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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샤먼 인내의 삶,
흙의 잔뼈 같은 얼굴

마더피스 타로로 읽는 지금 _신과 사람 사이의 샤먼과 여사제 2.

by 마담 삐삐

신과 사람 사이의 샤먼과 여사제 1.

신의 소리를 듣는 자, 신과 사람을 잇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더피스 타로의 세계관에서 샤먼, 인간과 대자연(신의 영역)을 잇는 존재는 논리와 이성의 세계 바깥의, 알지 못하는 영역과 만나는 존재들이다. 마치 신내림 받아 칼날 위에서 뛰는 낯선 존재만이 아니라 신의 세계를 잇는 모든 존재에 해당한다.


한국 문화 속의 종교, 샤먼의 대리자들

긍부정을 뛰어넘어 신과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존재로서 현존 최강자는 교황이다. 전 세계 글로벌 조직이고 교구 선택도 이주와 함께 교단에서 결정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스템이다. 한국에서는 전체 신도수의 11%로 미약하지만 천주교는 국내 종교인의 비율로 계산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국제 조직이다.

한국 교인이 제일 많은 종교는 기독교이다. 교단끼리 살짝 경쟁관계가 있어 전체가 단일 조직이 되기는 어렵다. 천주교가 글로벌 기업이라면 개신교는 자영업자에 가깝다.

한국의 국가 신상이자 민간 신앙과 연결된 종교, 일상의 삶과 죽음 문화에 뿌리를 내린 종교가 불교이다. 모든 인간이 자기 벌에 의해 처벌받는 49일 개념은 불교에서 유래되어 민간 장례절차에 정착한 관습이다. 한국인의 정서, 집단 무의식과 관련한 대부분의 기억과 문화는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간 설화의 이야기 구조를 보면 한 사람이 곤경에 처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장애물을 헤쳐나가 성장한다. 도와주는 사람은 대부분 스님이거나 인간의 형상을 한 지장보살, 관음보살, 미륵보살 등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372년 고구려에 처음 불상과 불경이 도착한 이래 부침과 핍박이 있어도 약 1700년 사람들의 삶에 파고든 종교이다.

종종 사람들이 스님이 봐주는 사주팔자 이야기를 기억한다. 스님들이 명리학도 공부를 했다는 말인데 이 역시 한국적이다. 한 사람의 생애는 하늘과 땅 사이에 유일한 하나이며 스스로 공부와 수행을 통해 깨달아 부처도 될 수 있다는 이 종교에 명리학이라, 정말 재미있는 현상이다. 부처라는 큰 존재의 제자인 스님이 전하는 팔자에 관한 얘기는 무당이나 명리학 전문가가 하는 말보다 더 크게 받아들였다.

이것이 종교 권력자들의 권위이고 권력이다.


샤먼.png 마더피스 타로의 샤먼들


생활 속에 존재한 내 옆집의 샤먼의 이야기

오늘의 주인공, 천대받았지만 신을 직접 몸에 모신 그들. 무섭기에 멀리 두었다가 급하면 불러 사용한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 샤먼이자 아티스트인 그녀들에 관한 얘기다.

1편에 말한 나의 친구 엄마이자 늘 반겨준 사람 좋은 동네 아주머니는 오일장의 장터국시집주인아줌마였다. 내가 사는 동네는 면사무소가 있고 관내의 큰 시장이 열리는 장터가 있었다. 주로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가 장터국시 집에서 국시를 먹고 삐땍이 할매가 구워준 풀빵에 헤헤 웃었다.

여덟 살 입학하여 알게 된 아이는 약국집 세 자매를 반겨주는 국시 아줌마의 딸이었다. 머리가 커질수록 우리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친구의 엄마가 동네의 무당이었고 밤에 가끔 들리는 바라 소리, 경을 읊는 소리의 주인공임을 알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워낙 시골사람이어서인지 아, 니가 무당 아줌마 딸이구나 정도로 어색함이 없었다.


2022060201000086200002602.jpg 평소의 주상절리 바위와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하는 고향 바다

잦은 태풍을 맞으며 살아가는 동해안에는 현대사회에서도 자연이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대자연에 드리는 경외감이 살아있다. 태풍을 인간의 힘으로 막아낼 도리가 없기에 대자연은 거대하며 위협적 존재이다. 태풍이 시작될 때의 바람의 냄새, 공기, 햇살이 묘하게 바뀌면 어른들은 논밭과 바다의 배들, 집안의 살림을 단속하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바람이 바뀌면 부모님께 달려가 태풍이 오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의 변화에 민감했다. 지금도 습관이 남아서 바람 냄새를 맡고 그 안의 습도를 느끼며 비가 올 것인지를 가늠한다. 큰 파도가 수평선에 산처럼 일어서 달려오면 무섭다. 그 앞에서 인간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확인한다. 인식이나 철학 이런 좋은 얘기들이 아니라 생존이다. 피할 때를 놓치면 죽기 때문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자연을 정복보다 순응해야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

태풍이 몰아치는 논밭을 지켜보는 농부의 모습을 기억한다. 몸을 세워서 걷기 힘든 바람 속에 봄여름 내내 열심히 가꾼 논밭의 생물이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본다. 이 바람이 빨리 그치기를 기다리며 삽을 논두렁에 박아놓고 비바람 속에서 뒷짐을 지고 서있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등.

어린 맘에도 그분들 등의 인내를 읽었다. 체념이 아니라 이 바람은 끝나고 지나갈 것을 알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긴 세월이 지나고 기다림이 없는 도시 서울에 살면서 마음이 앞서 조급해질 때 그분들의 등과 논두렁에 꽂아 놓은 삽자루를 떠올린다.


스크린샷 2025-03-10 오후 4.07.36.png 뉴스 속 고향마을 태풍 풍경. 사진 찍으러 다가갈 수 있으니 다행인 경우임.


동네 샤먼인 그녀의 인내의 삶들, 흙의 잔뼈 같은 얼굴들

바다와 인접해 터전을 이뤄 사는 동네 사람들의 삶, 그 불안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람이 Y의 엄마였을 것이다. 특히 감기를 비롯한 질병이 잦아지는 겨울밤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멀리, 가까이 Y의 엄마의 목소리 애기굿들이 있었다. 그러면 누워서 요즘 어르신들이 자주 아픈가 보다 추측했고 어머니 밤새 이렇게 일하고 내일은 울산으로 노동일 하러 가야 할 텐데 걱정을 했다.

무당의 삶이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는 더 어려웠다. Y의 어머니는 60~70년대 동네의 잡일 하는 남자의 두 번째 각시로 살았다. 알코올 중독인 그가 남편 노릇을 할리도 없고 자식은 넷이나 되는데 먹고사는 일이 무당일로는 택도 없고 5일에 한번 서는 장터 국시가게로도 어려웠다. 한창 건설붐이 일어난 80년대 울산의 공사장에서 못을 뽑고 온갖 노동일을 했다. 집에 오면 오일장에 팔 도토리묵을 만들고, 전재산에 가까운 귀한 소 2마리 먹일 꼴을 끓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친구 Y가 직접 들려줬다.

배움이 적은 심지어 무당인 자신의 딸로 태어났지만 똑똑하고 심성 고운 Y가 사람들의 일상처럼 살기를 바란 어머니의 마음을 안다. 오죽하면 딸 친구의 손을 잡고 우리 Y랑 오래오래 친구 하라고 사탕도 쥐어주셨다. 시골지만 대학 나와 약국 하는 아버지, 고등학교 나온 어머니 자식들 공부하고 학교 다니는 것에 부족함이 없는 우리 집에 오가는 딸이 좋았을 것이다. 그 친구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기꺼이 빌려줬고, 나는 Y를 따라 자연의 모든 것을 배웠다. Y가 들풀의 용도를 알려줬고 송아지는 어떻게 쓰다듬어야 하는지 알려줬다. Y네 고단한 삶은 아버지의 술주정, 오빠들의 연이은 사고침을 어머니가 수습했고 염원하던 Y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도 좌절되었다. 고등학교 이후 친구와의 소식은 멀어졌고 나도 내 삶에 충실하게 바삐 살았다.

그래도 고향에 갈 때 장터가 서면 반드시 어머니를 뵈러 갔다. Y의 안부는 어머니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마침내 스스로 대학을 갔고 대도시에 취업해서 좋은 신랑을 만나 애 둘 낳고 잘 산다는 것도 어머니가 알려주셨다. 다 아시면서도 내게 물었다.

"야, 야, 니는 시집을 참말로 안갈끼가?" 씨익 웃으며 "어머니, 나는 이대로도 괜찮은데요."

그러면 아무 말씀도 없이 김치를 더 퍼주셨다. Y네 집은 산중턱에 다른 집들과 뚝 떨어져 있었다. 어릴 때는 왜 Y네만 그렇게 산에 숨어있듯 들어가 있는지 몰랐다. 어른이 되어서 Y네 엄마가 무당이어서 동네로 내려올 수 없었고 어울려 지내기가 어려웠겠구나, 가슴이 아렸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은 매우 한적하고 조용하고 낮은 숲이 이어져 나는 그 길을 걷는 걸 좋아했다. 어머니가 계시면 나의 방문을 너무 좋아하셨다. 그때는 나를 좋아해 주니 좋았는데 어른이 되어 그녀의 마음이 아리게 이해가 되었다. 필요가 없으면 꺼리는 직업 샤먼, 무당의 삶에서 어린 딸 친구의 잦은 방문은 더없이 귀하고 즐거웠을 것이다. 딸의 일상이 동네 사람들로 연결이 되어있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은 고인이 된 그녀의 집 터로 올라가는 길을 떠올려 본다. 몇 년 전 마지막 그 길로 올라갔다 왔는데 길과 동네는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하늘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여사제.png 마더피스의 여사제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부정하지 않기

여성의 몸으로 신을 모시고 필요할 때 잘 쓰고 평소에는 멀리 떨어져 살라는 관습 속 샤먼, 험한 인생 속 만난 자식을 지키려 평생 노동한 그녀의 삶, 그녀의 딸을 얘기할 때 미소를 짓는 어머니. 내 인생의 어른인 그녀가 어린 내 입으로 넣어준 음식만큼 깊은 사랑을 기억하며 산다.

아이에게는 절대 신의 존재를 티 한번 낸 적 없는 성숙한 어른이었다고 돌아보며 기록할 수 있다. 어쩌면 내 삶이 보였을 것인데 한번 말해준 적 없고 오로지 딸의 친구를 만난 동네 어른이 전하는 걱정과 격려의 눈빛만 남아있다.

무당을 함부로 말하고 신을 받아 사는 삶을 천대하고 헛소리쯤으로 여기는 말을 듣는 것이 힘들다. 선하고 속 깊은 친구 Y와 하염없이 나를 귀하게 여겨준 동네 무당인 어머님을 그 말로 지우는 것 같다. 사람이 귀한 것과 직업 무당을 분리해서 보라고 하지만, 어떻게 분리하지? 모든 것을 분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은 종교적, 율법적, 논리적. 폭력적 사고이다. 마더피스 타로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고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숙하라고 말하고 있다.


신을 모신다는 것은 권력과 권위를 부리면 안 되는 작업이다. 겸손하고 돈도 바래서도 안된다고 알고 있다. 벌 받는다 만신이 전한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아는 무당인 Y의 어머니는 인내와 순응, 탓함보다 현재를 돌보고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님은 한국의 무당이었기에 프리스티스와 샤먼이 섞인 존재이다. 늘 현재를 열심히 살다 가신 그분의 영혼에 기도를 보낸다. 고마움을 담아.


쓰다 보니 길어져, 존경하는 김매물 만신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호로 넘겨야겠다. 상담자의 태도 그 모든 것을 가르쳐준 분의 스토리는 다음 호에 이어서..



3월 10일 어머니의 장터국시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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