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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삐삐 Nov 09. 2019

늙음으로 향하는 위트 있는 한걸음

어슐러 K. 르 귄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존재의 부정은 아무짝에도, 누구에게도 어떤 소용에도 쓸모가 없다. ”
 _ 어슐러 K. 르 귄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중에서..


책 표지를 보는 순간 구글 검색으로 원작 표지를 찾아보았다. 하하하, 역시 다르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슐러 K. 르 귄 선생이 살아서 한국판 책을 봤다면 매우 흡족해하셨을 것이다. 집사의 예감이랄까. 4개의 의미심장한 챕터 끝머리의 작가의 고양이 파드의 이야기가 시리즈로 붙어 있다. 일관된 캐릭터 하나가 각 장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에게 파드와의 만남과 생을 함께 한 과정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것이고, 애정이 깊다는 것이니. 한국판 표지, 큼지막한 파드의 초상을 전면에 담은 것은 단순히 출판사의 판매 전략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이가 최고의 판타지 문학이라며 '어스시 전집'을 미친 듯이 추천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솔깃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청년기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어스시 연대기의 철학들이 쪼개져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에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면서 읽었다. 실제로 그런 일화가 있었는지는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어스시 전집을 다 읽고 나서 탄식처럼 '아… 한 인간의 성장기를 돌아 돌아 마지막 닿는 자리가 여성성이구나.' 눈물을 뚝뚝 흘렸다.
 린드그렌할머니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이후 만난 내 인생 최고의 판타지 소설이었으며, 책 추천하라면 1순위로 꼽게 되었다. 2년에 한 번씩 정좌하고 정신을 정화하듯 읽는 나의 책. 어스시 전집을 쓴 어슐러 K. 르 귄 작가가 작년에 세상과 이별한 소식을 접한 날 친구의 장례처럼 혼자 기도하고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다 된 즈음인 요즘 그녀를 기억하는 에세이나 대담집 같은 남겨진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올 법 한데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요즘 부쩍 나이 든 작가들의 마지막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청년기에 느껴보지 못한 낯선 관심이다. 젊음을 발휘하고 싶은 일에 온몸을 던지는 뜨거움보다 나이를 잘 먹고, 천천히 내리막을 걸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인지도. 결국은 지금 나의 관심사의 이동에 따른 것이겠다. 몸이 나이를 먹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정신의 늙음을 조심하고 성찰하며 살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도.
 이 책은 나의 요즘의 고민을 가볍게 긍정해주었다. 역시나…. 기대했던 곳을 벅벅 긁어주었다. 나이 듦을 관찰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이상하지 않고 원래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인데 그것을 거부해서 뭣하나, 남겨둘 시간 같은 것은 없다고 라고 위트 있는 그러나 뼈 있는 말을 던진다.


 몇 년 전 이상하게 안경이 초점이 안 맞고 어지러워 난시가 심해졌나 안경점에 갔는데, 직원이 말을 에둘러서 핵심을 말하지 못하기에 "혹시 내가 노안인가요?"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덤덤한 내 말에 당황하면서 반가워하면서 요즘은 젊은이도 그래요 라고 덧붙였다. 굳이 젊은이 축에 껴주는 것은 그의 말은 위로도 뭣도 되지 못했다. 시 근육이 노화되어서 탄력이 잃은 탓에 초점을 맞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노안이고 나는 그저 나이를 먹어가는 첫 신호를 받은 것뿐이었다.  노화의 첫 증거를 받은 그날 기분은 묘했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생물학적 변화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뭔 미련이 남아 2년여를 두통과 싸우고 나서야 다초점 안경을 마련했다. 그 뒤로 깔끔하게 노안이 아니고픈 미련과 작별하고 과학은 이렇게 쓰여야 한다며 지인들에게 미련 떨지 말고 두려워 말고 다초점 안경을 하라고 부추기고 다닌다.

"나이를 먹으면 먹는 대로 두었으면 한다. 나이 든 친척이나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를. 존재의 부정은 아무짝에도, 누구에게도, 어떤 소용에도 쓸모가 없다. ”


노년에 대한 직설과 사유가 1장에, 문학의 안팎을 바라보는 작가로서의 고민과 경험이 2장, 차이를 인식하는 것과 작가의 세상에 대한 시선이 3장, 그리고 삶의 마지막 즈음에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전하는(내가 보기에) 보상이 4장에 담겨 있다. 각각의 내용은 또 다른 독자들이 보셔야 할 터이니 개별로 다 말하지 않겠다.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짧고도 유머가 가득한 한 문장이 꼭 담겨 있다. 읽다가 혼자 푸하하하 웃음이 터져서 옆에서 자던 나의 고양이들이 깜짝 놀라 도망치거나 짧게 불만 섞인 야옹 소리를 내었다.
 가장 크게 웃었던 에피소드는 그녀의 책을 읽고 아이들이 편지를 작가에게 보내는데 그것을 읽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사랑스럽게 표현하던 중에 선생님이 무작위로 아이들에게 이 책의 저자에게 편지를 쓰라고 한 것이 분명한 편지가 섞여 있다는 내용에서였다. 아, 미국에도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숙제를 내는구나 큭큭 웃었고, 억지로 편지를 쓴 10살짜리 소년의 편지를 받은 그녀의 반응을 담은 문장이었다.

"억지로 작가에게 편지를 써야 했던 어느 10살짜리 아이의 절실한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는 표지를 읽었어요. 매우 좋았어요.'그 소년에게 내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선생님이 그 아이와 나를 이 상황으로 몰아넣어 결국 우리 둘만 덩그러니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이건 아니다. ”

이 이야기의 교훈은 그녀도 나도 아는 것인데,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유머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라은.  오십이 되어도, 육십이 되어도, 팔십이 되어도 삶을 깊이 바라보면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도록 뼈 있지만 즐거운 시선을 잃지 말아야지 라며 괜히 거울을 보며 웃기는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 파드에 대한 연대기는 작가이기보다 한 인간과 한 고양이의 관계 맺음과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라 읽고 느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에 그것이 매력적이라고 느낀다면 혹은 과정의 어려움과 책임의 무거움 마저 감당하며 살아보겠노라고 한다면, 내 옆에 쉽게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한 뒤 한바탕 마음의 혼동을 겪을 때  다시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그림을 보듯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고단한 생활에 지쳐갈 무렵, 기적처럼 만난 어스시 전집을 선물한 작가의 마지막 글들을 읽는다는 것. 한 줄의 문장마다 노년의 걸음을 생각하며 천천히 혹은 우하하하 웃으며, 할머니 고민의 따라, 고양이를 쓰담 쓰담하며 겨울의 시간을 보냈다. 감사한 순간이다.
 좋은 문장을 만난다는 것, 가슴에 그림으로 그려지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 그녀의 고양이를 봤다는 것!


글 쓴 이 : 삐삐롱스타킹 _ 슬리퍼를 신고 찾아가는 골목길 귀퉁이의 놀이터, ‘공간릴라’의 운영지기이자 삶이 있는 문화와 예술의 장을 만드는 사람.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 자매 아띠와 루카의 언니가 되어 비언어의 세계를 헤엄치고 다님.


추천하고 싶은 책 : 시집 끝과 시작_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Herbarium_-허브,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식물’_카즈 힐드브란드 / 우주 식당에서 만나_신현아 / 이파브르의 탐구생활_이파람



르 귄의 고양이와 우리 루카가 닮아서 찍다보니..
아띠가 서운해할까봐 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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