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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May 20. 2024

(팔)불출산 정복자의 사진폴더

나의 친애하는 고양이자매에게_ 폴더 정리 불가 사태

2014년 6월 9일, 3개월령 꼬마 고양이 자매를 맞이했다.

우리들 뒤에 십 년의 시간이 쌓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4번째 보금자리이고 아마도 올해 다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이사하지 않는 남은 묘생을 주고 싶어서 애를 썼는데 잘 안되었다. 할 수 없지, 서울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겐 판타지 같은 것일지도. 그럼에도 우리 꼬맹이들은 어디에 있어도 내가 곁에 있으면 충분히 좋을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사랑하니까. (라고 자기 위안이라도 해야….)


십 년의 시간이 쌓인 자리들

십 년의 시간이 쌓였다고 써놓고 어디에라고 묻는다.

일단은 더없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사랑으로 서로에게라고 부농부농하게..

그녀와 나 셋이 다 나이가 든 육체에,

우리 아기들을 돌보는 동물사랑 동물병원과 우리동생 동물병원의 차트 안에,

그리고 사진 폴더 안에.


터질 것 같은 사진 폴더를 끌어안고서

사진 폴더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규모인지 동물 가족들은 알 것이다. 목으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중이다. 10년 기념으로 고양이 자매와 나의 일상을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 남짓이다. 연재 시작하기 전에 내가 과연 일주일에 한 번이란 약속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가 테스트를 위해 몇 개의 글을 써보았다. 4회 차까지 이어지니 아, 이거 내가 하고 싶구나! 겨우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지난 10년간 내내 미룬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사진 폴더를 정리하는 대업. 연도와 월별 사진을 모아놓고 똑같은 사진은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2014년 처음 만난 한 해 동안의 사진 폴더를 정리했는데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는 일이니 부지런히 개미지옥 같은 사진 폴더들 사이를 오가며 아이들 사진을 가지고 왔다.

문제는 모으는 것이 아니었다. 지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고양이와 살기 직전 꽤 유명한 고양이와의 일상을 그리는 만화가가 그림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핸드폰 속 사진들이 다 고양이들인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다 달라서 한 장도 지울 수가 없다고. 그럴 수 있겠지. 소중하여서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런 상태에 빠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014년 처음 내 품에 온 아이들은 3개월령이라 대부분 놀다 쓰러져 자는 상태였고 천사같이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다. 거의 다 자란 9~10개월 무렵부터 지금까지 사실 크게 얼굴이 달라지진 않았기에 자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 고양이 나이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찍힌 장소가 있고 내가 아는 그 무렵의 아이들 얼굴이 있어서 나만 겨우 알 수 있다. (배경이 없으면 나도 알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음)


 이런 연속 촬영 같은 사진이 몇장인지 셀 수 없다

흔들린 사진 한 장이 줄 미래의 위로를 미리 받고

흔들린 사진 한 장도 버리진 못했다. 2014년 7개월간의 사진을 모으는 것만 했지 정리하는 것은 실패이다. 아마 나머지 9년의 사진도 모으는 정도가 최선일 것 같다. 루카(턱시도)가 흔들린 사진은 그야말로 검정 더미가 지배하는 알 수 없는 현대미술 같다. 아띠(고등어)는 뭔가 얼룩진 무늬의 벽면 같고. 그런데도 나는 그 사진을 버릴 수가 없다. 집사들은 이 마음을 알 것이다. 왜 나와 당신들이 아이들 사진을 한 장도 버릴 수가 없는지.

아이들이 우리를 먼저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십 년을 맞이한 나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가끔 느낀다. 사람과의 관계와 제일 다른 점이다. 아이들의 시간을 내가 잘 담아주고 건강하게 덜 아프게 노년을 맞이하게 준비해야 한다. 미리 슬픔에 잠기지 않기! 그 시간에 더 많이 사랑하기라는 마음을 주문처럼 외운다.

비슷하게 흔들리거나 뭔 사진인지 모를 사진마저도 폴더에 담으면서 나중에나중에 이 사진을 찍는 순간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위로받을 것이기에, 잘못 찍은 사진 한 장조차 소중할 것임이 분명하다. 잘 담아뒀다가 아이들이 옆에 없는 시간을 집요하게 사진으로 위로받을 작정이다. 옆에서 쿨쿨 세상모르고 자는 녀석들에게 또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민다.

"알겠냐, 요 녀석들아, 지금 너의 시간을 붙잡아 두는 것은 먼 미래의 나를 위한 거라고. 그러니 예쁘게 찍혀주라. 어이구!"


찰나 속 아띠와 루카


(팔)불출산에 오른 집사의 네버엔딩 스토리

일주일에 하루 아이들과의 시간 기록하는 글쓰기의 약속을 한해의 반이나 보내고 나서야 시작한 나에게 셀프 궁디팡팡을 보낸다. 연재 빵구 내지 말고 무엇이든 다 괜찮으니,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에 매주 딥하게 빠지는 시간을 허락하자.

사랑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내게 속삭인 오래전 어떤 이의 입김 같은 바람을 덧붙인다. 깊은 사랑을 받는 것만큼 온전히 경계 없이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두 고양이와 지방 출신 혼자 사는 여자의 일상, 좌충우돌의 기억을 죄다 늘어놓고 결국은 우리 고양이 자랑질을 할 것이다.

세상에서 내 고양이가 제일 예쁜 시시콜콜한 기억들 말이다. 어디 가서 말하면 공감받기 어려운 팔불출 같은 얘기를 하면서 즐거울 예정이라 쓰면서 자동 입꼬리가 올라간다.


  (2024. 5. 18 폴더지옥에 갇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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