다. 그래, 저건 원시주머니지 봐, 약간 배가 들어갔잖아 혼자 안심했다. 그러다 검진하러 병원에 가서 "애들이 6.2kg인데요. 한 200~300g 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6kg를 넘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좋아요." 소리를 들으면 시무룩해서 집에 와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애들이랑 같이 뛰어다닌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3개월 되었을 때 TNR(임신중단 수술로 여묘의 경우 자궁을 들어내는 큰 수술임)을 하였고, 그 이후 1살 될 무렵까지 살이 급격하게 불었다. 갱년기 엄마처럼 호르몬 문제가 생기니까 살이 찔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몸무게와 칼로리 계산해서 하루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만 밥을 준다. 일 때문에 자고 오는 날 아니면 시간이 조금 밀리거나 당겨져도 밥은 딱 두 번, 간식은 2~3일에 한번 주는 룰을 어기지 않았다.

후덕해진 우리 고양이들, 한살 직전 뼈저린 관리 실패

덕분에 심각한 비만이 되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 말한 몸무게를 지키려면 내가 엄격하고 단호한 보호자여야 하니 늘 마음의 갈등이 인다. 15~20년 사는 인생에 지들 먹고 싶은 거 맘껏 먹다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는 몸에 그닥 도움이 안 되는 츄르를 맘껏 주고 싶고, 밥도 매일매일 아무 때나 주고 싶다. 한편 사는 동안 덜 아파야지 그게 내가 할 책임이자 의무이지 싶으면 손에 든 츄르를 다시 수납장에 집어넣는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음은 내가 잘 챙기고 아직은 관리와 돌봄을 잘하는 쪽으로 작심한다. 


성묘와 노묘 사이

글을 쓰고 있는 9일 아이들이 10살이 되었다. 3년 전에 애기 고양이 시절 선생님이 예언한 면역계통 문제가 나타날 거라는 예언이 사실이 되었다. 식이 알레르기로 일반 사료를 먹기 힘들어서 두녀석다 질환용 사료를 먹고 있다. 내가 그동안 공부한 것들, 원칙은 노묘로 향하는 아이들에게 점점 쓸모가 없어지고 있다. 자라는 동안은 식이 관리, 운동, 각종 염증, 놀이 방법 등 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같이 했고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도 나를 이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학습했을 것이다. 이 인간과 잘 살아야 하는 생존이 달린 문제니까.

한해 넘길 때마다 돌봄의 방향이 좀 달라지고 있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아이들 건강에 영향을 끼칠 불편한 점을 빨리 발견해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살이 더 찌지 않도록 부지런히 운동(놀이를 통해)을 시키고, 먹는데 불편이 없도록 이빨을 최대한 열심히 닦는 것,  정서를 안정하게 하는 등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목표이다. 

아무거나 잘 먹는 애들이 3년 전부터 입이 짧아져서 먹던 것만 먹으려고 한다. 덕분에 살이 급격히 찔 것 같지는 않지만 신장 질환, 당뇨, 췌장염, 간질환, 심장질환, 뼈근육 등 노묘에서 드러나는 질환 공부를 본격 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개나 나이 든다는 것은 몸의 변화를 받아들일 작정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 나이로 54~5살이 되는 고양이나 그녀들을 돌보는 나도 마찬가지 같은 처지라. 가끔 부비부비하면서 우리 병원에서 죽지 말자라고 애들한테 말인지 나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얘기를 한다.

입 짧은 고양이 자매로 거듭난 루카(좌)와 아띠(우)


이렇게 성숙한 보호자로서 노묘 준비를 하는 듯 하지만...

나는 "우리 고양이 살 안 쪘어요."병에 걸렸다.

친구들이 와서 우리 애들에게 귀여운 뚱냥이네 이러면 어느새 또 팔랑귀가 되어서 애들 갈비뼈를 찾고 있다.


(2024. 6. 9 아띠와 루카 열살 생일날, 무탈함에 고마운 마음으로)






#우리이제강산이한번변했나봐 #많은일이있었는데 #사랑하는마음만 #고양이자매 #catsiters #또한해살아가자 #아띠와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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