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삐삐 May 27. 2024

온탕 냉탕 마음,
고양이자매의 언니가 된 날

친애하는 나의 고양이 자매에게 _ 책임이 사랑으로 바뀌는 마법

애들이 와버렸다

나의 고양이 자매가 애기 시절을 보낸 곳은 망원시장 근처이다. 내가 일하는 문화예술 공간인 '공간릴라'가 애들의 첫 집이다. 아이들을 구조하고 임보 중인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에서 사전 방문하여서 보완할 것과 물품 리스트 등을 알려주었다. 공용 공간에 고양이를 입양 보내는 걱정스러움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고보협 활동가 분들의 마음을 정말 이해했다. 당연히 하지 않나, 무책임한 사람들이 고양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황당무계한 사건들이 일어났으니까. 걱정스러운 눈빛의 그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저.. 혹시 이 공간과 제가 고양이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저도 아직 제가 어떤 보호자가 될지 자신이 없는데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담담하게 말하자 그분들은 그제야 웃으면서 가정집이 아니어서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호자님의 마음을 믿는다며, 만약 이 공간에서 아이들을 더 돌볼 수가 없다면 반드시 고보협으로 다시 보낸다고 약속해 달라 했다. 계속 책임지지 못했다는 불편한 마음에 입양자가 시골집에 보내거나 친구에게 재입양해서  시골 어른들이 잡아먹거나, 고양이들이 탈출해서 행방불명이 된 사례들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서로 믿음과 불안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서 우리 고양이 자매들이 내 품에 왔다. 

한 달 후 아이들이 공간릴라로 오던 날,  그날의 느낌은 이 말이 정답일 것 같다.

"아, 애들이 와버렸네."

기다리는 동안 임보 사진을 보며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예상치 못한 복잡한 마음, 밀려드는 죄책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

사전 인터뷰를 마치고 입양 서류에 사인도 했다. 기다리는 한 달, 하루하루가 설레고 애들 사진 보고 밤새워서 고양이 돌봄을 위한 공부를 했다. 책을 사고 도서관에서 빌리고 고양이 카페에 가입해서 애기 고양이 돌보고 필요한 용품 정보를 얻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들을 위해 방묘창과 방묘문을 달았다. 첫 물품 구입의 어설픔에 관한 얘기는 다른 편에서 한심하고 얼굴 붉어지는 경험을 써보겠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도 무지했는지, 초보 집사란... 처음이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아이들이 도착했고 고보협의 활동가와 임보한 회원이 물품 중 잘못된 점을 지적했고 대신할 몇 가지 추천 물품을 안내하였다. 그리고 애들이 쓰던 물건과 입양 선물을 잔뜩 안겨주었고 2~3개월 뒤 TNR(고양이 불임수술)을 진행하고 영수증을 보내면 비용을 보내주겠다는 고마운 약속을 남겨주고 떠났다. 알고 보면 우리 아이들의 고향은 고보협이고 내가 잘못되면 아이들은 그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과 나의 엄청난 지지기반이다. 


아이들이 공간에 익숙해지도록 격리와 영역을 넓혀주는 21일(삼칠일) 중 보름 정도는 공간에서 잠을 잤다. 3개월령의 조그만 고양이들이 예뻤다. 너무 예뻤고 귀여웠고 손대면 터질 것 같아서 조심조심 안고 만졌다. 한편 마음의 한구석이 이상했다. 보자마자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마음이 터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런 내가 이상했고 나쁜 사람 같았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들과 나만 남은 공간에서 대굴대굴 장난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는데 왠지 며칠은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기까지 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작정하고 데려온 아이들인데 마음이 무겁고 기분이 이상하고 가끔 우울하다고 말하기에는 죄책감이 심하게 따라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미웠다. 어떻게 저렇게 귀여운 아이들을 데려와놓고 바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니, 한 달 넘게 아이들을 벌써 사랑한다고 떠벌려놓고 실제로 보니 아닌 거냐, 너는 사람이 그럴 수 있니. 혼자 별별 생각을 다했다.

책임을 각성하는 순간, 와장창 죄책감은 깨지고

그날도 여전히 복잡한 마음이었고 아기들은 어느새 공간에 익숙해져서 아장아장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변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걱정거리가 없는 며칠이었다. 내 안에서 내 자신이 문제였다. 동네의 고양이 가족들이자 친구들이 와서 아이들과 인사도 하고 정보도 주고 다과를 했다. 유심히 애들을 보던 친구가 "루카 눈이 좀 이상한데요. 아픈 것 같은데." 깜짝 놀랐다. 아침까지도 별일 없던 루카의 눈이 부풀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내가 뭘 해야 할지 애가 왜 아픈지, 내가 애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서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나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오래 만난 친구들이 당황할 정도로 순식간에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 동안 마음의 복잡함까지 얹어져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울지 말고 애기 데리고 건강 검진받은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이런 경우 종종 있으니 큰일 아닐 것이지만 병원에서 하는 얘기 듣고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며, 차분히 내가 할 일을 알려줬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가 오래 병을 앓아서 간병 경험이 꽤 있다. 병과 병원 절차, 진료, 입원, 수술, 중환자실 등 꽤나 익숙한 사람이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는데, 제대로 돌보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과 고양이 질병을 전혀 인지 못한 무지함에 패닉이 온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혹시나 둘 다 전염병일까 봐 이동장에 넣어서 안고 달렸다. 미친 듯이 달리는 동안 죄책감 같은 쓸데없는 감정이 달리는 다리 뒤로 떨어져 나갔다. 이 아이들이 아프고 힘들 때도 나는 곁에 있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나 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겨우 눈 한쪽 부은 걸로도 마음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 같은 이 무게감, 생명을 깃들인 책임감이 온전히 마음에 내려왔다. 죄책감으로 덮어놓은 책임을 완전히 받아들인 날이었다.

사흘 즈음 지난 날의 쪼고미들. 공간에 아이들이 익숙해질 수록 내 마음은 냉탕과 온탕에서 허우적거림

책임의 무게가 사랑으로 바뀌는 마법

병원에서는 별일 아니고 발톱을 깎아주며 아직 근육과 힘을 통제 못해서 둘이 장난치다가 긁힌 것 같다며 사나흘 안연고 넣어주면 다 나을 것이다는 아주 짧은 진료와 간단한 약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공간으로 돌아와 애기들을 바라보자 어느새 내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책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전에는 2kg 채 안 되는 이 꼬맹이들이 더할 수 없는 무게로 내 맘에 얹혀서 잠도 못 잤는데, 너희들이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언니가 곁에 있을게라고 맹세를 하자 마법이 풀린 것처럼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내가 이런 얘기를 시간 흘러 아이가 있는 동네 친구에게 했더니 그거 산후 우울증이랑 비슷하다했다. 그녀도 출산을 하고 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 아기가 사랑스러운데 마음이 우울했다고 한다. 그러다 젖을 물리고 대소변을 치우고 아플 때 옆에 있으면서 저절로 극복이 되더란다. 아, 우리 언니들의 출산 후 아이들을 보면서 가끔 내려앉는 표정이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었구나, 얼마나 마음이 복잡했을까. 고양이에게도 이런 죄책감이 먼저 들어오는데, 내 몸으로 낳은 아이라면 죄책감과 복작한 마음이 어떤 무게일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럼에도 생명을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랑으로 바뀌는 마법은 비슷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돌봄이 어렵고 복잡하고 무한 루틴의 끝이 없는 책임이라는 무게감이 있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어떤 영역의 돌봄이어도 결국은 개인에게 맡겨지는 국가의 경우는 더 하다. 

나는 내 몸으로 아이를 낳거나 사람의 아이를 입양하지는 못했지만(혼자 살아서 법적으로 할 수가 없기도 하고) 앞으로 15~20년을 살고 내 손으로 떠나보낼 고양이 자매를 내 삶에 받아들였고 아이들을 중심으로 살 것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물론 하루를 허투루 살지는 않지만 혼자 사는 삶이라 어떤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내가 없어진데도 딱히 아쉬울 것 없었다. 그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명확하게 생겼다. 중심에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놓였고 열심히 사는 첫 번째 이유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부모가 될 능력은 없고 너희들의 엄마가 있으니 나는 언니로 살리라 마음먹었다. 엄마는 나도 모르게 윗사람이 되려고 할까 봐 그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자매가 되기로.


고양이 자매의 언니가 된 순간이었고 생애의 가장 큰 전환이 이루어진 날의 기억이다. 

열살 고양이들, 셋이서 어떻게든 살아간다

(2024. 5. 27 또 하루를 맞이한 우리 셋)


#고양이입양 #책임감 #고양이자매 #고양이 #고양이일상 #집사의삶 #cat #catsitsers #아띠와루카

이전 01화 (팔)불출산 정복자의 사진폴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