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피스 타로로 읽는 지금 _신과 사람 사이의 샤먼과 여사제 3.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영상 통화를 하며 집 밖에서 집안의 기계를 작동시키는 시대. 80년대까지 미래 상상도 중의 하나였다. 매일 업그레이드하는 도시에서 태어나 살며 실제 만신을 만난 경우는 흔치 않다. 많이들 신점을 본다고는 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실제 신당에 가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샤먼은 산속에 존재하며 격리된 존재이다.
나는 태풍이 잦은 바닷가 동네 6.25 전쟁을 겪지 않아 옛것 그대로 잘 견딘 시골에서 살아 동네 무당을 친구 엄마, 동네 어른으로 만나고 지역의 큰 굿도 약간씩 봤다.(아이들은 굿판에서 격리하기 때문에 실제 보기 어렵다) 고향에서 지신밟기는 시골에서 제일 큰 행사 중 하나이다. 음력 대보름에 동네를 돌아다니는 풍물 치배와 잡색(재미나게 꾸민 사람들)을 따라 아이들은 종일 돌아다닌다. 풍물소리를 쫓아다니는 일, 그들이 동네를 누비며 복을 비는 행위가 전혀 매년 있는 일이라...
대학에서 구비문학 수업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무속의 마당과 그 속의 문학적 서사를 추적한 자료가 필수였다. 예를 들면 바리데기 신화가 오구굿 중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무당의 어머니가 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천연두를 일컫는 마마, 부엌의 조왕신, 집안 대들보 성주신, 화장실 측신 등 모두 무속과 관련한 신들이다. 문화단체의 실무자로 일할 때 전통문화 영역의 행사는 너무나 익숙한 어린 시절이 담긴 것들이었다. 전통문화와 예술, 불교문화, 무속까지 익숙하고 어색하지 않아 잘 스몄다.
어느 해 김매물 만신이 인사동 느티나무 카페(전 참여연대 건물)에서 새해맞이 굿을 한다니 같이 가보겠느냐 선배언니가 권했다. 김매물 만신은 무형문화재 제82호-나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로 한국의 전통 문화재이다. 황해도에서 월남하여 인천에 신당이 차렸다. (황해도 만신들이 자리 잡은 곳이 대부분 인천이고 북쪽 굿의 원류가 남은 지역이다.) 한국 역사에서 억울한 죽음의 자리에 해원굿, 진오귀굿, 위령제를 집관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춤과 노래 예술 연희의 의미 때문에 기록, 보전, 재연, 연희 등 다양하게 선생님과 작업을 하였다. 인연이 있는 문화예술단체들이 마련한자리였다.
인사동 느티나무 카페에 마련한 굿당 자리에 앉았다. 종일 울리는 굿거리와 쉬는 틈에 마시는 막걸리, 좌우앞뒤의 사람들과 수다로 온종일 떠들썩했다. 선배언니들이 이제 진짜 시작이야라며 밖으로 나를 끌었다. 어느새 차린 작두거리.. 사람 키만 한 드럼통에 작두 계단을 놓아 꼭대기 작두에 김매물 만신이 올라갔다. 서울 종로거리가 맞는가 싶을 만큼 압도하는 무당의 목소리와 춤. 작두를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사람들의 집중도는 더욱 커졌다. 마침내 계단 끝에 도착해 춤을 추는 김매물 만신의 쌀알 공수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손을 뻗어 신이 내린 만신이 던져주는 쌀알을 받았다.
그리고 굿당에서 쌀알을 만신 앞에 펼쳐 한해의 공수를 받았다. 공수란 신의 언어를 전달하는 것으로 작두거리와 연결해서 만신이 짧게 1:1 축언과 조언을 해주었다. 처음으로 만신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날을 한 낱말로 표현하면 한다면 '눈빛'이라고 쓴다. 나의 오장육부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눈동자 앞에서 감히 눈을 피할 곳이 없이 고정되었다. 그녀는 "우리 애기 한번 보자. 좀 더 참고 견디고 좋은 맘으로 한 해를 보내라." 돌아서 나오며 참고 견디라는 말에 얼마나 더 견디나 싶어 울컥하고 흘려보냈다. 무속의 문화는 좋았지만 신을 온전히 믿고 귀히 여길 만큼은 아니었던지라 듣고 흘렸다.
연속 3년을 갔는데 마지막 간 해맞이 굿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고 작두거리 후 공수를 받고 김매물 만신 앞에 섰다. 한참 내 눈을 응시하더니 "우리 애기 배워서 남한테 좋은 일 해야겠네. 누굴 가르치면 좋겠다." 말을 주었다. 갸웃.
교육에는 1도 관심이 없던 때라 역시나 듣고 흘렸다. 2년 뒤에 나는 저소득층 문화예술 교육 사업에 관여하며 기획하고 보조강사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예술치료 공부를 하고 공간을 만들고, 문화와 예술 활동, 교육, 배움 사업을 하였다. 내가 교육 기획을 본격 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김매물 선생님의 말씀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일생 한 번도 교육을 떠올려보면 적 없는 내게서 무엇을 봤길래 배움 얘기를 했을까.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본 것 맞춰서 신기했다기보다 그분은 내가 무엇을 할지 어디로 흘러갈지 알았구나 싶었다. 나의 에너지를 파악하고 축복을 해준 그분의 눈빛과 축언이 뒤늦게 고마웠다.
시간이 흘러 동네의 문화와 예술 공간 문을 열고 한두해 지나자 문득 김매물 만신이 생각났다. 일흔이 다 되셨을 텐데 앞으로 선생님의 굿을 다시 찾아가기도 쉽지 않고, 그냥 그분의 삶이 궁금하기도 해서 내 인생 최초로 신점 상담예약을 했다. 내 삶의 어떤 것들이 궁금하고 불안했다기보다 선생님을 늦기 전에 한번 뵙고 싶었다.
인천의 김매물 선생님 신당은 가정집 한 곳에 소박하니 차려져 있었고 이웃집 할머니 같은 차림으로 선생님이 나와서 맞이하셨다. 신당에 마주 앉아 나를 또 뚫어지게 보더니 첫마디가.
"특별히 궁금한 거 없지?" 하신다. 들켰다.
"네, 선생님. 예전에 종로에서 해맞이 굿하실 때 공수받고 고마웠는데 세월이 흐르고 인사도 못 드릴까 봐 왔습니다." 빙그레 웃더니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애기 인생 한번 보자 하셨다.
생일과 태어난 장소를 듣고 쌀알을 펼쳐 손으로 훑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무당의 경이 시작되었다.
모월모일모시에 태어난 애기씨 몇 살에는 무슨 일이 생기고 몇 살에 죽을 고비를 넘겼네, 몇 살에 인연이 왔는데 어찌하여 모르고 지나쳤을꼬.. 이어지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무당의 노래가 잔잔하게 우아하게 퍼졌다.
점사가 어떻든, 이분이 용한 무당이거나 말거나 이미 나는 KO. 누가 나를 위해 이리 우아한 노래를 불러주는가, 나의 삶 우여곡절을 헤집어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기대를 엮어 불러주는 그 노래 앞에 내 마음은 무장해제.
노래가 끝나고 묻지도 않은 가족의 우환이 생길 우려도 알려주셨고 내가 타고난 기질과 관련해 대처할 방안도 알려주셨다. 그분이 전한 가장 큰 메시지는 '나'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운이라는 것이 드는데 좋은 운은 내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받을 수 있다. 나쁜 운도 내가 탁 마음을 다 잡고 이겨내려 하면 비켜 가고 맥없이 받으면 받게 되거든. 그러니 이런 한해의 운이 있음을 알고 대처를 하면 좋은 것이지. 결국 사람의 기운에 달려 있으니. 우리 애기 기억해라, 너는 다 괜찮다. 응?"
혼자서도 잘 울지 못한 눈물샘이 터져서 엄청 울고 그런 내 등을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훑어주셨다.
그리고 돌아서는 나를(응시하는 눈을 느끼며) 다시 불러 세워서 손을 잡으시더니.
"아가, 잊지 마라. 인천의 할머니가 다 괜찮다 했다 알았지? 그래도 마음이 정 힘들면 전화를 해라."
겨울 인천의 주택가 골목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의 기억이다. 인사나 드리러 갔던 길인데 눈물 바람을 할 줄 상상도 못 했다.
그 뒤로 예술 치료 상담 기법을 배울 때 김매물 선생님의 모습과 태도가 많이 생각이 났다. 상담자의 태도 자세, 이런 기본 세팅은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 상담으로 장사하지 않는다
나중에 선배들에게 얘기를 들었다. 그분은 딱 보고 돈이 없으면 많이 받지 않고 굿이나 부적을 권하지 않는 분이라 했다.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욕심내면 신에게 벌을 받는다고 했단다. 아, 누군가의 영혼에 닿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돈 욕심 내면 안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상담은 비용을 최소한으로 정하고 교육은 조금 현실적으로 해야겠구나 방향을 그리 정하게 되었다.
#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내 눈에 담는다
자신의 삶을 내 앞에 꺼내는 사람을 귀하게 받고 그 이야기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 그분들이 눈을 돌려 나를 피하더라도 끝까지 눈에 담아서 메시지를 전한다. 마더피스 타로 리딩을 할 때 내 눈은 그들의 눈과 마음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지금의 에너지와 마음,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 최대한 찾아내서 본질에 닿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 적당한 위로보다 필요한 진심을 전한다
타로 카드를 비롯해 상담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상대방이 바라는 기대에 부흥해 거짓말을 전하는 것이다. 앞으로 안될 것이 뻔한 진실이 눈앞에 놓여 있다. 그럴 때 적당히 위로 담긴 또 다른 기대를 주기보다 필요한 질문을 다시 찾고 그 답을 전해야 한다. 안 되는 걸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기에. 더불어 공포감을 주어 나의 상담에 종속시키지 않는다. 절대! 대신 두려움을 마주해 받아들일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더해주려고 한다.
샤먼은 신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들은 이가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구나 김매물 만신을 만나고 알게 된 것들이다. 그 뒤 마더피스 타로를 만나고 본격적으로 여신문화를 공부하면서 더더욱 생각나는 어른이다.
김매물 만신 같은 어른을 다시 만나기 어렵고 나도 모르게 샤먼들을 비교할까 싶어 다른 신당에는 찾아가지 않았다. 한나라의 큰 무당을 나라만신이라고 하는데 그런 분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 그것 또한 나의 복이겠지만. 성숙한 만신, 큰 만신과 만남을 스스로 선택하고 찾아간 그날의 나를 칭찬한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제자가 주로 굿을 한다 들었다. 모쪼록 사시는 날까지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고 고맙다는 인사를 담아둔다.
무속을 포함한 종교, 철학, 교육은 '나'라는 존재가 나아갈 길을 찾고 생의 경험 속에 성숙해지며 누군가와 연결된 우리 임을 가르친다. 나만의 안위를 묻고 나만을 위한 처방을 주는 이기심의 종교가 얼마나 위험한가 다시 생각하는 요즘이다. 나만 잘 살면된다 그것이 신이 준 혜택이라고 답을 주는 누군가라면 다시 한번 그사람이 진짜 종교인가, 진짜 샤먼인가, 그들의 신이 진짜 신인가 되물어보기를 권한다.
마더피스 타로 카드는 샤먼의 사회적 역할이 설정되어 있다. 자신을 능력을 공동체와 타인을 향해 쓰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한 길이며 순리임을 아는 것이 정의이며 과정의 결과를 수렴하여 용서와 자비, 사랑으로 가는 길이 심판이다. 점점 잃어가는 언어인 연결, 공동체, 사랑, 평등, 평화, 그 속의 자유를 생각하며 샤먼은 연결하는 사람들이고 여사제는 메시지를 전하며 의식을 집전하는 사람들이다.
가끔 자주 듣는 말, 그래서 너는 신을 믿니? 나는 한국의 무속과 세계의 종교를 동등하게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각자의 고유한 에너지와 순환, 순리가 있어서 그 길을 가고 있다 생각한다. 특정 신을 모시거나 절대신으로 믿지 않지만 인간의 삶에서 두려움과 경외를 형상화한 것이 신이고 나의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다. 어떤 특정 모습, 능력이라기보다 원래 있었고 앞으로 있을 자연과 인간 사이의 유대관계가 신과 인간의 관계이지 않을까. 경계에서 민감하게 소리와 이미지를 읽는 사람이 샤먼일 것이다.
2025. 3. 24
#마더피스타로 #샤먼과여사제 #Motherpeace #tarot
참고 자료 _ 김매물 만신 인터뷰 (문화연대)